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만 이해하면 단어는 중요하지 않다?

단어의 중요성

by 박진권

맥락만 이해하면

단어는 중요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대표적으로 고맥락 사회다. 주어나 목적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도 대화를 끝마칠 수 있다. 그러나 오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목적을 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월세 논란이 있다. 월세 100만 원에서 a가 b보다 10만 원을 추가 부담하면 고정값 100만 원은 불변해야 한다. 즉 A는 55만 원, B는 45만 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논란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렇게 반박한다. 술집에서 10만 원이 나왔을 때, A가 B보다 1만 원 더 낸다고 하면 A는 6만 원, B는 4만 원 아니냐는 반문이다. 그렇다, 여기선 10만 원이 고정값으로 책정되지 않는다. 이것이 고맥락 사회의 최대 단점이다. 한 번 의미 전달에 문제가 생기면 꽤 오랜 시간 설득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권위를 가지고 찍어 눌러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빚어진다. 사람들의 끊임없는 설득에도 60대 40이 맞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의 과반이 ‘서울대 수학과’라는 말에 꼬리를 내려 말고, 다리 사이로 곱게 집어넣었다.


권위를 그토록 혐오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외치기도 한다. 멍청한 사람은 단어에 집중하고, 똑똑한 사람은 문장, 즉 맥락을 살핀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맥락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단어에만 집착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맥락만 맞춘 채 세부적인 단어 하나하나를 틀리는 것을 옹호하는 것 또한 기현상이다. 다름과 틀림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고맥락 사회에서 맥락이 더 중요한 것은 맞지만, 문장을 이루는 단어의 조합을 무시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A라는 사람의 직업이 뭔지 모르겠다. 미술, 모델, 배우 등 이것저것 깔짝깔짝하는데,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 됐으면 한다. 괜히 정이 간다.”


맥락은 응원이지만, 어휘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것을 맥락으로 이해하고, 응원이라고 단지으면 한국 사회에서 ‘글’이라는 것은 금방 사장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독서 인구가 줄어들어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되었는데, 이 수준의 방파제도 제거해야 한다면, 대체 글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위의 글과 비슷하게 작성된 글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욕인지, 칭찬인지, 애매한 자세로 해당 문맥에 맞지 않는 단어를 끼워 넣어 은은하게 비하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맥락도, 문장에 집중한 것도 아니다. 그저 완전하게 틀린 멍청한 글일 뿐이다. 국어 교사처럼 완벽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상식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고맥락 사회에서 틀렸음을 인정하는 자세는 필수다. 가치 없고, 의미는 논쟁을 끝없이 반복하는 게 즐겁지 않다면 말이다.


“단어를 무시하라는 게 아니라, 단어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문제라는 겁니다.”


단어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반대로 똑똑한 사람들은 맥락에만 집착하는가? 전혀 아니다. 그러나 요즘엔 맥락을 파악하는 게 더 월등한 것이라고 설파한다. 마치 과거에 공감도 지능이라며 MBTI(T)를 사회적 지능이 낮은 사람처럼 비하했을 때와 비슷하다. 개인과 가족에게만 공감하는 것, 동물에만 공감하는 것은 공감 능력이 아닌, 뒤틀린 이기심일 뿐이다. 진정한 공감은 타인을 비하하지 않는다. 진실한 공감은 자신을 떠받들며 거들먹거리지 않는다. 사회적인 공감 능력은 스스로 피해자라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성장한다.


고맥락, 공감 능력 등 단일 안건으로 떠드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모 아니면 도처럼 그저, 불편한 사람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밀며 온갖 혐오의 말을 내뱉는다. 경계선 지능, 국평오, 맥락맹 등 쓸 필요도 없는 온갖 이상한 단어를 적절하지 못한 상황에서 토해낸다. 지능이 높아도, 지혜롭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렵고, 맥락을 파악해도, 문장의 참뜻을 무시하면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회에서 개떡같이 말하는 사람이 보호될 이유는 없다. 찰떡같이 잘 알아듣는 사람들이 지쳐 쓰러지기 전에 개떡같이 말하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은 어른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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