"적당히 하라고!!!!"

아픈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날, 거실 소파에 앉았다

by 김재우

어린이집 게시판 공지사항에 글이 올라왔다. '환절기 감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건강관리에 유의해주세요.' 공지사항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안그래도 요즘 첫째와 둘째 모두 어린이집 사진을 보면 교실 안이 휑~ 하고, 엄마들 채팅방에서도 '열나서 지금 하원중', '우리 애도 느낌 쎄하다' 같은 대화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보육기관을 다니는 아이들에게 감기나 전염병은 깨끗한 물에 뿌려진 물감 한방울 같다. 한방울은 너무 작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금세 깨끗한 물 전체의 색을 바꿔버린다. 심지어 이 전염병은 어째 계절이 지날 때마다 한번씩은 반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다. 운 좋게 이번 차례에 건강하게 넘어가면 다음 번에는 반드시 걸리는 식이다.


아직까지 두 아이들 모두 특별히 열이 나지도 않았고, 환절기에 콧물 한 두 방울 정도는 아이들의 필수 장착템 정도였다. 그래서 부디 이번에는 그냥 지나가주기를 바라고 바라며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냈다. 혹시 모르니 아이들에게 불편하더라도 마스크를 씌워서 보내고, 친구들과 놀때는 잘 쓰고 있으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루틴처럼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집을 원래 상태로 정리했다. 그리고 책을 펼쳤다. 집에 있으며 스스로가 세상과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싫어서 시험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다. 이제 일주일 정도가 지나 좀쑤시던 엉덩이가 좀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원래 이 시간에는 스팸 전화와 광고 메시지 말고는 조용하기만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 어린이집이었다.


아침 10시반에 어린이집 전화라니.. 보통 이 시간의 전화는 무슨 일이 생긴 경우에만 온다. 심호흡을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둘째 담임선생님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아침에 둘째가 아침 간식을 잘 안먹어서 열을 재보니 열이 39도까지 올랐네요.. 데리러 오실 수 있으실까요?"


심장이 툭 떨어졌다.


"네, 금방 가겠습니다."

이제 막 읽어보려 했던 책을 그대로 접어두고 둘째를 데리러 갔다.


어린이집 현관으로 나온 둘째는 열이 나서 축 처져 있었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또 감기에 걸리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어쩔 방법은 없었다. 오후에는 소아과가 북새통이 되기에, 점심시간 전에 진료를 보기 위해 소아과로 달려갔다. 첫째부터 둘째까지 이어서 몇년을 뵙다보니, 원장선생님의 얼굴만 봐도 자연스럽게 지인 같은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인사를 드렸다. 역시나 병명은 '환절기 감기' 였다.


축 처져서 집으로 돌아온 나와는 달리, 둘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평소처럼 장난을 치며 꺄르르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 오늘 내가 하려고 했던 리스트들이 쭉 생각났다. 나도 하기 싫지만 굳은 마음으로 하려고 한 일들이었다. 시험 공부하기, 오래 방치한 옷장 치우기, 냉장고를 가득 채운 식재료로 반찬 만들기.....


나의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내가 뭔가를 겨우 시작해보려 할 때마다 이런 이벤트들은 나를 무너뜨린다. 하나, 둘, 셋, 넷.. 잘 쌓다가 다시 초기화 버튼을 눌러 0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오늘 한번만이 아니었다. 육아를 하면, 내 의지가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다.


이렇게 멀쩡할거면 왜 아침에 열이나서 내가 보내려고 했던 하루를 또 무너뜨린거냐며, 원망섞인 마음이 들었다. 나의 못된 마음을 듣기라도 했는지, 괜찮았던 둘째는 밤이 되어갈수록 점점 기운을 잃어갔다. 그리고서는 밤이 되어 잠자리에 쓰러지듯 누웠고, 밤새도록 고열에 괴로워하며 신음소리를 내며 깊게 잠들지 못했다. 종일 아이를 보느라 지친 나를 위해 열보초를 와이프가 서줬다. 내일 출근할 와이프에게 이런 짐을 지우고 있다니.


그렇게 끙끙거리는 둘째, 그리고 그 옆에 같이 잠든 와이프를 멍하니 쳐다봤다. 뒤척뒤척 거리며 자신의 감기를 이겨내느라 고생하고 있을 녀석이지만, 오늘 하려고 했지만 못한 리스트들이 쭉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아이가 아픈데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복잡한 마음들이 오고 갔다. '왜 나는 아이가 아픈데 이렇게 짜증이 났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엉망이 된 오늘 하루의 기억을 되돌아봤다.


오후 3시, 약기운이 떨어졌는지 둘째의 몸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TV를 보거나 장난감 놀이를 하다 가끔 나를 보며 씩 웃던 녀석이, 종일 나를 따라 부엌으로 거실로 오며 나한테 계속 나를 잡아끌었다. "안아줘 아빠." 둘째를 그렇게 안았다 놓았다 하는 사이, 나는 연장 후반전을 뛰고있는 축구선수 마냥 체력도 정신력도 급격이 방전되어 갔다.


오후 6시 반, 와이프가 퇴근할 시간이 거의 되었다. 평소와 비슷한 시간이지만, 오늘따라 유독 더 그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평소에는 두 그릇도 먹는데, 아파서 계속 밥으로 장난을 치는 둘째를 어르고 달래며 저녁을 겨우 먹였다. 그리고서 약을 먹이는 순간, 둘째가 약을 먹기 싫다며 "퉷" 하고 뱉어냈다. 그 순간 참고 참았던 나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적당히 하라고!!!"


참고 참던 나는 결국 목이 뻣뻣해지게 소리를 질렀다. 소리에 놀란 둘째는 자지러지게 울고, 옆에서 첫째는 흠칫 놀라서 "아빠 괜찮아?" 라고 물어봤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와이프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온 와이프에게도, 아파서 입맛이 없을 둘째에게도, 갑자기 화내는 모습에 당황한 첫째에게도. 아픈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내 자신이 이내 혐오스러워졌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 책을 치워버렸다.


오후 11시, 모두가 잠든 시간이었다. 와이프는 아픈 둘째 옆에 누워서 잠이 들어 있었다. 항상 나랑 같이 자고싶다고 하는 첫째는 혼자서 침대에 누운 채 잠이 들었다. 아빠의 베개를 자기 자리 옆에 둔채, 아빠가 올거라고 생각했는지 방문을 활짝 열어둔 채로. 고개를 숙인채, 이불을 덮어주고, 방문을 조용히 닫아줬다.


난장판이 된 고요한 거실 소파에 앉았다. 아이가 아픈데 그 아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나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내 모습이, 혐오스럽기만 했다. 힘들지 않은 시간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순간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고, 그 끝에는 가족들에게 던진, 주워담지 못할 미안함만이 온 집의 공기를 채운다.


아이는 정말자주 아프다.


아프면서 크는게 아이들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의 아픈 사이클의 무한반복을 겪고나면 아이가 콧물이 조금만 나와도, 기침 한번만 콜록콜록 해도 나의 모든 감각기관들에서는 경고 사인을 울리며 '긴장 모드'로 접어든다. 게다가 집에서 한명이 아프면 꼭 다른 한명도 바톤을 이어 받는다. 막으려고 온 힘을 다해본다.


며칠을 앓던 둘째는 밤에 더이상 해열제를 먹지 않고 잠에 잘 들었고, 아침에 '36.8' 이라는 체온계의 숫자가 내게는 그 무엇보다 큰 위안이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집에 온 첫째가 왠지 기운이 없어보였다. '설마', 그리고 '제발...' 하는 마음으로 체온계를 쟀다. '삐빅', 38.7도였다. 그 숫자는 며칠 동안 내 방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이력서와 공부하려던 책을 다시는 펴지말고 접어두라는, 다이렉트 퇴장 카드 같았다.


아픈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걸까?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울 때, 언제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올지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다녔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일을 그만두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며 나의 삶을 유지할 수는 있는걸까? 아이들이 다 크고 난 뒤의 나를 위해 작은 씨앗을 뿌려놓는 건 나의 욕심인걸까?


그저 아이들이 아프지 않는 것. 아프며 크는 아이들이지만 그저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전화를 받지 않기를, 씩씩하게 하루하루 지내주기를, 욕심인 걸 알면서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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