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HSP 아빠의 작은 고백
아이들이 하원하고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 어린이집에 간 사이 깔끔하게 치워둔 집은, 녀석들이 돌아온 지 1시간도 안 돼 흔적도 없이 엉망이 되었다. 책도 제자리에 꽂아놨던 것 같고, 장난감들은 나란히 자기 자리에 있었고, 이불들은 침대 위에 가지런히 개어 놓았고, 또.... 눈을 뜨고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난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아빠가 그리웠는지 마구마구 달려든다. 첫째는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가위바위보 놀이를 같이 하자며 눈을 맞추려 든다. 둘째는 좀 더 본능적이라 아빠의 다리에 호다닥 뛰어서 안긴다. 그 모습을 본 첫째는 질투를 한다. "아빠는 나보다 동생이 더 좋지?" 하며 아빠의 주의를 끌어본다. 그러다 잘 안되면 동생을 밀친다. 둘째는 호락호락하게 자리를 내주지 않고 첫째를 밀친다. 누가 더 목소리가 큰지 시합하듯이 울음을 터뜨린다.
게다가 아이들의 장난감에서는 어찌나 정신없는 노랫소리가 많이도 나오는지... 무엇보다 한번 나오는 노래는 무한반복이다. 같은 노래를 한번 두번, 열번, 열한번... 내가 "그만!" 이라고 할 때까지 듣고 또 듣는다. 한번에 하나의 노랫소리만 나오지도 않는다. 여기서는 뽀로로가, 저기서는 티니핑이.... 왜 장난감 업체들은 볼륨 조절 기능을 넣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질서가 무너진 집 안에서 그 소리들이 귀로 들어오고 있자면, 내 머리는 작동을 멈춘다. 무질서의 혼란스러움이 마치 내 몸 어딘가에 파편처럼 박혀서 나를 괴롭히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그럴 수 있지', '원래 아이들은 정신없게 노는거잖아' 라고 머릿속으로 되뇌어 보지만 쉬이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는다. 되려 모든 감각기관이 오작동을 하며 에러를 띄운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민감한 사람, HSP(High Sensitive Person) 이다.
원래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예민러'라는 말을 들었고, 어릴 때부터 '넌 왜그렇게 예민하니?' 라는 말을 지겹게도 들으며 자랐다. 나 하나 보살피기도 힘든 HSP 아빠에게, 육아야 말로 모든 나의 센서를 자극했다. 아이들이 만드는 일상적인 모든 행동들이 나의 오감을 자극시키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다른 부모들은 그냥 넘길 일들도 나에게는 스트레스 상황으로 다가왔다.
어느 평범한 보통날의 저녁시간, 아이들은 평소처럼 투닥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서로 장난감 하나를 가지고 서로 자기꺼라고 싸우는 일상적인 다툼이 시작되었고, 유독 아이들의 소리가 거슬렸던 나는 점점 얼굴이 굳어졌고, 큰소리가 목구멍 앞까지 왔다. "야, 너네 그만 싸워. 시끄러워!!!!!" 이 한마디면 일단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투닥거리는 소리는 안들어도 된다.
대신 아빠의 큰소리에 아이들은 겁을 먹고, 잠시 일시중지 버튼을 누를 거다. 아빠의 분노에 미해결 상태로 문제를 덮어두는 것 뿐이다. 아이들과 나의 마음에는 각자의 형태로 생채기가 남는다. 이를 잘 알고 있기에, 나의 힘을 잃은 이성은 마지막까지 큰소리 내는 것을 뜯어 말리고 있었다.
그 때 문득 HSP에 관련된 유튜브에서 봤던 댓글 하나가 생각났다. HSP들이 자신들만의 침착함을 유지하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내용이었다.
"저는 아무 노래도 듣고 있지 않아도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다녀요. 그러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마음이 조금 차분해 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 이 방법이라도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와이프가 생일 때 선물로 준, 책상 위의 이어폰을 꺼내어 귀를 막았다. 소음 차단모드로 가장 큰 소리로 노래를 틀고, 심호흡을 크게 몇번 했다. 물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 물 밖으로 힘겹게 머리를 내놓은기분이었다. 감각을 마비시키던 집의 소음들이 멀어졌다. 신기하게도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리에서 조금 멀어지는 것 만으로도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가 치워졌다. 청각 자극에서 멀어진 상태로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는 모습은 마치 음소거 버튼을 누른 TV 화면처럼 느껴졌다. 일일드라마의 다투는 씬에서 나만 멀찌감치 떨어진 관망자가 되었다.
아이들은 쪼르르 달려와서 나한테 얘기를 하려다가, 귀에 있는 아빠의 물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귀에 있는 게 이어폰인 걸 아는 첫째는 "아빠 무슨 노래 들어?"라며 물어봤고, 아빠가 귀에 뭔가를 꽂은걸 처음 본 둘째는 내 품으로 뛰어든 뒤, 귀에 꽂힌 이어폰을 자신의 손에 쥐려고 손을 쭉 펼쳤다. 이리저리 머리를 피하며 얘기했다.
"아빠가 지금 좀 가만 놔둬. 마음을 조금 가라앉힐께. 잠깐만~"
일단 전쟁터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도망쳤다. '그래도 아빠면서, 자기 딸을 싸우는 소리 하나도 못참고 귀를 막고 있네', '애들 시끄러운 소리도 있는 그대로 못받아주는 내가 아빠의 자격이 있는걸까?' 하는 내 안의 칼날이 나를 찔렀다. 아이들의 이정도 소리도 참아주지 못하는 아빠라니. 이런것도 못참는 너는 아빠도 아니야. 기운이 빠졌다.
그 때, 나를 빤히 바라보는 첫째의 눈과 마주쳤다. 귀를 막고 있던 이어폰 때문에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아이는 잔잔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며 뭔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주변 소음으로 인해 짜증을 주체못하던 불안한 아빠가 아닌, 잠시 넋나간 모습의 아빠가 아이에게는 되려 편안해 보였을 거다.
퇴근해서 들어온 와이프는 이어폰을 끼고 있는 나를 '잉?'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세상 기운 빠진 눈웃음으로 와이프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엉망이 된 집안의 모습, 그리고 아이들의 소란스러움, 그리고 남편의 다른 차원에 있는 듯한 모습. 이 안어울리는 부조화를 와이프는 이해하지 못했다. 방으로 와이프를 데리고 가 말했다. "야, 이거 너가 사준 이어폰 없었으면, 나 오늘 터졌어. 숨이 쉬어진다. 애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아이를 잘 돌보려면 나를 먼저 돌볼 줄 알아야 한다. 비행기에선 보호자가 먼저 산소호흡기를 쓴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숨을 쉬어야 했다. 그날 이후로도 종종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의 도움을 받는다. 그 댓글처럼, 아무 노래를 듣지 않고도 그저 노이즈 캔슬링 기능만 켜놓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의 방파제가 되어준다. 하지만 방파제를 넘는 높은 파도는 여전히 많고, 그만큼 나를 헤집어 놓는다.
아이들은 집에 있는 온갖 물건들을 꺼내고 놀고, 둘이서 투닥거리고, 하하호호 웃는다. 아이들이 놀자고, 책 읽어달라고, 울고, 똑같은 얘기를 수십번 하는 아이들의 텐션 앞에서 점점 기운이 빠져가는걸 느끼는 순간, 나는 조심스레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는다. "아빠, 왜 집에 있는데 이어폰 끼고 노래 들어요? 내 얘기는요?" 하고 묻는 첫째에게, 지친 얼굴로 다가가, 그냥 꼭 안아주며 속으로 대답했다.
'이렇게라도 아빠의 마음을 잡아야만 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