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쿠퍼처럼 내 뒷통수를 치고 싶었다

그 기저귀, 조수석에서 열면 안 돼!

by 김재우

첫째가 3살이던 해, 내 인생 첫 외제차 SUV를 덜컥 샀다. 맞벌이 중이던 상황과 주식 투자의 우연한 성공에 도취되어 '지금만이 기회야!' 를 외치며. 왠지 보고만 있어도 좋은 새 차를, 나는 상전으로 모시고 살았다. 매일 아침에 차 타기 전에 한바퀴 돌아보며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살피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 아무도 없는 손세차장을 전전하며, 내 집보다 깨끗이 닦고, 관리했다.


하지만 이듬해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는 장이 예민했다. 먹는걸 정말 잘 먹는데, 차만 타면 응가를 했다. 차의 규칙적인 진동이 아이의 장을 자극했다. 그래서 차를 몇 시간도 잘 타던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차만 타면 항상 울고불고 불편함을 표시했다. 그렇게 나의 완벽했던 새 차에는 조금씩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사건 당일도, 그냥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첫째를 하원하러 집에서 나서는데,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은 날이었다. 그런데 둘째가 출발하면서부터 평소보다 좀 많이 울었다. 차도 많이 막혔지만, 고속도로 중간이라 차를 세워 둘째를 달래고 출발하기도 애매했다. "조금만 참아~ 아빠가 언니 어린이집 도착하면 안아줄께~" 라고 했지만, 둘째는 숨이 넘어갈 듯 울고 있었다. 그리고, 차 안에 묘한 향기가 느껴졌다. 쌌구나, 직감했다.


어린이집 주차장에 도착해서, 뒤처리를 위해 평소 세우는 명당자리에서 좀 멀찌감치 떨어진 조수석이 잘 열리는 자리에 차를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시원찮다 했더니 둘째는 응가를 푸짐하게 해놨다. 하지만 문제가 조금 심각했다. 아직 일체형 옷을 입고있던 둘째의 기저귀 라인 사이로 묽은 무언가가 보이는 것이었다. 대형 사고였다. 등하원할 때 차에는 기저귀도 따로 챙겨놓지 않았는데, 울음소리에 머리가 멍해졌다.


일단 바로 앞 편의점에 달려가 기저귀를 사왔다. 그리고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근처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어디가서 씻길수도 없었다. 애매하지만 일단 물티슈로 급한 불만 좀 끄고, 기저귀를 갈아입힌 다음에, 집에 가서 뒤처리를 하는게 좋겠다는, 나름 최선의 결론을 내렸다. 기저귀 갈이대가 없으니, 조수석에 잠시 눕혀서 갈면 되겠지.


불편해서 자지러지는 둘째를 일단 안았다. 이미 카시트와 옷은 어찌 수습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넘쳐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일단 닦아서 기저귀라도 갈아줘야 둘째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시트랑 옷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조수석에 둘째를 조심스레 눕히고, 일체형 옷의 단추를 하나씩 떼고, 기저귀의 옆 찍찍이를 뜯기 시작했다.


그 순간, 둘째는 수십분 동안 불편했던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라도 하는 듯, 온 힘을 다해 다리를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어, 안돼, 안돼. 가만, 가..... "


기저귀가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그리고, 기저귀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묽은 것들이, 이제 막 새 차 티를 벗기 시작한 나의 소중한 차의 조수석, 그것도 구멍이 뽕뽕 뚫린 가죽 시트 위로 툭, 툭,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


일은 벌어지고야 말았다. 그 순간, 1년 동안 차를 애지중지하던 내 모습이 한 장면, 한 장면 머릿속을 지나갔다. 8월의 열대야에 땀을 뻘뻘 흘리며 세차를 하던, 한겨울의 혹한에 손을 호호 불며 미트질을 하던, 첫째의 발길질에 "차는 소중히 다뤄야돼!" 라고 단호하게 꾸짖던, 내 옷은 더러워져서 차는 더러워지면 안된다며 내리던 내 모습이...


돌이킬 수 없었다. 하지만, 돌이키고 싶었다. 기저귀를 뜯기 5초 전의 나로. 인터스텔라에서 딸을 위해 책 한권을 밀쳐내려 한 쿠퍼처럼, 몇 초 전의 나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온 힘을 다해서 5초 전의 나로 돌아가 내 뒤통수를 한대 쳐주고 싶었다. '너, 그 기저귀 조수석에서 열면 안돼!' 라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이 상황, 이성의 끈이 흔들거렸다. 하지만 이성을 놓아버리는 것조차 지금의 긴급상황에서는 사치였다. 일단 차에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했다. 닦고, 닦고, 또 닦았다. 어린이집에서 첫째를 데리고 와 일단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둘째의 자지러지는 모습과 아빠의 상기된 얼굴을 첫째는 번갈아 돌아보고 있었다. 어떠한 설명도 할 수 없었다. 손에 밴 냄새가 혹여나 차의 핸들에 배지는 않을까 싶어, 그나마덜 묻은 손가락 두개로 살살 핸들을 잡았다.


집으로 올라와 아이들과의 저녁시간을 보내고, 육퇴하는 시간까지도 차 생각에 한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혹시 나의 소중한 차가, 이렇게 돌이킬 수 없어지는건 아닐까' 하는 차 걱정에,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동안 차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까지, 몸은 집에 있었지만 마음은 주차장 내 차 앞에 가 있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온갖 냄새 제거에 좋다는 물건들을 집안 곳곳에서 싹 긁어모아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고,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조수석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겉으로는 대강은 수습이 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시트 구멍 사이사이로 들어간 녀석들이 있었다. 이건 도저히 수습이 불가능했다. 인터넷에 찾아봐도 나와 같은 사건은 레퍼런스가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하다보니, 그 구멍을 닦기에 딱 좋은 물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쑤시개' 였다. 집에서 이쑤시개 통을 가지고 와서, 오염된 구멍 하나하나에 소독티슈를 꽂아넣어 한땀한땀 닦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재봉사가 된 마음으로, 빠진 곳이 있는지 확인해가며. 한시간째 이쑤시개 끝에 묻어나오는 오염의 흔적을 바라보며, 현타가 와 주차장에서 넋나간듯 씨익 웃었다.


몇달 후, 나의 인생 첫 외제차는 영롱한 새 차의 모습을 잃었다. 첫째가 쿠크다스를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쿠크다스를 건네줬다. "먹고 난 봉지는 아빠줘~" 그리고 몇 주 뒤, 흘린 물건을 찾다보니 먹다 남은 쿠크다스 부스러기, 봉지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다음에 세차할 때 정리하지, 뭐."


결국 나는 내 인생 첫 외제차와 순리인듯 작별했다. 이후 우리 가족의 차는 실내공간이 더 넓고, 실용적인 국산 SUV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어느날 첫째가 지나가던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 아빠 옛날 차다!" 그곳을 보니 색상까지 똑같은 그 차가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기뻤던 첫 만남의 설렘, 그리고 그날 그 조수석의 대참사가 함께 떠오르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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