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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작가 Mar 12. 2024

상담 일기(3)

인정없는 아이가 될까봐 걱정이었던 마음.

세번째 상담은 아들 이야기로 흘러갔다. 

자연스럽게 고민의 크기가 큰 순서대로 흘러가게 되기 마련인가보다.


나는 서른 한살에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는데, 가끔 저 애를 내 뱃속으로 낳았다고? 

싶을 정도로 많이 자랐고 든든한 아이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활동량이 많고, 많이 웃고 떠들는, 아주 행복한 아이였다. 

건강하고 밝았다. 고집도 세고, 바라는 것도 너무나 명확한.

모든 부모들이 바라는 보통의 아이지만, 어쩐지 나에게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나는 부모라면 아이의 욕구를 채워줘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원했지만 받지 못했던, 

인정과 선택권... 주도권을 아이에게 많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소진될때까지 아이가 바라는 것을 함께 해주었고

결국에는 지쳐서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대하게 되기도 했다. 


낮동안 내내 온 힘을 다해 아이와 상호작용해주고 놀아준다. 

그러고 밤이 되면 자기 전에 해야하는 규칙들, 이닦기나 씻기 등을 시켜야 하는데

그 때는 내 에너지가 이미 소진된 상태여서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에게 쉽게 화가 났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아이를 위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 아이도 순순히 말을 잘 들어주겠지.

하지만 기대는 늘 깨졌고,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애를 쓰다가 결국 폭발.

분명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부모가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아이도 돌보기 힘들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내가 소진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아이를 돌보아야 일관성 있게 양육할수 있었는데.

나는 그저 열심히 하면 좋을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나 자신을 몰아붙였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는 큰 상처는 없이 잘 큰 것 같다. 

가끔 예민한 부분이 보이면 어릴 때 다그친 부분 때문인가 하는 

자책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나나 남편이나 다 예민한 성격이라 

아이가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상담 때 털어놓았던 고민은 아이가 '너무 인정이 없는것 같다'는 걱정이었다. 

아주 작은 사건으로 시작된 고민이었다.

우리 가족은 금요일마다 배달음식(혹은 포장음식)을 먹는데, 

그 선택권을 아이에게 준다. 일주일에 한번은 아이가 원하는 메뉴를 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규칙은 사실 우리 가족이 그냥 즐겁자고 만든 규칙이기 때문에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명절때였다. 명절 음식이 많이 남아 금요일이지만 시켜먹지 말고 있는 것을 먹자고 했다.

대신 아이가 원하는 것은 주말에 시켜주기로 하면서.

아이도 당시에는 수긍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밥을 먹으면서 

'왜 규칙을 어겼으면서 자신에게 사과하지 않냐'고 나를 추궁하는 것이었다.

금요일에 시켜먹기로 했는데 못먹게 되었으면 자신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너무 황당했다. 아이가 무슨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한 것처럼 말했기 때문에.


부모가 음식을 시켜준다. 나는 이를 아이에게 주는 선물, 혹은 이벤트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게는 자신의 권리처럼 받아들였는 것 같다.

서로의 생각이 달랐던 것일까.

아이는 일주일간 참아 얻어내는 하루의 선택권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나는 동의를 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그저 통보받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건 지금와서 하는 생각이다.


사실 당시에는 그저 이런 생각이었다.

'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일까? 작은 것 하나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지(자기)를 위해서 해주는 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네. 고마움이란걸 모르나?'

'얘는 왜 이렇게 협조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키웠나?' 

'얘는 왜 이렇게 우리(부모)한테 인색하지?'

그러다 더 나아가서 

'이렇게 이기적인 성격으로 밖에 나가서 어울릴 수나 있으려나?' 

'외동이어서 그래!' ' 남편이 너무 허용적으로 키웠어!'


불안과 걱정, 자책... 그리고 분노와 남편 탓까지... 

아이가 쏘아올린 공은 나에게 큰 쓰나미가 되어 덥쳤다.

심지어 내가 그동안 아이를 키우며 고군분투한 나날들이 

모두 허탈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에게 정성과 노력을 들이며,

나는 아이가 사랑을 많이 받아 넉넉한 아이가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가 내 기대와 다르게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될 때,

나의 감정은 세차게 흔들렸다. 

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은 허탈함.

내 모든 노력을 아이가 배신 한 것 같은 느낌... 

결국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었음에도 그것을 몰랐다. 


가족이란 얼마나 밀착되어있는가.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행복하게 키울 수 없고,

내가 충만하지 않으면 아이도 채워줄 수 없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말씀하신대로 아이가 원하는 걸 마음껏 들어주는 좋은 엄마이고 싶어서.

힘드신데도 정말 번 아웃 될 때까지 에너지를 쓰고 이러셨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좀 부족한 엄마라고 느끼며 키우셨다는 게  좀 마음이 짠하네요." 

상담 선생님의 말씀이 이제와 마음에 와 닿는다.


이제 나도 과거의 나에게 이런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너는 최선을 다 했고, 그 덕에 아이는 잘 자랐어. 그동안 애썼다. 정말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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