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다

엄마가 나를 낳았던 그 나이에 이르러서.

by 은하수

순이 씨는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났다. 곧장 씻고 나온 그녀는 출근 준비를 하며 딸이 먹을 아침을 만든다. 물건을 자주 흘리고 다니는 그녀는 건망증이 심하다며 스스로를 책망하지만, 출근 준비와 아침 준비를 30년씩 동시에 해온 그녀는 분명 멀티태스킹의 귀재다.


순이 씨는 50대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다. 그녀는 젊은 애들만 있다던 스터디 카페를 다니며 2년을 죽어라 공부했다. 노안이 와서 글씨가 예전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며 속상해하면서도, 매일 아침부터 새벽까지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순이 씨는 해냈다. 그녀는 마음먹은 건 노력으로 이뤄내는 사람이다. 그녀는 신입생 시절, 할아버지의 사업이 망해버린 바람에 1년을 휴학하고 알바를 몇 개씩 돌려가며 겨우내 졸업했다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곤 했다. 몇 년 전에는, 출근 전 매일같이 중국어 학원 새벽반에 다니며 HSK 자격증을 높은 급수로 따내기도 했다. 그래서 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는 성실하고 열심인 사람이니까 이 시험도 분명 붙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녀는 내 생애 만난 가장 강인한 사람이다.


순이 씨는 마음이 자주 동하는 사람이다. 강인한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공감능력이 깊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그녀는, 처음 보는 남에게도 곧잘 퍼주곤 한다. 그러던 순이 씨도 언젠가, 술에 취해 딸에게 전화를 건 적 있다. 왜 나만 이렇게 퍼주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늘 사람들에게 잘해주는데, 돌아오는 게 왜 이렇게 없는지 모르겠다고. 왜 나만 늘 잘해주냐고. 딸은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 같은 사람이 있어서 세상 균형이 맞춰지는 거라고. 당신이 있어서 세상이 기울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순이 씨는 어제 왜 그리 주정을 부렸는지 모르겠다며, 딸을 참 잘 키웠다고 말했다. 그 문자를 받은 딸은 왠지 가슴이 찡해졌다. 엄마는 여전히, 돌려받지 못해도 한없이 퍼주는 사람으로 살 것 같아서.


어릴 적, 순이 씨는 종종 딸내미와 나란히 누워 그런 이야길 들려주곤 했다. 당신의 부모가 조금만 더 자녀 교육에 관심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하고. 그래서 순이씨는 딸에게 자주 말했다.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자유롭게 세계를 돌아다녔으면 좋겠다고. 그때를 떠올리면 문득, 언젠가 좁은 거실에 앉아 했던 말이 떠오르는 거다. 엄마는 왜 나 유학 못 보내줘? 하고 보챘던 어린 날을. 그때 순이씨는 딸에게 돈이 없어 미안하다고 말했다.


순이 씨의 사주에는 남자 복이 없다고 나온다. 그녀는 여장군감이라며, 집안을 일으킬 사람이라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무뚝뚝하고 경제관념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멋모르고 신용카드를 펑펑 써댔고,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에 순이씨에게 고백했다. 순이 씨는 화가 났지만 열심히 살아내는 건 그녀의 주특기였기에, 남편의 카드를 모조리 가위로 잘라버리고 주말도 없이 열심히 일했다. 20년을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며 돈을 불린 덕분에, 좁은 집에 살던 그들은 바다가 보이는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었다.


그쯤 순이 씨는 큰 딸을 서울로 보냈다. 딸은 순이 씨의 사랑과 결핍을 먹고 자랐다. 그녀의 부모가 해주지 못했다던 것들을 딸에게는 곧잘 해줬다. 덕분에 딸은 큰 어려움 없이 대학도 졸업했고, 유럽 여행도 몇번 다녀왔다. 딸의 세계는 엄마 덕분에 넓어졌다. 머리가 큰 딸은 내려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젠 일년에 기껏해야 두세번 집에 내려온다. 그녀는 이제 흰 머리가 많아졌다. 순이 씨는 어느새 외할머니의 얼굴을 많이 닮아 있고, 주름도 많이 늘어있다. 딸이 그녀의 세월을 먹고 사는 동안, 순이씨도 나이를 많이 먹은 탓이다. 순이 씨는 이제 60살을 목전에 앞뒀지만, 그녀의 삶은 여전히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인데, 이상하게도 늘 운이 조금씩 빗겨간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치지 않고 고군분투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니까, 또 한 번 그녀는 당연히 해낼 거라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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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도 내년이면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다.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 말이다. 엄마는 나와 같은 햇수의 삶을 살고 엄마가 됐다. 지금의 내가 얼마나 철없고 불완전한지 떠올려보면, 그때의 그 어리고 위대한 엄마가 얼마나 도망가고 싶었을지, 아직 얼마나 꿈 많은 나이인지를 비로소 깨닫는다. 딸은 늘 늦게서야 알게 된다. 엄마가 엄마가 됐던 나이쯤 되고서야 엄마의 마음을, 직장생활을 하고서야 비로소 아빠가 버텨온 30년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나는 평생을 한 발짝 늦게 알 수밖에 없다.


엄마는 늘 내게 씩씩하다고, 혼자서도 뭐든 곧잘하는 딸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강인하지 않다. 잘 무너지고, 곧잘 힘들어한다. 내 인생도 영 쉽게 풀리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그녀가 내게 준 귀한 선물이다. 그녀가 멋지게 버텨온 삶을 지켜보며 배운 것들이다.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가지만, 나는 엄마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은 없다. 그래도 그녀를 생각하면, 그녀가 멋지게 이루어낸 59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인하고 위대한 순이 씨의 사랑을 먹고 자랐으니까.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가니까, 이젠 동갑내기 엄마가 나를 가지느라 고이 접어야 했을 꿈을, 그녀의 삶을 힘껏 응원해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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