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나는 불임이었다
_늦둥이 육아 에피소드 1.
분명 나는 불임이었다.
첫 아이가 6살이 되던 해 동생 소식이 없어 찾은 산부인과에서 원인 모를 불임 판정을 받았다.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외동아이 하나 잘 키워보자는 다짐을 하며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주위에서 아이 혼자는 외롭다, 그래도 아이가 둘은 있어야지 하는 소리를 들어도 나는 당당했다.
“ 불임이래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제발 아니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 것만 같은.
주말부부였던 우리 부부는 모처럼 연휴를 맞아 북악스카이웨이로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있잖아, 사실 이제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은 없어. 아들 이제 고 1이면 다 키웠지 뭐, 엄마가 없어도 아빠가 있으니 어찌어찌 살아는 갈 테고...”
교회에서 전교인이 함께 ‘감사일기 30일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중 마침 어제 유언장을 미리 한번 써보는 순서가 있었고 눈물 콧물 범벅 꺼이꺼이 오열을 하며 요란하게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다시 평온해진 상태로 유언장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드라마 촬영으로 유명해진 산모퉁이 카페에 들어가 시럽 듬뿍 넣은 라떼를 주문했고 한 모금 커피를 삼킨 순간 속이 거북하고 메슥거렸다. 뭔가 과거로 빨려 들어가 17년 전 그 옛날, 기억도 안나는 그 언젠가 처음 입덧했던 그 울렁거림. 그게 왜 떠오르는 거냐고. 아니, 뇌는 전혀 기억을 못하는데 몸이 먼저 기억해서 알려주고 있는 것만 같은.
세포 속 어느 심해에 오랜 기간 밀폐된 체 가라앉아있다가 커피 향의 신호에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떠오른 느낌. 침착하자. 침착해.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날짜 계산을 해보는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설마? 심장이 하도 뛰어 온 맥박은 덩달아 설쳐대고, 정신은 그 틈을 타 몰래 탈출하려는 걸 겨우 붙들어 앉혔다. 아무 눈치 못 챈 남편을 다음날 고속버스에 태워 보내고 동네에서 누가 볼세라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이나 떨어진 낯선 동네에 가서 민망해하며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선명한 두줄이었다.
당장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 6주입니다”
너무 충격이면 잠시 주위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만 있는 것처럼 정적이 흐르고 고요해진다는 걸 그리고 잠시뒤엔 온갖 잡생각들이 다 어디 숨어있다 한꺼번에 몰려와 여기저기 정신을 못 차리게 쥐고 흔든다는 걸 처음 경험했다. 잠깐. 진정해. 진정해. 차근차근 하나씩 생각해 보자고. 내가 지금 몇 살이지? 남편 은퇴가 몇 년 남았더라? 아들이 지금 고 1이지? 남편과 아들에게 과연 환영받을 소식일까? 주시려면 진작 좀 주시지 왜 이 시기에? 뭐 답도 없는 질문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가장 친한 셋째 언니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정리가 안되니 차마 남편에게 먼저 전화할 수는 없었다.
“ 언니, 나 진짜 큰일 났어”
심상치 않은 내 목소리를 듣고 언니는 무얼 직감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 아냐, 괜찮아, 요새 의술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암은 다 치료될 수 있어, 마음 단단히 먹어”
“ 언니, 나 임신인가 봐”
“ 꺅!”
전화기너머로 비명소리가 들렸다. 환호하는 비명소리가. 호들갑스럽게 축하해 주는 언니 덕분에 조금은 정리가 되고 있었다. 그래 이유가 있겠지, 이렇게 늦게 주신 이유가. 고민스럽고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지만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심호흡을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나 임신했어. 6주래”
남편은 순간 말이 없었다. (침묵을 이해한다 무방비 상태에서 받은 충격이 꽤 클 테니까 )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 후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조금만 일찍 주셨으면 정말 정말 기쁜 소식이었을 텐데...... 그래도 이제라도 아기를 주셨으니 ...... 더 열심히 일하라는 뜻인가보다.”
다행이다.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이 정도로 말해준 것도.
이렇게 나는 ‘세상에 이런 일이’ 에 나갈만한 45세 초고령 산모가 되었다.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