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어뿐 아니라 모국어도 역시 그렇다
서울 카나리아가 부산 사투리를 배우는 동안, 즉 듣기 자극이 반복될 때 카나리아의 대뇌 피질
(cerebral cortex) 일곱 군데에서 신경회로가 늘어난 사진! 이건 촘스키 선생님의 언어습득
장치(LAD) 가설을 떠올리는 - 그래서 이 사진은 내게 스페인 깐타브리아 마을, 컴컴한 동굴에
아마추어 고고학자 아빠를 따라 들어간 8살 마리아의 외침이 음성 지원된다. “알따, 미라!”
저 위를 보라는 딸아이 외침에 석유램프를 치켜들자 여태껏 누구도 본 적 없는 구석기시대,
눈앞에 펼쳐진 놀랍고 생소한 선사시대의 현장 - 동굴 천장과 벽을 채운 들소 떼와 멧돼지, 사슴,
야생말들이라니! 그런데 카나리아 대뇌 피질에 모습을 드러낸 언어습득장치는 알타미라 구석기와는
비교도 힘들 만큼 훨씬 오래 전, 몇몇 조류와 포유류의 두뇌에서 생겨난 정말 놀라운 조짐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 뜻 그대로 “혀로 맛을 볼 줄 아는 똑똑한” 현생 인류의 특성, 지구 생명의
진화사에서 바야흐로 인간 ‘지성의 탄생’을 향한 여정으로 돌입한 현장인 셈이니 말이다.
카나리아 대뇌에서 크게 증가하고 연결된
신경세포의 현미경 촬영 전에도, 말하기
관련한 대뇌 피질 부위는 확인되었다. 20년
동안 간질을 앓으며 심하게 더듬고 문법도
망가진 말을 하다 1861년에 사망한 실어증
환자의 뇌에 대뇌피질 왼쪽 전두엽의 손상
부위, 이를 해부한 프랑스 출신 의사는 자기
이름을 따 브로카(Paul Broca, 1824~1880)
영역이라 명했다. 그리고 1874년, 유창하게
떠들지만 그냥 횡설수설, 듣기에 문제가 생긴 인지 장애 환자의 뇌를 해부해, 왼쪽 귀에서 가까운 측두엽의 손상 부위를 확인한 독일 출신 의사 이름을 따서 베르니케(Carl Wernicke, 1848~1905) 영역이라 부른다.
인간행동의 궁극은 모두 두뇌의 특정 부위와 연관되리라 믿었던 브로카 박사는 수백 명의 시신을
제공받아 그들의 뇌를 포르말린 병에 보관했고, 본인 것도 사후에 기증 처리되었다.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말이다. 이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몸과 터럭, 살갗 모두 부모에게
물려받았으니, 이를 다치게 해선 안 된다는 ‘효(孝)의 근본’ 따위 모르는 유럽인들 사이에 퍼져나가
급기야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레닌과 무솔리니의 뇌도 보관 중이라고 한다. 이런 엽기적 취미는
독일 현대사의 가장 불미스러운 미스터리로 남은 마인호프(Ulrike Meinhof, 1934~1976)의
죽음 이후, 누구의 동의도 없이 그녀의 뇌 또한 포르말린 병에 담겨진 스캔들로 이어졌다.
더 보기 민망했던 건, 어느 독일 의사의 시체놀이를 과학과 교육과 예술의 종합이라 부추겨, 수백만
인파를 끌어들인 한국 언론들의 볼썽사나운 작태였다.
인간 두뇌 신경세포의 70%는 대뇌 제일 바깥층, 피질에 몰려 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같은 감각뿐 아니라 뇌의 다른 부위에서 오는 모든 정보를 여기서 수납하고, 기억과 언어, 감정과
사고, 신체 운동으로 반응한다. 카나리아나 앵무새 등 성대가 발달한 새들의 대뇌피질은 인간과
구조가 다르지만, 발성 관련 신경세포는 아주 유사한 방식으로 ‘연결’된다.
인간도 카나리아도 몸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조절하는 역할은 대뇌 제일 안 쪽, ‘도파민’을 분비하는
‘바닥 신경절 basal ganglia’ 부위가 맡고 있어서, 여기에 병변이 생기면 파킨슨병에 걸린다. 보행
장애가 생긴 파킨슨병 환자는 목소리도 떨린다. 말을 하는 건, 성대근육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신경
세포의 활동 결과라는 얘기다. 카나리아도 이 부위에 손상이 생기면 말더듬이가 된다. 암컷에게
구애할 때는 더 긴장 상태라 증세가 심해진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졌다.
카나리아가 사투리를 배울 때 대뇌의 신경회로들이 새로 연결되는 걸 확인한 노테봄(Fernando
Nottebohm, 1940~ ) 박사는 망가진 신경세포들이 재생되는 과정도 포착했다. 더욱이 병변
부위가 복구되자 카나리아의 노래가 말끔해졌다. 이는 파킨슨병 치료에도 매우 희망적인 단서다.
성인의 뇌세포는 재생되지 않는다는 오랜 정설을 뒤엎는 증거가 꾸준히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더 상세하게, 노화와 함께 그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긴 하지만, 매일 7백 개 가량의 신경세포가
새로 생성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노테봄의 제자, 무용수 출신 과학자 자비스(Erich Jarvis, 1965~ )는 인간을 포함해 ‘발성 학습이
가능한’ 종(種)만 춤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음악에 맞춰 둠칫둠칫 몸을 흔들고 기분 좋아하는,
이제 말 배우기를 시작한 아기처럼 - 앵무새, 특히 코카투는 깩깩거리며 사람 말에도 응답하지만,
신나게 그루브를 타고 춤도 잘 춘다. https://www.youtube.com/watch?v=NbsZVO9rVZU
반면 아무리 잘 들어도 그 소리를 따라 할 수 있는 발성 기관이 없다면 언어를 익힐 수 없다.
똑똑한 바둑이가 아무리 내 말을 잘 알아들어도, 말대꾸는 하지 못한다. 발성에 필요한 성대와
구강구조물이 없으니 끙끙 신음 소리를 내거나 짖을 뿐이다.
인간의 말이 동물의 말과 크게 다른 이유가 바로 이거다. 인간은 굉장히 독특한 발성 기관과 구강
근육, 그리고 이들을 제어하는 두뇌회로가 발달되었다. 독일의 쾰른 인근 네안더 계곡에, 현생
인류와 이웃해 살던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의 해골 조각을 살펴보면, 우리처럼
다양한 음운을 구사할 수 있는 구강 구조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생 인류보다
훨씬 어눌하고 단조로운 언어 소통을 했으리라 추정한다.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체격은
우월했으나, 정밀한 의사소통으로 지능을 발전시킨 현생 인류에게 정복당하고 멸종되었다.
언어를 배우려면 잘 듣고 따라 하는 반복 연습이 중요하다. 듣기와 말하기 관련한 신체 부위, 즉
청각 관련 뉴런과 말하기에 동원되는 혀와 턱과 성대의 구강 근육에 임계점을 넘을 만큼 자극이
계속되어야 한다. 젓가락질을 하려면 엄지와 검지, 중지와 약지, 손목 골절과 손바닥 근육 쓰는
연습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다 큰 후에 배우는 젓가락질 ㅡ 일주일을 연습하다 포기하지만,
한 달 후에 다시 시작하면 의외로 쉬워진다. 생소한 외국어를 배울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젓가락질뿐 아니라 언어를 배울 때도 해당 뉴런들이 막 연결되어야 학습이 이뤄진다. 외국어
학습자의 뇌에도 유사한 연결이 예상된다. 모국어엔 없어 당최 안 들리던 발음들이 여러 달 듣다
보면 차차 들리고, 들리기 시작해야 발음도 따라 하게 된다. 특히 잠을 잘 자야 효과가 난다.
신경세포는 자극 받는 즉시가 아니라 충분한 휴식, 깊은 수면 중에 ‘연결’이 활발해진다는 증거다.
2개 혹은 그 이상의 언어 사용자는 단일 언어 사용자에 비해 치매 발병이 낮다는 보고가 있다.
유창하게 말할 수는 없겠으나, 노년기의 취미로라도 새 언어를 배우는 일은 뇌의 인지기능 약화를
늦추는 효과가 상당하다고 한다. 실험 삼아서 나도 베트남어 배우기에 도전 중이다. 한국어와는
음운이며 형태소, 통사까지 어찌 이리 모두 다르고 거꾸로인지 ㅠㅠ ... 외국어 학습도 ‘잘 듣기’가
비결이다. 그런데 나이와 함께 청각 뉴런의 연결 속도는 제곱비례로 둔화되어, 듣기 연습을
백 배는 더 해야 간신히 들릴까 말까. 그러니 나이에 제곱비례로 반복해서 듣고 또 들어야 하는데,
그럼 이해력도 좀 나아지려나? 나이가 들수록 외국어뿐 아니라 모국어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