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력 밖으로의 여행 1
바야흐로 A.I. 시대 - 우리 일상이 전폭 달라지니, 앞으로 30년은 겪을 인류문명 전반의 혼란과 새로운
질서, 그런데 30년 전, 난 이를 목격하며 함께 준비하다 멈췄고, 이후 종종 되새김하며 의식적으로
경험했다. 실제로는 본 적 없는데 꼭 본 것 같은 착각 증세를 심리학 용어로 ‘데자뷔(déjà vu)’,
영어로는 already seen, 벌써 봤다는 - 그러니까 시간여행 s.f.를 쓰려 하냐고?
s.f.를 좋아하긴 하지만, 내 경우는 심리적 착각이 아니고 실제 겪거나 구체적 물증들이 있으니, 다큐
쪽이다. 얘기 보따리를 뒤적여보면 구슬 서 말은 족히 넘는데, 이걸 어떻게 꿰어야 하나?
환갑을 앞두고 다시 고향 떠나 몇 해가 지나다 보니 심심찮게 들려오는 친구들 부고 소식 - 혼자
알고 있음 안 되겠다 싶어, 좀 서두르기로 했다.
굳이 제목을 찾자면 A.I. 시대의 교육 - 독자는? 둘로 나뉠 수 있겠다. 자녀 교육이 큰 걱정인 학부모나
다음세대를 제대로 키워야 할 교사 및 교육정책자, 그리고 아주 몹쓸 교육의 피해자였던 (그래서 늦게라도
재교육이 절실한) 우리 구닥다리 기성세대. 처음부터 혹은 원점에서 다시 교육과정을 구축하거나 밟아야 할 필요를 느끼는 당사자들이겠다.
다음은 2016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인공지능과 인간 - AI 연구에서 길을 잃은 즐거움〉이란
제목으로 문체부 어느 매체에 기고했던 글의 도입부다.
어느덧 내겐 전생의 일처럼 아득해진 ‘인공지능(AI) 연구’, 그 중심에는 꼭 1년 전, 이번 생의
여행을 마친 슈넬레(†Prof.Dr.Helmut Schnelle, 1932~2015) 선생님이 계셨다. 유럽 연합(EU)
산하 ‘언어와 두뇌’ 융합연구단 단장이었던 선생님은 물리학과 사이버네틱스 연구에서 출발해
형식기호론으로의 여정에서 만난 MIT 촘스키 교수와 함께 이론언어학의 기초를 다졌고,
자동장치(automata)의 형식논리를 자연언어에 적용할 징검다리를 찾아 그물언어학(net-linguistics)의 지평을 열기도 했다. 여기서 ‘그물’이란 인간 두뇌의 언어중추에 해당하는 신경망(neuronal net)을
뜻한다.
슈넬레 선생님을 만난 건, 상상력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고는 만날 수 없는 신기루 같은 -
동틀 녘 호수에 비친 앙코르와트 사원처럼 눈으로 봐도 존재를 믿기 어려운데
손으로 더듬을 수 있고 심지어 인간 언어로 생각을 나눌 수도 있는, 그런 충격적인 행운이었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인 언어학대회가 바로 전 끝나버린 포스터를 보고 아쉬워서 무작정 찾아간
애송이 유학생을 앞에 놓고 선생님은 아직 다 풀지 못한 쟁점들을 열심히 판서하며, 신경생리학과
언어중추 사전(lexicon)의 관계를 설명하셨다. 독일어 - 글은 읽지만 말하고 듣는 건 어려운 때였다.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터라 scientific american 같은 과학잡지에서 인간 두뇌 관련 기사는
빠짐 없이 탐독했는데, 그렇게 알고 있는 내용들을 떠올리며 선생님 눈빛에 이따금 동조했을까?
선생님은 곧 비서를 불렀고, 나는 도서관 바로 옆방, 가장 좋은 연구실을 배정받았다.
깨끗하게 치워진 방이었으나, 한쪽 벽을 다 채운 미닫이 벽장에는 엄청난 원고가 쌓여 있었다.
방의 옛 주인이 정리를 하나도 안 하고 떠난 모양새였다. 원고 몇 개를 집어 들었는데 유럽과
북미 출신 쟁쟁한 이름의 학자들이 옛 주인 발머 박사 혹은 토마스에게 보낸 초고들이었다.
토마스 발머 박사는 여기저기 밑줄을 긋고 반대 논리를 들이대며, 선배 학자에게도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 뻘건 글씨로 떠오르는 견해들을 써 갈겨 두었다. 옛 주인의 재기 발랄 혹은 오만방자에
키득거리며 시시 때때 정상급 학자들 어깨너머로 최신 가설들을 새겨 읽자니, 말 그대로 노는
물이 달라지고 안목 자체가 쑥쑥, 이건 보통 특혜가 아니었다. 그리고 막 도서관에 도착한
갓 출간된 그의 책을 펼치자 “아빠들의 언어학은 죽었다.”로 시작하는 서문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영화 친구들과 스터디하며 되새겼던 문구 “아빠들의 영화는 죽었다.” - 오버하우젠에
모인 청년 영화인들의 독립영화 선언을 패러디한 게 분명했다. 난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언어학은 아마도 옛 문법 전통에서 출발한 탓인지, 감정 기복 따위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는
무미건조한 문체로 작성되기 마련인데, 이렇게 선정적 문구로 시작하는 학술서라니!
그를 빨리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사서 영감이 불쑥 내뱉었다.
연구소에서 제일 좋은 자리, 도서관 옆 방이 1년 넘게 방치되었다 갓 들어온 외국인 학생에게
주어진 이유가 그제야 명확해졌다. 며칠 후 사서 영감은 신문 몇 쪽을 내밀며 기사 제목을 크게
읊조려 나를 더 놀라게 했다. 독일 언론은 그 죽음을 이렇게 적고 있었다.
아빠들의 언어학이 아니라, 자칭 타칭 독일의 A.I.였던 토마스 발머 자신이 죽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