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력 밖으로의 여행 2
독일의 A.I.라 불리던 발머 박사의 연구실을 물려받았으니,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A.I.인지,
그것부터 알아야 했다. 문득 ‘6백만 불 사나이’와 ‘소머즈’가 상상력을 간질였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능력을 개발하고 입히는 작업, 그거 내가 꿈꾸던 공부였는데!
생물학과 전자공학 두 분야가 결합되는 바이오닉스 bionics, 고3 올라가기 직전이었나?
그런 게 있다는 글을 보고 사전을 찾으며 영어 공부를 시작했었다. 굉장히 궁금한데 혼자 공부할
엄두가 안 나는 분야를 알게 되었으니 드디어 대학에 가 볼 이유가 생겼다. 하지만 막막했다.
인격이 뭔지 전혀 모르는 선생이 우글대던 나쁜 고등학교, 세계 문학전집 하나를 챙겨 교실 뒷문
바로 옆이던 내 자리에서 오전 시간을 때우고 점심을 먹고 나면 종종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허둥지둥 학교를 빠져나와 경복궁 가는 버스에 올라타면 사간동 프랑스문화원 근처에 내려주었고,
오후 1시부터 내내 틀어주는 영화를 볼 수 있었다. 1970~80년대 이 공간은 독일문화원과 함께,
한국영화를 세계 정상으로 도약시킨 주역이 되는 박찬욱이나 홍상수를 비롯한 영화광들이 청년
시절, 새로운 파도(new wave)라는 뜻의 '누벨바그(la nouvelle vague)', 작가 주도의 실험적인
영화들을 실컷 접한 아지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덧 프랑스며 독일의 한국문화원들이 유럽
친구들 사이에서 한류(korean wave)를 만나는 거점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니 격세지감, 우린
정말 파도의 방향을 역전시켰다.
나는 달리 갈 곳이 없어 자꾸 갔던 건데, 눅눅하고 컴컴한 영사실에서 오래되어 비가 죽죽 내리는
장 콕토, 그리고 알랭 르네와 루이 브뉘엘의 초현실주의 흑백 필름도 반복해서 번갈아 틀어주었다.
‘아빠들의 영화’ 문법을 마구 깨부수는 아방가르드에 대사가 별로 없으니, 아직 머리가 말랑하던
시절이라 뜻 모르는 문구들이 외워지곤 했다. 수십 번을 보고 또 봤던 탓이다. 돌이켜 보면,
참 끔찍했던 고등학교 덕분에 언어 습득의 원리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실험을 했던 셈이다.
암튼 ‘6백만 불 사나이’와 ‘소머즈’ 만드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목표란 게 생겼으니, 매번 전교
등수를 절반으로 접는 시험을 예닐곱 번 거친 다음 전자공학과 생물학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좋은 대학교에 입학했었다. 내신 같은 거 안 보던 시절이라 가능했다.
그림 그리고 시 써서 종종 상을 받던 내게 자연과학 공부는 놀랍고 신선했다. 입학하고 곧,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와 거대한 우주의 구도가 닮았다는 이태리 천체물리학자의 특강을 들으며 창조주의
비밀을 엿듣는 것 같아 가슴이 벌렁거렸다. 친구들은 기초과학을 익히는 문제 풀이에 여념이 없던
반면, 나는 경이로운 사실과 이치를 찾아낸 이들의 삶과 그들의 탐구에 매혹되어 대하드라마처럼
여겨지는 과학과 문명의 역사에 심취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학업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이 공부가 독일에서 이어지나 싶어, 학부 수업부터 대학원 수업까지 인공지능 관련
강좌는 다 들어가는 탐색이 시작되었다. 대학원 수업은 온갖 학문이 한 자리에 모인 박람회의
견학 같았다. 철학, 심리학, 수학, 물리학, 생물학, 의학, 전산학, 기계공학, 전자공학, 언어학 등
학생들 전공은 물론 함께 하는 교수들의 배경도 워낙 다양해 매주 콜로키움 내용은 발제자에 따라
전혀 달라졌다. 그런데 이들 모두의 공통 관심이라면, 인간의 능력을 닮은 혹은 능가하는 자동장치의
제작 가능성이었다.
자동장치(automata)의 발명, 이는 오래된 꿈이었다. 수백 년 이어진 십자군 전쟁 시기, 하루 다섯
차례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 과학자들은 해시계 말고, 하루 종일 햇빛이 작렬하는
사막이 아닌 곳에서도 작동하는 톱니바퀴와 피댓줄로 이어진 자동시계를 제작했다.
이들의 성과는 르네상스 시기 유럽 문화로 전수되었다. 아직도 유럽의 큰 도시 대성당이나 시청에
설치된 시계탑에서는 창조주의 질서를 재현하는 요란한 기계장치의 작동으로 정오를 알리는 목각
인형들이 행진을 한다. 세종 때 장영실이 제작한 자동 물시계 '옥루'에도 시간에 맞춰 인형들이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 장치가 달려 있었다.
자동장치 -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심리학과 전산학, 언어학과 신경과학 등이 통합되는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을 기반으로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 즉, 오감(五感)의 기능을
재현하는 기계를 설계한다니! 예컨대 보기(seeing)와 관련해서는, 인간의 시각을 모방한 렌즈와
조리개와는 많이 다른 시각의 가능성을 찾아, 밤에도 잘 보는 고양이 눈, 움직이는 것만 확실히
포착하는 개구리 눈, 사람보다 시야가 2배나 넓은 잠자리의 눈 구조에 천착하는 연구가 흥미로웠다.
어느덧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는 오늘날의 로봇에게 이렇게 다른 눈을 모두 장착한다고 상상해 보라!
반면 학부 학생들의 AI 세미나에는 이게 무기 산업이 탐내는 영역이 틀림없다면서 강의실 안팎으로
“전쟁 반대!”를 외치며 뛰어다니거나,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몰려와 교실 난입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고, 더 강렬하게 “전쟁 대신 사랑!”을 표현하려 아예 사랑놀이를 벌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필자가 받았던 문화충격은 청년들의 분방함이 아니라, 작정하고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에 대한
슈넬레 교수님의 태도였다. 한국적 위계에 길들여진 나는 그 망나니들에 짜증이 났다. 모처럼 공부
좀 해보려는데, 그렇게 막무가내 훼방을 놓는 친구들의 소란과 방해를 용납하기 싫었다.
집중해야 간신히 독일어가 들리고, 아직 어디서 어디까지가 A.I.인지 전체 그림이 잡히지 않을
때였다. 교수님이 정색을 하고, 학생들을 퇴실시켜 주시길 기대했다. 그런데 학생들 사이에서
킥킥 웃음소리가 이어지면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수업은 큰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부끄럼을 타는 소년처럼 시선 둘 곳을 못 찾아
쩔쩔매다 다시 초롱초롱 천진무구한 선비의
눈빛으로 수업을 이어가곤 하셨다. 관점과
취향에 따라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은 그토록 다양하고 모두 허용되었다.
섣부른 낙관도 비관도 각자의 몫이지만, 미래는
성큼성큼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