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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셀나무 Jan 05. 2024

세븐틴, 방구석 소속사가 응원해!

엄마와 딸의 덕질이야기

"엄마, 큰일 났어요"

내일 있을  고려시대  사회시험을 앞두고  방에서 공부하던 5학년 그레이스가 갑자기 방에서 소리를 지른다. 가슴이 철렁한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안 빠지는 고무장갑을 냅다 입으로 물어뜯어 재끼며 갖가지 불길한 상상이  쫓아올 세라 후다닥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세븐틴 13명 중 아직 2명의 생일이 안 외워져요"






이제 4개월째 들어가는  그레이스의  세븐틴을 향한 덕질은  도저히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철옹성 세뱃돈지갑을 기꺼이 개방하며 지난 앨범을 사 모으기에 온 총력을 기울였고 포카 수집을  향해 점점 소비 충성도를 높여갔다.

"세븐틴이 불러주는 노래로 알람을 맞추면 벌떡 일어날 수 있는데..... 엄마 제발요~"

눈도 못 뜨고 아침마다 거실로 질질 끌려 나오는 아침잠 많은 그레이스가 눈을 반짝이며 집요하게 졸라대는 통에 좀 편해질까 싶어 스트리밍 서비스 Spotify를 결제해 주었다.  결제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요즘, 알람은 옆방에서 자던 내가 끄고 그레이스는 아침마다 내 등에 업혀 나온다. GOING SEVENTEEN!  유튜브에서 2017년 1회를 찾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에도 몇 편씩 지금까지도 열혈 시청 중이다.'채널 십오야'편은  범인 잡는 수사관도 아닌데  봤던 내용을 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돌려보며 빠져들어 보는 건지.  끓는 물에 계란 대신 시계를 넣었다는 뉴턴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뉴턴이 진지하게 몰두했다면 그레이스는 낄낄거리며 몰두한다는 것만  다를 뿐.

간식을 먹으며  밑에 깔린 종이까지 입에 넣는 걸 보고야 말았다.

고이고이 모으고 있는 앨범들



덕질은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이런 사전적인 의미라고 한다면 사실 나도 덕질 중이었다. 지금은 단체로 나라의 부름을 받고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는 군인이 된 BTS를 말이다. 2017 AMAs 무대에서 펼친 현란하고도 감동적인 DNA퍼포먼스를 입을 쩍  벌리며 본 것이 나의 덕질의 시작이었다. 그야말로 '덕통사고(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럽게 어떤 대상에 불현듯 푹 빠지는 일 )'였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 있는 아이돌이라는 신문기사를 접한 후 살짝 호기심이 있었는데  세상에, 너무 멋지잖아. 열광하는 미국 현지팬들을  보며 같은 한국인이란 사실이 뿌듯했고 국위 선양하는 기특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날 이후 눈만 뜨면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고 기사를 찾아 읽고 해외 반응을 살피며 온통 머릿속에 BTS를 담고 다녔다.  야구르트 아줌마가 계시면 커피를 찾았고 최애 뷔의 사진이라도 발견하는 날엔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집에 찾아온  손님들이 돌아가실 땐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치든말든 손에 늘 레모나 한통씩을 들려 보냈다.  처음엔 만찢남 뷔로 시작했지만  (달려라 방탄)등의 예능과 다양한 활동을 통해 각각 멤버들의 또 다른 출구 없는  매력을 알게 되었고 춤, 노래, 에티튜드까지 완벽한  BTS를 향한 소심한 덕질만으로도 삶에 힐링이 되며 스트레스를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되었다.







" 왜 세븐틴이 13명이야? "

나도 처음엔 그런 질문을 할 정도의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13명의 이름과 얼굴을 매칭하고 본명까지 익히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처럼 딸아이 덕질 4개월은  우리 가족을 강제 반 캐럿(팬클럽이름)화 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요즘 남자 아이돌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겼다고  희한한 주장을 하는 남편은... 안타깝지만 아직 세븐틴 멤버와 다른 팀 아이돌 멤버를 구별하지 못할 때도 있다) 출연한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도록 수시로 확인하며 최애를 서로 공유하고  리더 에스쿱스의 십자인대 부상소식이 들려왔을 땐  가슴 철렁 심란한 마음을 함께 나누었다. 아무도 모르는 방구석 소속사 한 팀인  우리는 우리 집 소속가수 새븐틴이 (2023 MAMA AWARDS)에서 올해의 앨범상 대상을 수상했을 땐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환호했고 그날 밤늦도록 수상소감을 돌려보며 흥분으로 쉽게 잠들지 못했다.  지금 우리는 곧 방송될 (나나투어)에서 세븐틴을 만날 생각에  여행가는 날 기다리듯  들떠있다.




그 누군가를 좋아할 때 나오는 에너지는 밝고 활기차다.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몰입의 결과로 얻은 방대한  지식으로 3박 4일 동안이라도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열심히 투혼을 발휘하며 활동하는 에너지 넘치는 멤버들을 보며 건강하고 좋은 선한 영향력을 받는다. 또한 같은 팀을 좋아하는 학교 친구들과의 유대관계가 돈독해지는 등 덕질의 장점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의 덕질에 부모가 함께 참여함으로 더욱 소통이 잘 되고 가정 분위기가 화목한 점은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이다. (세븐틴멤버에 빠져있다 보니 이성친구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도 나름 장점일 수 있겠다) 덕질을 경험해 본 나는 당연 아이의 덕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응원한다. 의욕이 없는 것이 문제지 두 눈 반짝이며 얼굴 가득 생기 넘치는 행위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미들~BTS멤버들이 재결합하는 그날까지 잠시만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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