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묶어주나봐요?"

아빠, 나는 공주머리가 좋아

by 김재우

누군가 나에게 '딸들을 키우면서 제일 어려웠던 게 어떤거에요?' 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머리 묶어주기' 라고 말할 거다. 장발 한번 해본적 없는 내가 딸들의 긴 머리를 빗고, 묶는다는 것은 아예 새로운 영역이었다. 도저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라고나 할까.


첫째만 키우던 함께 맞벌이를 할 때는 와이프에게 사정을 했다. 일찍 나가더라도 꼭 깨워서 머리만큼은 좀 묶어달라고 부탁했다. 와이프가 머리를 손질해주고 나갈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아이의 머리는 언제나 '추노' 꼴이었다. 빗질만 겨우 해서 한쪽에 머리핀을 꽂는 똑같은 헤어스타일이 이어졌다. 어린이집에서 화려한 변신을 해오는 첫째의 머리를 정리하지 않은채 그대로 다음날 보내고 싶었다.


이 또한 내가 전업이 되고나서는 나의 가장 큰 넘어야 할 산이 되었다. 다섯살 즈음부터 친구들의 예쁜 머리스타일을 자기도 하고 싶었던 첫째는 "아빠, 나 엘사머리 하고싶어." "아빠, 나도 애들처럼 머리 예쁘게 땋아줄래?" "하트머리 하고싶어" .. 등등, 나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머리핀 하나로 되지 않는 시기가 왔다.


전날 와이프에게 첫째를 앉혀놓고 특훈을 받았다. "머리를 땋을 때는 손을 넣어서 세 갈래로 나눠야 돼.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와이프의 손이 갑자기 2배속이 된것 같았다. "잠깐만, 다시다시." "좀 천천히 좀.." 계속 앉아있던 첫째의 자리 이탈로, 연습은 더 이상 이뤄지지 못했다.


그리고 실전의 아침이 찾아왔다. 첫째를 소파 앞에 앉히고, 그동안 틀어주지 않았던 TV를 틀어줬다. 그리고, 천천히 배웠던 대로 머리를 빗고 손가락을 넣었다. '어, 이쪽인가,' '아닌데, 뭐지. 왜 안 땋아지지.' 나의 손가락들은 갈길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고, 첫째의 머리도 개성 있게 제멋대로가 됐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를 몇십분이 지난 것 같았다. "미안하다. 오늘은 그냥 가서, 선생님한테 예쁘게 묶어달라고 해."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킨 뒤, 유튜브를 뒤졌다. '아빠도 할 수 있는 딸 머리' 로 검색을 했다. 썸네일에 '오, 저 머리다!' 하는 영상이 있었다. 몇 번을 돌려보니, 왠지 이걸 따라하면 할 수 있을것만 같은 자신감의 싹이 올라왔다. '좋아, 일단 영상을 저장하자.'


다음날, 역시나 나는 영상 속 전문가가 될 수 없었다. 절반 정도 됐는데, 어느 한 지점은 도저히 못따라 갔다. 유튜브 영상을 0.5배속 재생으로 바꾸고 똑같이 따라했는데, 왜 내 딸 머리는 영상 속 아이처럼 안되는지. 그순간 첫째가 고개를 돌려 날 쳐다봤다. "아빠, 왜이렇게 오래걸려?" "야 너가 돌아보는 바람에.." 다시 처음부터, 또 다시 처음부터.


도저히 아침마다 이 난리를 반복할 수 없었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일단, 아이를 설득해봤다. "너 친구들 보니까, 머리 단발한 친구들 예쁘더라~ 그 하윤이! 얼마전에 머리 자른거 봤어? 어때?" ".. 응. 아빠. 나는 공주머리가 좋아. 공주머리는 길게 땋은 머리야." 단칼에 실패.


결국 내 실력을 늘려야 했다. 하원하고 온 첫째의 머리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리고, 머리를 풀기 전 사진을 찍어뒀다. 마치 예전 개발자로 있을 때 다른 사이트들을 분석할 때 코드 한 라인씩 살펴보는 것처럼, 하나씩 하나씩 풀며 머리카락을 해체했다. 아, 여기선 이렇게 묶는구나, 묶는 지점은 여기구나, 몇번을 묶었구나, 세세히 살폈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완벽하게 '딸 머리묶기' 로 오염됐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경기, 관심있는 뮤지션의 라이브 클립은 어느새 메인 페이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머리 묶는 방법도 정말 여러 가지가 있었다. '아, 딸 머리묶기의 세계는 심오하고 깊구나.'


어린이집 상담에 가서도 항상 중점적으로 담임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제가 육아를 전담을 하고 있어서.. 아이들 머리가.. 잘 안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언제나 밝은 미소로 대답해주셨다. "아유, 아버님. 그건 저희들이 전문가죠~ 걱정 마세요." 일단, 머리가 엉망이어도 신경 안써서 그런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나니 마음이 좀 덜 불편했다.


어느 아침, 유튜브를 보지 않고 머리를 묶는 데에 성공했다. 거울을 보는데, 꽤 그럴싸 했다. 여러가지 머리를 해줄 수는 없었지만, 일단 한동안 연습했던 '양갈래로 묶고 땋아서 보내기'는 자리를 좀 잡은 것 같았다. 아침에 몇십분씩 걸리던 머리 손질이 10분, 5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삐뚤빼뚤했던 땋는 라인도 조금씩 일자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잘하고 싶어졌다. 이제는 기본에서 응용을 해보기로 했다. '하트 머리'를 시도해서 어린이집에 보냈다. 등원을 하러 가는데, 아침에 우체부 아저씨가 아이의 머리를 보더니 말했다. "아침에 여기서 애들 머리 예쁘게 묶은거 보면 즐거워져요. 머리를 어쩜 예쁘게 묶어서 보낸데요? 엄마가 머리 잘 묶어주나보다~"


'아저씨, 그거 제가 한거에요.' 훗.


등원맞이를 하는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내게 물어보셨다. "아버님~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애들 머리는 누가 묶어주시는거에요? 엄마가 해주시는거죠?" 여유있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제가 묶는 거에요." "오, 저희들보다 더 잘 묶고 땋으시는거 같아요." 마치, 견습생이 오랜 훈련 끝에 마침내 스승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과 같은 감동이 몰아쳤다. 1년전의 머리핀만 주구장창 꽂아서 보내던 내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둘째도 이제는 머리가 꽤 길어서, 언니가 해달라는 머리를 똑같이 해달라고 할 때가 있다. 아직 얇은 4살의 머리라 묶기 힘들지만, 이제는 척척이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날에는 출근한 와이프한테 똑같이 묶은 두 딸의 사진을 보낸다. '머리 어때?' 인정을 해달라는 문자에 와이프는 '오오오오오 대단한데 여보' 라고 답해준다. '양갈래 머리', '땋고 가운데로 묶기' 하고 요청하는 첫째의 요구에도 "알겠어" 라고 바로 시작한다.


물론 선생님들은 나보다 훨씬 더 손이 많이 가는 머리도 척척 묶어서 보내신다. 그런 머리를 할 때 지나가던 엄마들이 "이거, 아빠가 직접 묶어준거에요?" 하면 "네. 대체로." 라며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뭐, 칭찬받을 일 많지 않은 육아인데, 이정도 거짓은 내 자신감을 위한 영양제 정도로 치기로 했다. 아이가 이 머리 다시 해달라고 하면..?


"그건 선생님한테 가서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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