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

겨울이 간다: 데이식스

by 박진권

사랑한다는


내 사람에게 한없이 따뜻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을 충분하게 할 수 있다. 예전부터 우리 가족은 전화 끝에는 꼭 사랑한다고 말했다. 유치원 입구에서 배웅해 주는 부모님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사랑해를 연신 외친 기억이 있다. 군대에서 누나와의 통화 끝에도 ‘응, 나 이제 가야 해. 사랑해~’를 꼭 붙였다. 내가 애정을 품은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박진권




겨울이 간다

: 데이식스


나는 타인을 완벽하게 구별해 놓는다. 단 가족은 예외로 한다. 그러니까, 가족과 연인(결혼을 결심한 상대) 그리고 친구와 친한 지인 마지막으로 지인으로 총 5단계로 구별한다. 그 방법은 가볍게는 연락으로 구분된다. 심심해서 연락하는 것, 조금이나마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읽고 답을 하지 않을지언정 불쾌한 감정이 들지 않으면 친구라고 생각한다. 언제든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상대, 고민이 있으면 나눌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친한 지인은 똑같이 편하게 연락할 수 있지만, 실용적인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과는 용건이 없으면 연락하지 않는다. 지인은 오다가다 한두 번 마주친 사람 정도다. 서로 번호가 없다면 당연히 내 인생에선 없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던질 수 있는 것은 가족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간관계가 상당히 좁은 내 상황에서 친구는 꽤 가까운 사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아마도 서로의 50년이 지나 서로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상황에도 내뱉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안하고는 오롯이 경험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가정환경이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사랑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은 아무리 무뚝뚝해도, 제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은 T와 F, 그러니까 어떤 유형으로 규정 지을 순 없다. 논리를 중요시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깊고 진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무분별하게 뱉어내지 않기에, 정말 사랑이라는 감정이 샘솟는 상대에게만 표출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어떤 단어의 사용이 사고형과 감정형에 기반해서 사용된다는 것에 대한 신뢰할 만한 학술 논문조차 없는 상황이다. 사실 MBTI 자체가 과학적인 게 아니라 통계적 경향성에 불과하기에 연구 또한 활발하지 않기도 하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남들보다 논리를 우선할 뿐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완전한 T이지만 어떤 F보다도 깊게 사유한다. 깊게 사유한 좋은 감정의 여운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것에 명확한 확신이 생기면 입에서 ‘사랑한다’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마음속 냉기가 녹아야만 가능한 것이지 사고형과 감정형은 전혀 관련이 없다. MBTI는 표현 능력까지 대변하지 않는다. 개인이 구사하는 단어의 개수는 공부한 만큼만 튀어나오고, 표현력은 표현해 본 만큼 발현된다. T든 F든 마음이 꽁꽁 얼어있는 겨울이 지나가야만 누군가에게 ‘사랑해’라는 표현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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