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나의 서재

글·사진 박진권

by 박진권

거실, 나의 서재


글·사진 박진권


KakaoTalk_20260225_134721810_07.jpg


중증 ADHD와 사투를 벌이는 나에게 선행 장치는 필수다.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에도 시작, 몰입, 명확한 마무리와 관련한 장치가 필요하다. ADHD 환자는 어떤 분야든 시작이 가장 힘들다. 나 또한 모든 일에 앞서 특정 장치가 없으면 시작하지 않는다. 독서할 때도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와 같은 행동 억제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매번 달라지고, 해소되지 않으면 책을 집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ADHD, 우리가 몰입하기 위해선 구실이 필요하다. 읽고 싶은 분야와 저자, 선호하는 출판사까지 맞아떨어지면 몰입은 어렵지 않다. 더해서 명확한 마무리도 있어야 한다. 완독 후 서평과 산문을 작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호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서평 덕분에 독서하고,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산문을 쓴다. 과정과 마무리라는 보상 덕분에 몰입 가능하고, 행동에 대한 의문이 사라진다.


위의 모든 이유를 아우를 수 있는 게 바로 장소다. 장소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정리되지 않은 공간, 요란하거나 가사가 있는 음악, 타인의 소음은 독서를 방해한다. 깊은 독서의 조건은 꽤 까다롭다. 정돈되어 있으며,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타인의 소음이 없거나 적은 안온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 곳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있다고 해도 꽤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이미 장소에 대한 비용을 내고 있으며, 불필요한 모든 것을 배제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은 단연코 홀로 사는 집뿐이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선에서 애정 있는 것들로 거실을 꾸몄다.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자, 현관을 열고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한 환경을 만들면 몰입도 더 수월하다. 읽고 싶은 분위기의 장소는 다음 행동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돕고, 분산되는 정신을 한 공간에 붙잡는다.


나만의 장소를 만든다는 것은 꾸밈에만 국한되어 있는 허세가 아니다. 더욱 짙은 감성을 자아내면서도 이성마저 또렷해지는 극한의 조화를 위함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