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핀란드에서 배워야 할 것

편히 앉을 자유

by 이든

명절이 특히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재수 또는 N수생, 취준생, 미혼자 등 사회가 말하는 '인생의 과업'을 제 때 이루지 못한 청년들이다. 일찍이 가정을 꾸리고 '정상적인' 삶의 모습을 갖춘 어른들이 쉬이 던지는 덕담과 조언에 미생(未生)들은 상처를 입는다. 그들의 말에 어떤 악의가 담기지 않았더라도 이들은 스스로 위축되어 자존감을 깎아내곤 한다.


올해 수능의 지원자 51만 명 중 재수생 이상이 13만 명(30.8%)*으로 역대 최대 비율이다. 대졸 신입사원의 입사 연령도 지속적으로 상승해 최근에는 30세**를 넘겼다. 평균 초혼 연령 또한 10년 사이에 남녀 모두 5살가량*** 늦어졌다. 20살에는 대학 입학, 졸업 후에는 취업, 그리고 결혼이라는 지난 세기의 인생 공식은 빠르게 낡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제도는 이러한 시대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듯하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의 공산품처럼,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한 치의 빈틈과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다. 중퇴, 유급, N수 등 사회가 정한 공정 일정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하자품 취급을 받는다. 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취업현장에서도 '공백기'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위협적으로 여겨진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1

** 인쿠르트, 2018

*** 통계청, 2020




핀란드의 교육제도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이 유연하고 포용적이다. 핀란드의 학제는 기본적으로 의무교육인 9년제 종합학교와 그 이후 진학할 수 있는 인문계, 실업계 고등학교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두 계열의 선택 비율도 5:4 수준으로, 사회적 우열보다 학생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편견 없이 선택된다. 그리고 이 진로를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학생의 의사에 따라 고등학교 진학을 1년 유예할 수 있는 종합학교 '10학년'을 다닐 수도 있다. 지금껏 6-3-3 공식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그 시간에 몸을 욱여넣었는데, 이 규격외의 학년제는 낯설고도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나라 '고교학점제' 모델 중 하나인 핀란드의 고등학교는 심지어 학년과 반의 구분이 없으며 과목별로 원하는 세부 '모듈'을 선택해 학점을 채워 졸업한다. 재학기간에는 권장(3.5년)만 있을 뿐 학생의 학습계획과 역량에 따라 자율적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때문에 핀란드 대학의 평균적인 입학과 졸업 연령은 23.7세와 28.5세로 한국(19.0세, 24.9세)에 비해 굉장히 늦다(OECD, 2020). 한국의 대학 학부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나잇 대지만, 스스로의 분명한 선택으로 진학한 학생들의 학습 열정이 어느 정도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핀란드의 교육제도도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내부에서도 오랜 비판과 논쟁이 존재하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편적인 교육문제도 함께 겪고 있다. 핀란드를 교육계의 스타로 만든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순위도 점차 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핀란드는 ‘모든 학생의 성공’이라는 분명한 컨셉을 가지고 정치권에서부터 일선 교사와 시민 모두가 열정적으로 교육개혁을 논의하고 꾸준히 수행해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앞서 말한 고교학점제, 내신 성취평가제도(절대평가) 등 여러 방면으로 나름의 교육제도 개선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대학입시라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반환점이 그 이하의 모든 교육문제를 지배하여 학생들의 삶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지식보다 역량을 기르자는 혁신적인 구호에도, 결국은 대학입시를 향한 경주코스의 포장재만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인구수 550만의 이 작은 나라로부터 학생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면 좋겠다. 학생을 경주마보다 존중받는 인격체로 대하는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 시민 모두의 사회적 합의 위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어느 제도보다 도전적인 그 합의가 있다면, 향후의 교육개혁 조금 더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은 명절에 자유롭게 앉아있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