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아빠의 꿈속 도피처
첫번째 꿈.
나는 지금 회사 정문 앞에 서 있다. 유난히 맑은 하늘과 경쾌한 기분으로 집을 나서 주차를 하고 걸어왔다. 오늘따라 내가 원하는 가장 명당자리가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니! 몇년을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 자리에 주차를 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도대체 이 자리의 주인은 누굴까 궁금했는데, 그 자리의 주인이 내가 되다니.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종일 기분이 이상할 정도로 들떴다. 이제 사원증을 체크하고 회사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아뿔싸, 그런데 사원증이 없다. 분명히 어제 가방에 잘 챙겨놨었는데, 왜 없지? 생각을 하면서 가방을 뒤집어 탈탈 털어본다. 텀블러, 노트, 차키, 지갑까지 모든게 있는데 사원증만 없다. 사원증이 없으면 재발급을 받아야 해서 인증센터로 찾아간다.
보안직원에게 내 신분증과 이름을 말한다. 그런데 보안직원은 차갑게 말했다. "임직원 명단에 선생님 정보가 없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빨리 회사에 들어가서 회의에 참여해야 되는데, 다시 한번 확인해달라고 해도 결과는 똑같다. 황당한 마음을 가지고 집에 가서 선반 위 사원증을 챙겨서 다시 회사로 간다. 이제는 주차장도 들어갈 수가 없다. 임직원이 아니란다. 도대체 뭐지?
두번째 꿈.
몇달짜리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몇 주 동안 힘들게 마무리를 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홀가분했다. 사무실에 있는 선후배, 동료들과 번갈아가며 티타임을 즐겼다. 간만에 동료들을 만나니 모두들 나를 너무도 반갑게 맞이해줬다. 아무도 '너 왜 여기 있어?' 라는 말을 안하고, 그저 내가 있는 상황을 반갑게 맞아줬다.
이상하게 편안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순간이 반가움을 넘어선 말로 표현하기 힘든 황홀함이었다. 이렇게 사람들과 진심으로 얘기할 수 있다니, 자연스럽게 웃음이 지어졌다. 오랜만에 돌아온 나를 환영하기 위해 회사 앞 술집에 한잔 하러 가려고 나섰다. 그런데 회사 입구를 나가려는데, 나갈 수가 없었다. 인증이 되지 않았단다.
뭔가 이상하다. 보안 직원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동료들은 나를 신경쓰지 않고 다들 술집으로 가버렸다. 내가 소리쳐 부르는데, 그 아무도 나를 돌아봐주지 않는다. '왜 나만 빼고 나가는거야, 나도 데리고 가줘야지' 라고 소리를 쳐보지만 소리는 내 안으로 돌아왔다. 나도 가고싶단 말이야, 같이 어울리고 싶다고.
손을 휘저으며 눈을 떴다. 시계를 본다. 새벽 3시다. 아이 방이다. 오늘도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버렸다. 또 꿈이었구나. 피곤한 몸을 일으켜 아이 이불을 덮어주고, 내 다리에 닿아있는 아이의 다리를 옆으로 살짝 옮겨줬다. 아이는 귀신같이 내가 부스럭거리는걸 알아서 내 팔을 꼭 잡았다. 손을 살짝 잡아서 내려놓고 살금살금 방을 나왔다. 딸과의 연결은 현실의 마무리하지 못한 공간으로 나를 데리고 왔다.
마무리하지 못한 설거지, 엉망인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와 못다한 잠을 청했다. 꿈이 다시 이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꿈은 아이 방에서 끝나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하는 와이프에게 '나 어제도 회사 가는 행복한 꿈 꿨어' 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저 행복한 꿈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생각해보니 와이프에게는 이 얘기가 얼마나 황당할까 싶어 이내 접기로 했다.
매일 아침마다 와이프는 가기 싫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한다. 혹시라도 잘 자고있는 아이들이 깰까봐 살금살금 준비를 해서 나간다. 가끔은 나도 모를 정도로 조용히 나가는, '나도 집에서 늦게까지 좀 자고싶어' 라는 말을 하는 와이프에게 '회사 가는 꿈'이라는 말은 어떻게 다가올려나. 아마 한대 쥐어박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출근하는 와이프가 부럽다. 문이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아이들과의 매일 반복되는 등원전쟁의 시작이다.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머리 땋고, 간식 주고... 지루하고 지치는 반복이다. 하지만 집이 휴식처인 와이프에게는 출근길이 얼마나 고역인지 알고있다. 지친 표정으로, 문앞에서 잠에 덜 깬 채 와이프를 배웅한다.
꿈을 꾸는 밤이 종종 있다. 하루 종일 쌓여있는 집안일에 지치거나, 와이프의 야근으로혼자 아이둘을 있는 힘을 다해 케어하고 같이 쓰러져 잠들거나 하는 날이다. 이런 날은 회사의 입구에서 들어가거나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이 되는 장면이다. 다시 들어가고 싶거나 함께 나가고 싶은데 이상하게 뭔가 문제가 생겨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 상황은 한두번이 아니라 꿈임을 알아채고 스스로 탈출하기 전까지 계속 반복이다.
그런데, 어떤 날은 행복한 꿈을 꾸기도 한다. 누군가와 진심을 나눈 날, 엄마들과 수다를 떨며 내가 사회적 인간이었음을 다시금 일깨우는 날이다. 이런 날은 주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꿈 속에서 너무도 해맑게 대화를 나눈다. 꿈 속의 나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하다. 함께 커피를 종종 마시던 동료들과 꿈에서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눈다.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웃고 떠들고, 주말에 뭐 했는지, 농담 까먹기를 하고, 그저 편안한 느낌만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퇴근만을 기다리며 살았다. 그때는 집이 나의 휴식처였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없다는 게 나를 힘들게 했지만, 대신에 시키는 일을 잘 해내면 그 이상의 부담은 없었다. 육아와는 정반대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선택이 결과가 되는 육아는,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도 없고, 잘 가고 있는지도 언제나 물음표 투성이다. 와이프가 있지만, 주로 혼자다.
무엇보다 회사에서는 동료가 있었다. 상사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킬 때 사내 메신저로 같이 상사 흉을 보면서 분노를 가라앉히기도 했고, 잠시 물 한잔을 마시다 복도에서 마주친 동료와 주말에 뭐했는지, 재밌는 일은 없는지 스몰토크를 할 때도 있었다. 육아를 하면서 아무도 내 곁에 없고 아이 울음소리에 지쳐갈 때면, 이 스몰토크들이 지독하게 그리웠다. 수다스러워서 가끔은 좀 조용히 했으면 싶던 동료들의 재잘거리던 목소리가 절실하게 그리웠다.
그 마음이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인지, 아니면 그저 이 지긋지긋한 반복에서 도망치고 싶은건지, 잘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었지만, 모든 선택에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나는 왜 내 인생에 가지 않은 길을 이토록 마음에 그리고 있는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보지만 정답은 없다.
다시 아침은 찾아온다. 평소보다는 조금 더 찌뿌둥한 기지개를 펴고 아이들을 등원시켰다. 밀려있는 집안일을 잠시 못본 체 하고는 옛 직장 동료들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하나씩 살펴본다. 그러다 이내 다시 나의 사무실, 거실로 끌려온다. 이불을 갠다. 또 같은 혼자만의 사투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