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가 먼저다

- 카나리아도 A.I.도 역시 그렇다.

by 우물

인지과학의 학제적 수업에서 보기(seeing) 연구가 크게 주목받았던 반면, 슈넬레 교수님과

우리 제자들의 주요 관심은 듣기(hearing)였다. 청각 세포가 어떻게 소리를 인지하는가?

또 발성기관은 청각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며 언어를 습득하는가? 우리 팀은 이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자궁 속 아기는 다섯 감각 중 청각이 먼저 기능하며, 둔탁하나마 이미 ‘듣기’를 시작한다.
엄마의 규칙적인 심장 소리, 식도를 통과하는 음식이 소화되는 졸졸 시냇물 같은 소리,
주변 소음과 엄마 목소리에 점점 익숙해진다. 뜻을 몰라도 청각을 통해 엄마 말의 정서는
고스란히 느낀다. 임산부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평온할 때, 자궁 속 태아는 대체로
우주와 혼연일체인 '존재의 원초 상태'를 경험하고, 무의식에 이를 새긴다.

반면 임신중독이나 흡연, 음주 혹은 정신적 고통으로 산모의 혈액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면 태아는 그 영향을 피할 수 없다. 더 심각한 건, 탯줄이 목에 감길 때 감지하는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이다. 이런 경우 다양한 기법으로 환자를 유도해 어머니 자궁 속 시절로의 퇴행 -
일상을 벗어나 무의식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트랑스(trance) 상태, 거기서 자기 고통의 원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늪에서 스스로 벗어나게 하는 초월요법으로 고질적 천식환자 수백 명의
치료에 성공한 체코 출신의 정신분석 전문의 그로프(Stanislav Grof, 1932~ ) 박사는 무아지경의
자궁 속 상태를 행복의 디폴트 값으로 상정했다. 그런데 산통이 시작되고, 자궁에서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아기들이 처음 감지하는 충격과 두려움 - 이는 아기를 달래며 토닥이는, 태중에서
익숙해진 '엄마 목소리'로 해소된다고 설명했다.

언어는 이렇듯 듣기가 먼저다. 자궁 속에서 듣기를 시작한 청각 신경세포, 이들이 감지하는 자극은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의 ‘발성기관’ 곳곳으로 전달된다. 옹알이로 시작해 엄마 말을 듣고 따라

하기를 반복하는 언어 훈련 - 이 과정에서 혀와 턱과 성대의 구강근육에 자극을 전하는 신경세포가

급속히 증가하고 분화하며 꾸준히 '연결'된다. 이에 따라 아이들은 듣는 대로 말을 한다.


신자유주의와 정경 유착에 강경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 미국의 양심, 촘스키(N. Chomsky, 1928~ ) 선생님은 원래 언어학자, 슈넬레 선생님과 함께 MIT 대학에서 출간하는 학술지 〈이론언어학〉의 공동 발행인이셨다. 물리학을 이론물리학과 실험물리학으로 나누듯, 두 분은 먼저 이론언어학과
응용언어학을 구분했다. 예컨대 개별 언어의 문법과 활용을 다루는 외국어교육은 응용언어학의
전형이다. 반면 이론언어학에서 문법은 개별 언어의 고유 규칙과는 다른 차원이다.


촘스키 문법은, 옹알이를 시작한 아이들이 자주 접하는 언어를 습득하는 기반인, 인간의 언어

능력에 내재된 보편문법(universal grammar)이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실제 존재하는

언어들의 문법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 능력 전반에 작동하는 언어 구성의 원리로서, 모든 개별

언어 문법의 원형에 해당한다. 반면 실제로 말하는 개별 언어는 이를 적절히 '변형하는 규칙,

즉 개별 언어 문법을 통해 생성'된다.

언어학자 촘스키 (Noam Chomsky, 1928~ )

촘스키는 이런 특성을 강조해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al-generative grammar)이라 불렀는데, 이 추상적 개념을 더 구체화해 인간 두뇌에 있는 언어습득장치 LAD(= Language Acquisition Device)라고 명명하여, 그 장치의 여러 특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인간 언어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로 호모 사피엔스 특유의

유전자가 작동하며 발현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리 팀은 이 LAD가 관자놀이 아래, 두뇌 손상에 따른 언어장애, 즉 실어증(aphasia)의 원인이 되는

브로카(broca) 영역 쯤에 있다고 가정했다. 실습 차 종종 방문했던 실어증 전문 재활병원이 본디

2차 대전에서 주로 관자놀이에 입은 총상 탓에 언어 장애가 생긴 환자들을 대상으로 개원했던 사연 때문이었다. 실은 인간 외에도 고래와 돌고래, 박쥐와 코끼리, 물개는 새로운 소리를 들으면 곧잘

모방하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발성 레퍼토리를 전달”하는 문화적 코드가 있다. 트럭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자 인근에서 한 무리의 코끼리 떼가 그걸 흉내 내며 제법 비슷한 소리를

내는 장면이 목격된 바 있다.



앵무새는 4백 개가 넘는 단어를 배우고 이를 조합해 문장도 만든다.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어떻게

따라 할까?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되었다. 앵무새뿐만 아니라 카나리아와 꾀꼬리와

벌새 등 노래하는 새들은 계절과 성별에 따라 음색에 차이가 난다. 아르헨티나 출신 신경생리학자

노테봄(Fernando Nottebohm, 1940~ )은, 이 차이가 뇌 발달에 영향을 끼치는 성호르몬의

변화 탓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서울 사는 카나리아 수컷들을 예컨대 부산으로 옮기면 짝을 찾지 못하고 한 동안 독신으로 지낸다.

사투리 탓이다. 이사 온 카나리아들은 열심히 부산 사투리를 배워 다음 해에는 짝짓기에 성공한다. 잘 듣고 소통에 성공한 덕일 것이다! 사투리를 배운 녀석들의 작은 뇌를 (미안 ㅠㅜ... ) 해부해

비교한 결과, 계속 서울에 사는 카나리아 뇌에는 없는 신경회로들이 새로 연결된 게 드러나 보였다.


노테봄의 제자로, 무용수 출신 과학자 자비스(Erich Jarvis, 1965~ )는 조류의 뇌 일곱 군데에서

발성을 학습하는 신경회로들이 활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알에서 부화 후 바로 노래를 하는 게

아니고 새들도 사람처럼 유전자의 발현에 따라, 노래를 배우는 언어습득장치(LAD)가 작동한다는

뜻이다. 또한 습득한 노래를 자꾸 부르면서, 학습과 관련한 뇌 영역에서 유전자 발현이 더욱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래 부르는 시간이 길수록 유전자 발현은 더 활발해졌다.




A.I. 제작에 이런 듣기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이게 내 박사논문의 주제였다. 같은 말도

듣는 방식에 따라, 맥락에 따라 뜻이 달라질 수 있다. 그에 해당하는 사례를 찾아 기계 스스로

식별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프로그램 설계, 그게 내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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