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실 앞의 아빠

모유수유중이니, 아빠는 들어오지 마세요

by 김재우

첫째의 돌을 기념해서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와이프는 빵을 참 좋아한다. 빵지순례를 하겠다며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들떠있었다. 하루는 와이프가 가고싶다던 빵집 오픈런을 떠났고, 나는 그동안 와이프를 기다리며 아이와 백화점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직 걷지 못하는 첫째를 유모차를 태워 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첫째가 매우 짜증섞인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괜찮아?" 라고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1초만에 상황 파악이 끝났다. 냄새로 정답을 바로 알 때가 있다. 응가였다. 다행이었다. 백화점 안이니까 기저귀 가는 건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백화점 전체 지도 앞에서 유아휴게실이 있는 곳으로 목적지를 찍고 유모차를 밀며 달려갔다.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자지러지는 첫째를 어르고 달래며 유아휴게실 앞에 도착했다. 문이 열려있어 안을 보니 수유실, 기저귀교환대, 이유식 의자가 유아휴게실 안에 다 같이 있었다. 그리고 문 옆에 안내 문구가 있었다.읽자마자, 가슴이 터질듯이 뛰었다. 달리기 때문은 아니었다.


'모유수유중이니, 아빠는 들어오지 마세요.'


얼굴이 새빨개졌다. 투명한 쇠창살이 열려있는 유아휴게실 앞에 쿵 내려왔다. '애 보는 아빠가 여기 왜 왔어요?' 하고 안내 문구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가림막도 없는 수유실 구조라 머리로는 이해를 해보려고 했지만, 가슴은 그렇지 않았다. 유아휴게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안내문을 본 이상 못본 척 하고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혹시나 기저귀를 갈고 있을 때 엄마들을 마주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혼자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써봤다.


"ㅎㅎ.. 안녕하세요. 아빤데, 아이 기저귀 갈 데가 없어서요. 금방 갈고 나갈께요!" 하고 고개를 숙여야 할지, 근데 잘못한 건 없으니까 "저,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금방 갈고 나갈께요!" 하고 당당하게 말해야 할지. 아니면 "아.. 도대체 남자들은 어디서 아이 기저귀를 갈아줘야 되는거야!"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릴지.


다 뭔가 어색했다. 안내문을 읽고나니 누군가 엄마가 들어왔을 때 내가 범죄자가 아니라, 아이의 응가 처리가 급해서 도저히 어찌 할 바가 없어서 여기를 왔다는 걸 증명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애 기저귀 하나 갈면서 아빠라는 이유로 이런 고민까지 해야하다니.


아이는 당장이라도 기저귀를 갈아내라며, 발을 차고 목이 째져라 울고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아빠, 빨리 기저귀 좀 갈아줘"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응가 때문에 어설피 안고 갈 수가 없는 상황. 일단 같은 층에 있는 남자화장실을 찾아 있는 힘껏 유모차를 밀며 달려갔다. 땀이 줄줄 흘렀다.


다행히도 화장실에는 기저귀갈이대 하나가 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덜렁거리는, 말 그대로 구색만 갖춰놓은 꼴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있겠나 싶어서 일단 기저귀갈이대를 펼쳤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무도 쓰지 않았음을 바로 인식할 만한 상태였다. '아, 아빠들은 애를 데리고 혼자 외출하지 않는구나. 나 같은 경우가 없나보다.' 시간이 없었다. 어서 갈아줘야 했지만, 이런 더러운 곳에서 기저귀를 갈아줄 수는 없었다. 일단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아무렇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건가' 세상에 아이와 나, 둘만 있었다. 좌절스러웠다. 빵 사겠다고 혼자 가버린 와이프가 떠올랐다. '당신이 있었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텐데....' 원망스러웠다. 백화점 안내도를 찾아봤다. 가장 윗층에 영화관이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자 올라갔다.


정말 다행히도 영화관 앞에 푹신푹신한 대기의자석이 있었고, 더 다행이었던 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유모차로 바리게이트를 치고, 아이를 들어 눕히고, 조심스레 기저귀를 갈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지나가며 욕할까봐 불안해하며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아니, 왜 이런데서 애기 기저귀를 갈아줘? 요새 엄마아빠들 듣던데로 개념없네.' '다른 사람들도 쓰는 공간에서 이게 뭐하는 거죠?' 내 안의 목소리가 나를 찔렀다.


어찌저찌 겨우 뒷처리를 거의 끝냈을 때, 한 아주머니 무리가 지나갔다. "젊은 사람이 여기서 뭐하나~" 지나가는 인사치레에도 대답이 쉬이 나가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도 내게는 마치 나를 동정하는 것처럼, 불쌍한 인간처럼 느껴졌다. 그냥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아, 네.. 애가 기저귀를 불편해해서요.." 길게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짧게 줄이기도 어려웠다.


기저귀를 갈고, 다시 바지를 입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빠 혼자 나와서 애 보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이토록 없다니. 덮어뒀던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그만큼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기저귀를 간 아이는 언제 그렇게 울었냐는 듯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입꼬리를 올렸다. 세상은 나에게 인상을 쓰고 있는데, 아이의 해맑은 눈은 나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내가 '조커'가 된 것만 같았다. 웃는 얼굴이라도 그려야 하는 모습처럼.


마침 빵집 오픈런을 성공적으로 마친 와이프의 전화가 왔다. "어디야?" "...백화점 영화관 앞." "거기는 왜? 영화라도 보게? 허허~" "...." 와이프의 악의없는 농담은 나의 분노버튼을 클릭했다. "기저귀 가는데에 엄마만 들어갈 수 있대. 미쳤어. 아빠는 뭐, 길바닥에서 기저귀 갈라는거야?!!!! 너는 빵사러 가는동안, 내가 얼마나 개고생했는데... 농담할 상황이 아닌거 같아."


심상치 않은 목소리톤과 갑작스러운 폭발에 놀란 와이프는 양 손에 빵봉투를 한가득 들고 헐레벌떡 영화관으로 왔다. 그리고, 시뻘개진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로 영화관 앞 대기의자에 앉아있는 남편이 거기에 있었다. 와이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미안" 이라고 말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애 낳고 둘이 영화관 한번 못왔는데, 영화관 구경 잘했네.


그 이후 한동안 외출하기 전에는 '화장실이 잘 되어 있는지'를 꼭 체크했다. 이제 첫째는 혼자서 화장실을 가지만, 둘째가 기저귀를 뗄 시기가 되었다. 여전히 아빠가 딸들을 데리고 다닐 때 화장실 문제는 어렵다. 몇 년이 지나 그 때 그 백화점은 바뀐게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이미 폐업했다는 몇년 전 블로그가 있었다.


아빠육아의 수치스러움을 처음 느끼게 했던 그 안내문도, 이제는 함께 사라지고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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