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지만, 기다려주기로 했다

넘어진 아이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법

by 김재우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위험 감지 센서'를 타고 난다. 이 센서는 어른들이 흔히 알고 있듯이 위험을 감지하고 피하는 게 아니다. 반대로, 위험한 쪽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센서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하면 안될 것 같은 장난에 끊임없이 발을 내딯으려고 한다. 키우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이 센서는 그나마 조심스럽고 이미 데여본 경험이 있는 첫째는 약간 덜한 편이다. 세상의 놀라움에 점차 눈을 뜨고 있는 둘째는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다. 아직 뒤뚱거리며 뛰는 자신의 신체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을 못하고, 재밌어 보이는 곳으로는 어디든지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그리곤 넘어진다. "으앙~"


평소처럼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첫째가 놀이기구를 타는걸 보고, 자기도 언니처럼 둘째는 "나도나도"를 외치며 따라가다가 또 쾅 하고 넘어졌다. 넘어진 둘째 쪽으로 몸이 움찔했다. 다행히 둘째는 "으앙~" 하고 꽤 크게 울기는 했지만 놀이터의 푹신한 바닥에 넘어졌고 지켜본 결과 접촉사고 정도 되어 보였다.


둘째가 스스로 감정을 조금 가라앉힐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관찰로 미뤄봤을 때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둘째는 바닥에 한참을 철푸덕 누워있었다. 조금 기다렸다가, 울음이 멎을때쯤 둘째를 일으켜 세워주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거의 다다랐을 때쯤에는 눈물을 그친 채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보다 근처에서 다른 아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이 엄마가 후다닥 오더니 둘째를 안아서 달래주었다. "괜찮아? 아이고~ 넘어졌구나~ 어디 안다쳤어?" 둘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와 그 아이엄마를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나는 옆에서 "괜찮니? 무릎, 손, 툴툴 털고, 다시 출발!" 하고 외쳤다. 둘째는 언제 넘어졌냐는듯 해맑게 웃으며 첫째를 따라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둘째를 안아준 그 아이 엄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애를 강하게 키우시네요. 넘어졌는데 걱정 안되시나요?" 순간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아~ 얘가 원래 좀 잘 넘어져요. 하하." 하고 멋쩍게 웃었다. 내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해서 괜찮다고는 생각했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무관심한 부모처럼 느껴질 만도 했다.


해가 질때까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한쪽에는 첫째의 손, 한쪽에는 둘째의 손, 한쪽 어깨에 어린이집 가방 두개를 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아이의 위험함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걸까 싶었다. 내게 주어진 책무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처럼 여겨져, 집에 오는 길의 마음은 어두웠다.


육아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서툴게 할지언정 이를 기다려줘야 한다고 한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움찔한다. 나는 예민러이기에, 센서로 빠르게 상황을 감지해서 마음은 이미 아이들 옆으로 가있는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마음의 가면을 쓴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침착하기만 한 그 가면 뒤에 굳은 얼굴을 숨기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불안한걸 몰라서가 아니라,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요즘 한창 장난기가 가득 올라온 둘때는, 이 닦는 시간에 욕실에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안그래도 미끄러운 욕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있었고, 옆에서 둘째를 보고 있던 와이프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러다 미끄러진다. 조심해. 화장실에서 장난치는거 아니야." 둘째의 웃음소리만이 들려왔고, 거실에서 첫째를 데리고 있던 나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너무 날카로워져 있는거 같았다. '애들이 장난도 치고 그러는거지. 왜 저렇게 날카롭게 말하는거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화장실에서 큰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결국 장난을 치던 둘째는 계단에서 미끄러지면서 턱을 세게 찧었다. 곧 이어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났고, 부리나케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 바닥에 멍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와이프가 있었고, 몸부림을 치며 우는 둘째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면대에는 피가 한가득 묻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넘어지면서 앞니에 혀가 꽤 길게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일단 가면을 쓰고, 와이프에게 "첫째 데리고 나가." 하고 꽤 세게, 단호하게 얘기했다. 그리고, 둘째를 안았다.


피가 그렇게까지 많이나본 적이 없던 둘째는 자기 피에 꽤 놀랐는지 울음을 멈추지를 않았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밤 시간인데, 응급실에 가야하나? 응급실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만약 혀 봉합수술을 하면, 첫째는 누가 챙기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거야' 그 모든 불안함을 숨긴 채, 둘째를 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한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아이 혀 찢어짐' 을 후다닥 검색했다.


혀는 몸에서 가장 회복이 잘 되는 조직이라고는 나와있었지만, 그 말을 어떻게 믿나. AI 챗봇에 사진을 찍어 물어보고, 더 이상 피가 안나고, 둘째가 몇분 동안 좀 안정이 되고 나서야 화장실을 나왔다. 넋이 나가있는 와이프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는 첫째에게 의심을 숨기고 말했다. "크게 심한거 아닌거 같아. 경과를 좀 지켜보자." 그러고 얼마 안지나, 둘째는 과자를 먹는다고 했다. 아이들의 회복력은 경이롭다.


소란이 끝난 밤, 와이프와 대화를 했다. 와이프는 자기가 둘째를 돌보지 못해서 그렇게 됐다는 자책감에 빠져 있었다. "그 때는 일단 애를 돌봐야 했고, 나도 너무 당황해서 그랬어. 당신이 너무 그 순간에 놀라 있어서 더 말을 하지 못했다" 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화장실에서 위험한 행동을 했을 때 나도 나서서 더 강하게 제지했어야 했는데, 너무 아이를 기다려줘야 한다는 아빠의 태도를 견지하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여전히 나는 아이들을 기다려주려 한다. 저녁 준비를 할 때 옆에 와 돕겠다고 하는 첫째를 바라보며, 나는 "조심히 써" 라며 작은 진짜 칼을 건내준다. 그런 나를 보면서 와이프는 기겁한다. "애한테 진짜 칼을 주면 어떻게 해? 거기 아빠 요리할 때 옆에 있지 말고, 거실 와서 티비봐~" 내가 보는데서 하는 건데도, 와이프에게는 칼이라는 것의 위험함에 더 신경을 쓴다.


밖에 나가서 뛰어놀 때도 마찬가지다. 어디 새로운 데에 갈 때마다 와이프는 "차 조심해 애들아!" "뛰지마!" "조심!" 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그걸 보면 내 마음은 답답해진다. 아이들이 좀 뛰어놀다가 다치기도 하면서 커야될 것 같은데, 너무 안전하게만 키우려고 하는 것 같았다. "좀, 넘어져도 돼. 그러면서 크는거야" 말은 하지만, 나도 불안하지 않아서 그렇게 하는건 아니다. 되려 더 많이 살피려고 애를 쓴다.


얼마 전, 7살이 된 첫째에게 학원 끝나고 혼자 걸어와보라고 했다. 창밖으로 첫째의 모습이 보일 때까지 조마조마하다가,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 시작할 때 아무렇지 않은 듯 현관문을 닫았다. "나 왔어! 나 혼자 스스로 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뿌듯함이 밀려와 와이프와 친구 엄마들에게 얘기를 했다. 다들 비슷한 반응을 했다. "불안해서 어떻게 혼자 오게 놔둬? 나는 절대 못해." "나도 불안한데, 애를 믿어야지." 말은 그럴싸하게 한다.


우리 부부는 '위험 센서'에 대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한다. 와이프는 주로 예방주사처럼, 아이들을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반대로, 나는 혼자 넘어져도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주고 연고를 발라주는 편이다. 그 어느 중간 지점에서 상황에 맞게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매번 주어진다면 좋겠다. 정답은 없다.


그 이후로도 둘째는 몇번을 넘어졌어도 언제 그랬냐는듯 또 화장실에서 장난을 치고, 좋아하는 놀이기구가 있으면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간다. 저렇게 놀다보면 또 넘어지고, 또 다칠지 모른다. 엄마랑 있을 땐 그 나름의 방식으로 놀고, 아빠랑 있을 때는 아빠의 방식으로 놀아주려고 한다.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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