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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Jul 15. 2022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래도 씁니다

아주 예전에, 첫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가 생각난다.


대학 강의를 마친 어느 오후,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점으로 달려가서 내 책을 찾아보았다.


잘 보이는 매대에 내 책이 여러 권이 쌓여있고 작가에 대한 소개가 나와있으리라는 터무니없는 예상을 하면서.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나의 소중한 첫 책은 딱 한 권, 찾기도 힘들 정도로 다른 책과 함께 섞여서 저 한구석에 위치한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당연히 그 책은 매년 출간되는 대한민국 수많은 책들과 같은 운명을 밟았다.


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서점에서 사라졌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절판이라는 글자가 떴다. 몇 년이 지나자 이따금씩 중고 서점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그렇다. 말하긴 부끄럽지만 찾아보았다.)


악플보다 더 서글픈 것이 무플이라고 했던가.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었던 나의 많은 책들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굴욕적 이게도, 지인에게 정성껏 메모를 써서 선물한 책이 헌책방에 발견되었다는 풍문을 들은 적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몇 년에 한 권씩 계속 책을 써왔다.


장르는 제각각이라 판타지가 있는가 하면, 한때는 로맨스 소설에 열중했고, 또 최근에는 뭔가 하나의 장르도 묶기는 애매한 에세이 같은 것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슨 글을 쓰는 작가다,라고 말하기도 참 곤란하다. 그저 그때그때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뿐이고, 운 좋게도 내 책을 출판해주겠다는 출판사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기에 죄송할 따름이다.)


그동안 책을 출간하면서, 나는 내가 첫 책을 냈을 때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항상 돌아보곤 한다.


 출판이나 작가에 대한 충고를 읽어보면 항상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들을 어찌나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물론 지금도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고 아마도 앞으로도 반복할지도 모른다.





첫 소설을 출간할 때, 나는 편집자의 충고를 전혀 듣지 않고 수정을 하지 않다가 몇 년 뒤 다시 그 부분을 읽어보다가 부끄러워서 얼굴이 벌게진 적이 있다. 앞뒤가 맞지 않고 개연성도 없는 스토리를 쓰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단 한 문장의 설명만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걸 왜 지나쳤는지! 며칠 동안 이불 킥을 하면서 나는 그것을 후회했다.


그러다가 두 번째 소설을 출간할 때는 반대로 편집자의 말을 신의 말씀으로 여기고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실수도 저질렀다.


훈련된 편집자의 눈에 걸리는 부분은 독자의 눈에도 물론 매끄럽지 않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어떤 형태로라도 수정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편집자가 모든 것을 아는  아니다. 작가의 의도나 캐릭터의 성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첫 소설 편집 과정에서 편집자 말을 안 들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던 나두 번째 소설에선 그만 내 책에 대한 책임감 따위는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저 편집자의 말에 따라 "예~"하고 전부 수정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나는 책이 나오고 나서 엄청나게 후회했다.


지금도 나는 편집자가 수정해놓은 특정 장면 때문에 가끔씩 자다가 얼굴이 벌게져서 이불 킥을 하곤 한다.


지금은 내가 엄청나게 후회하는 또 하나의 실수는 주위의 모든 지인들에게 내가 쓴 모든 장르의 책을(특히, 소설류) 뿌렸던 것이다.


가끔씩 사람들은 소설 속 인물이 작가일 것이라고 짐작하거나, 작가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해버린다.


지인은 아니지만, 나는 첫 번째로 출간했던 판타지 소설 때문에 심령 상담 요청을 받아본 적도 있다.(물론 나는 무신론자에다, 태어나서 한 번도 뭔가 미스터리 한 존재를 목격한 적도 없다)


로맨스 소설을 읽은 내 친구는 어찌나 열심히 봤는지 민망할 정도로 특정한 연애 장면에 대해서 캐묻기도 했다.(로맨스를 썼다고 반드시 실제로 그 연애를 겪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사실 픽션뿐만이 아니라 에세이도 마찬가지인 것이, 내가 쓴 에세이를 읽은 일 관계의 지인에게 '왜 그렇게 불평이 많니'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있다. 제대로 주제가 전달이 안되도록 쓴 내 잘못도 있겠지만, 사실 그 사람이 평소에 나를 보는 시각이 책을 보는 시선에도 반영된 것이다. 나는 괜히 책을 줬다가 불평 많은 사람으로 확고하게 찍혀버렸다.




이번 책을 쓸 때는 나는 좀 다르게 해야지,라고 결심하면서 글을 썼다.


편집 과정에서 과거 내가 했던 실수들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신경을 바짝 썼다. 편집자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나의 책을 지켜내는 것은 마치 따듯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서로 상반되면서 불가능한 미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다행히 엄청나게 똑똑한 편집자들을 만난 덕에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 보니 책이 한 권 나올 때마다 세상에다가 "책 나왔어요!"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그것도 어마어마한 자제력으로 억누를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은 것은 아닐 게다. 또 1년 뒤, 혹은 몇 년 뒤에는 내가 썼던 책을 생각하면서 이불 킥을 해대겠지.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펌프질 하여 내어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펌프질을 했다고 해서 그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꾸는 기적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내어놓은 책은 결국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 채 사라져 갔다. 다른 수많은 책들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왜 이리도 꾸준히(정확히 표현하자면 드문드문 계속) 글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이미 활자화되어 바꿀 수 없는 내 책 속 수많은 실수와 오류들 생각하며 이불 킥을 하기도 하면서도 누군가는 내가 세상에 조심스레 펌프질 한 생각들을 읽고 공감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오늘도 글을 (다시) 쓴다.




잠시 광고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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