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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작가 Mar 10. 2024

상담 일기(2)

나의 일부이자, 나의 카르마인 가족에 대해

두 번째 상담이 시작되었다. 

총횟수로는 다섯 번째이지만 본격 상담이 시작된 것으로는 두 번째이다.

지난 상담이 어머니에 대한 얘기로 흘러갔다면, 

이번에는 시작과 다르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이야기의 시작은 일에 대한 것이었다.

1년 간 어느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글을 써서 납품하고 있었는데, 

1년이 지나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계약기간 1년으로 시작한 일이라 해지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계약 해지 통보를 받자 조금 멍해졌었다.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은 사실 시원 섭섭한 것이었는데

그 일에 대해 아버지와 얘기를 많이 했었던 터라

(은퇴하기 전 아버지와 관계가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정보를 얻기 위해서)

어쩐지 이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을 아버지에게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아버지에게만은 실패한 것(?)을 알리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 얘기를 상담 선생님에게 털어놓자 

선생님은 나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


아버지는 늘 성공의 기회를 잡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영화 관련 일을 할 때, 내가 요청드리지 않았는데도 

늘 본인이 회사를 다닐 때 알던 인맥을 언급하시며 

이런 이런 사람과 연락해서 연결되면 도움이 되지 않겠냐 말씀하셨고.

(이때 도움이란 물론 나에게 도움이겠지만, 

반대로 나를 이용해 아버지가 오래된 인연을 다시 

연결하고 싶은 욕구도 있으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인정하시면서도 

늘 직접 글을 쓰는 것 말고 단체나 업계 같은 데에서

(이를테면 '예술인 재단'이나 '콘텐츠 진흥원' 같은)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라는 식의 조언을 하셨다.  

전혀 나에게는 능력 밖의 일인데도 아버지의 상상으로는 

뭔가 한자리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뜬구름 잡는 생각을 하시는 듯했다.


사실 이런 얘기들이야 잘 모르는 외부인이 하는 얘기로 흘려들을 수 있겠지만

아버지가 하는 말이기에 나에게는 결국 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네가 글 쓰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니, 

지금은 더 확실하고 성공할 수 있는 일을 해라...' 이런 메시지를 계속해서 받은 것.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치열한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

부정당하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받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늘 자신의 요구는 당연히 수용되어야 했고

자식의 요구는 번번이 거절하는 분이었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본 적이 없음에도

아버지는 당당히 나에게 손을 내미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이어졌던 일이어서인지 

나는 이상하게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직장을 다닐 때 내 명의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아버지가 쓰신다던지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돈을 좀 빌려드리고 나중에 약간의 이자를 쳐서 받는다던지

이런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요구에는 이상하게 반박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르게 되었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이어져온 심리적 관성,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나 애정결핍 때문에 

아버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나의 얘기에 이런 지적을 해주셨다.

아버지는 경계가 없고 침범적인 분이라고.

그래서 늘 요구에 당당하다.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를 종속적으로 보고 늘 그렇게 요구해 왔다는 것. 

이런 관계 속에서 나는 아버지와 심리적으로 분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늘 끌려가고, 후에 이성이 돌아오면 후회하게 되는 것이라고.


상담 때 기록을 보니, 나는 상담을 하면서도 그런 말을 남겼었다.

그래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짠하고... 안쓰럽다.

아버지도 어쩔 수 없으셨겠지라는 생각과 

저렇게 굳어지신 걸 어쩌겠어 내가 안고 가야지라는 생각도 든다고. 

심지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결국 아버지와 난 결국 끊어 낼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상담 시 그 얘기를 할 때는 진심이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때도 아버지와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겠다.

아버지와 분리되고 싶지 않은 심리적 저항까지 보인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나아진 것 같지만 

심리적 관성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쉽사리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린 나는 아버지를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어린 나의 눈에 아버지는 멋있었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정받고 싶었고 칭찬받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인정받지 못한 아이는 아직도 그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

번번이 거절당하고 존재를 거부당하면서도...

그 깊은 거절의 경험은 결국 자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책은 우울을 낳는다. 


보호자였던 나의 부모를 떠나보내는 방법은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아직도 내 안에 움츠리고 있는 내면 아이에게 

아버지가 못 다해준 인정과 위로를 주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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