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잃어버린 지 4년

"우리아빠 이름은요, 나이는요"

by 김재우

어린이집에 하원을 하러 가서 아이들을 정문 앞에서 기다린다. 가만히 있기 뭐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기다리다 보면, 옆에서 이뤄지는 아이와 부모의 상봉을 지켜보게 된다. "조운이 어머님~ 조운이 왔어요!" "재아 아버님~ 오늘 재아가 어린이집에서....." 얼굴을 아는 엄마들끼리도 'ㅇㅇ 엄마' 로 서로를 부르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보호자들을 구경하던 중, 내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이 내려오셔서 나를 부른다. "ㅇㅇ 아버님~".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여전히 낯설기는 하다. 인생을 살며 내 이름 대신 '다른 무엇' 으로 불릴때는 내가 사라져야만 할 때였다. 군대 훈련병이 그랬고, 가상의 공간이 그랬다. 이름 석자가 아닌 호칭으로 불리울 때, 나의 진짜 인생은 잠시 뒤로 물러나 있다.


일을 그만둔지 어느새 4년이 되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불러줬다. 지금은 다르다. 내 이름을 듣고싶은 날에는, 직접 움직여야 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주부의 세계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주부가 되기 전 나를 알고 지내던 친구나 지인에게 전화를 하던가, 그게 아니면 안좋은 일로 병원이라도 가야지 듣게 되는 나의 이름.


대부분의 사회적 모임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첫째는 꽤 커서 자기가 원하는 친구들과 더 함께 하고 싶어했고,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연락해서 키즈카페를 함께 갔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신나게 뛰어놀았고, 엄마들이 대화를 하면 주로 옆에서 듣다가, 겨우겨우 한마디씩 얘기를 던졌다. "주원이 엄마, 요새 애들 말 잘 들어요?" "아유~ 요 나이 때 애들이 다 그래요. 그래도 아빠말은 좀 잘 듣지 않아요?" 튀지 않는 무난한 참여였다.


대관시간이 끝나, 마무리를 하고 나갈 때였다. "정산은 어떻게 하죠?" "아~ 저 계좌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계좌 번호는 0000000...." 엄마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이체를 해주려고 했다. 한 엄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름, 이거 맞으시죠?" "네, 맞아요." 그냥 내 이름이었다. 그런데, 가면이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내 계좌에 들어온 그 이름도, 낯설었다. 누구 엄마가 아닌 한 여자의 이름이었다.


동네를 다닐때도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에게 나는 첫째, 둘째의 아빠였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아이들의 이름이 들리면, 마치 내 이름처럼 신경이 쭈뼛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한다. 아이들의 이름을 딴 간판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어, 저거봐!" 하고 신경을 쓴다. 마치 내 이름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렇게 여기는 내 모습이 그저 웃기다. 딸 이름이 내 이름도 아닌데 말이다.


엄마들과의 수다타임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아이를 낳기 전 나의 모습' 이다.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하는 엄마들 뿐 아니라, 일을 더 할 수 있음에도 그만두고 주부가 된 엄마들까지 본인의 결정에 100% 만족하고 지내는 사람들은 없었다.


한 엄마는 회사에 다닐 때의 자신의 모습을 너무도 그리워했다. "있잖아, 나는 그때가 너무 그리워. 막 사람들하고 늦게까지 일하면서 지내는 모습. 그때는 참 힘들었는데, 이렇게 집에 있으니 무기력해지기만 하는거 있지." "맞아,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아. 내가 지워지는 느낌이야." 다른 엄마들도 말에 맞장구쳤다.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그들도 모두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도, 전업주부가 된 걸 후회할 때가 많다.


새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이 길을 들어섰던 때의 조금은 가벼운 마음은 찾아보기 어렵다. 매일이 반복되는 삶, 아무도 알아주거나 인정해주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어디서든 내 이름을 불러만 주면 달려갈 것 같은데, 아무도 나를 부르지도, 찾지도 않았다. 이름이 없는 사람은 어디도 속하지 못했다.


육아를 하며 이렇게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이 길을 이렇게 쉽게 선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속도로를 잘 달리다가, 잠깐 차를 갓길에 세운 느낌이다. 잠깐 세웠다가 다시 금방 도로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옆을 쌩쌩 지나가는 차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교 시절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한 친구는 이제 곧 임원 발표시즌인데, 너무 일이 많아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후배는 격오지에서 근무를 하는 댓가로 수당으로만 한달에 몇백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집에서 애 보고 있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나도 너희들처럼 달리고 싶어. 하지만, 달릴 수 있는 길이 없어.'


그래도 그 친구들은 나의 이름을 불러줬다. "옛날에 학교 다닐 때 그때 기억나냐?" "그때 너 진짜 찌질했었지." 하며, 나라는 사람이 있었음을 환기시켜줬다. 친구들은 나를 불러줬고, 나를 얘기했다. 아이의 아빠가 아닌 직접 닿아있는 나를 얘기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조금 철면피를 깔면 밥도 사준다. "돈도 잘벌면서! 있는 사람이 좀 사줘라!" 못난 나도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다.


육아를 하기 전,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인스타 피드에는 자기 아이들 사진으로 도배가 됐다. 본인들의 사진은 거의 없었다. '아이를 키워도 가장 중요한 건 나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너무 자주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은 SNS에서 과감히 숨기기를 해버렸다. 나는 당신의 아이가 아닌, 당신을 알고 싶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첫째의 사진으로 바꿨다. '내가' 아이와 함께 있는 사진으로. 아이와 함께 있는 삶을 시작했지만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아이보다 소중한 건 나였고, 아이를 위해 모든 걸 쏟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내가 없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에도 아이와 함께인 사진을 올렸다. 아이가 예쁜것만큼이나 내가 잘 나온것도 중요했었다.


그러다 첫째가 두살, 세살, 네살, 한살씩 나이를 먹어갔다. 내 얼굴이 들어가지 않은, 첫째가 가장 예쁘게 나온 사진들이 나의 프로필 사진, 그리고 인스타에 조금씩 더 많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둘째가 우리집에 찾아오고나서는 내 얼굴은 거의 사라졌다. 아이들의 손잡은 모습, 예쁜 모습이 내 프로필 사진의 1번 후보다. 어짜피 그걸 찍는건 나니까, 내가 찍고 있는 모습이니까, 내가 바라본 가장 예쁜 모습이니까, 나도 그 안에 함께 있다.


이제 막 나이, 이름에 관심을 가지는 첫째는 나의 이름과 나이를 참 많이도 불러준다. 부끄러울 정도다. 처음 만나거나, 아직 서로 누구 엄마, 누구 아빠로 말을 거는 어른들한테도 "우리 아빠 이름은 ㅇㅇㅇ이구요, 나이는 ㅇㅇ살이에요." 하면서 내 얼굴을 붉게 만든다. 만으로 몇살인지, 새해가 되면 몇살인지, 자기가 태어났을 땐 몇살이었는지 생각날때마다 확인한다.


내가 배트맨인 줄 알고 살았는데, 사실 내 안의 브루스 웨인을 잊지 않게 해주는 것만 같다. '아빠, 아빠는 나의 아빠지만 원래의 이름을 잊지 말고 살아야 돼.' 라고 내게 말하는 것만 같다.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지금 전부를 쏟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느끼는 게, 자신을 잊지 말라는 것이라니. 아이러니다.


내 이름 석자로 온전히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커가면서 많은 관계들 속에서 나라는 정체성이 생기는 것이기에. 그럼에도,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지금이야 말로 내가 사라지는 것만 같다. 다시 내 삶의 도로로 올라타지 못할 것만 같이 느껴진다. 나라는 사람을 잃게 되고 싶지 않다. 나와 아이들, 그 사이에서 내가 없어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애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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