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생(지망생)의 시간을 끝내기로 결심하다
이별은 힘들다.
사람과의 이별도 힘들지만 현재의 나의 삶, 나의 일, 나의 생활과의 이별은 더욱 힘들다.
처음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졸업 직후였다. 영화관 슈퍼바이저로 일을 하다 영상제작 수업을 듣고 방송국 AD를 시작했다. 그러다 영화제작사에 입사, 영화기획업무를 했다.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영화 관련 일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특별했다. 영화 속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았던 내가 조연급으로 급 상승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로부터 7년 후, 내가 작업한 시나리오가 영화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드디어 주연급이 될 행운을 잡은 것이다.
한 번도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한 적이 없었기에 이 행운은 정말 달콤했다. 남들은 10년도 넘게 걸린다는 영화 데뷔를, 글 쓴 지 단 2년 만에 해냈다. 누구보다도 회의적이고 의심이 많은 나였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꿈에 부풀수밖에 없었다.
초심자의 행운, 첫끗발이 개끗발, 인생사 새옹지마...
주식에 성공한 사람은 첫 투자에 돈을 잃고 주식에서 손을 뗀 사람이라고 했던가?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첫 작품이 개봉하고 이젠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는데 10년 동안 작품이 없었다. 그건 지난 10년이 실패했다는 말과 동일하다.
운 좋게 입봉 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뿐만은 아니다. 작가나 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은 거의 한번쯤 성공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달콤한 기억 때문에 이후 몇십 년을 지옥에서 산다. 내가 경험한 지옥은 3단계다. 1단계는 내 작품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탓하다 인격이 파탄 나고, 2단계는 능력 없는 나를 탓하다 우울증에 걸리며, 3단계는 육체적 건강이 악화되어 일상생활 불능자가 되어버린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각본을 쓴 영화가 개봉, 데뷔한 그 시점부터 불안에 시달렸다.
첫 작품이 행운이 아니라 실력임을 입증하기 위해 다음 작품을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 했다. 달리고 달렸다. 매 순간 작품을 생각하고, 매일 쓰고, 매주 회의를 하고, 매년 두 편 이상의 대본을 써냈다.
계절은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흘렀다. 작품 한편 하다 보면 일 년의 반 이상이 지나있었다.
그래도 일이 있을 때는 희망이 있었다. 다음 작품이 만들어질 거라는 희망. 계속 나를 불러줄 곳이 있을 거라는 희망.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 그 희망고문으로 10년을 살았다.
벽에 부딪힌 것은 코로나19 때였다. 코로나19는 작가들에게 호시절이었다. OTT등장으로 콘텐츠 소비량이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작품계약이 난무했다. 나 또한 계약을 했다. 영화에서 드라마로 상향전환이었다. 하지만 계약을 한 것과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3년간 고생했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때 크게 현타가 왔다. 아! 이거 처음부터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나?
그 뒤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우울증이 생겼다. 내가 이렇게 유리멘털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억지로 희망 회로를 돌리며 뭐라도 해보려고 노트북 앞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마음은 이미 패색이 짙었다. 모든 게 기세라고 했던가. 한번 안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사라졌다.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도 이런저런 지원사업과 자잘한 작업 의뢰 덕에 한 2년은 더 글을 쓸 수 있었다. 뭔가 대단한 걸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란 희망보다는 기회가 주어질 때까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이제 다 사라진 것만 같다.
2025년을 보내며 내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올지 말지 알 수 없는 기회를 기다리며 습관처럼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나에게 세상에 자신 있게 내놓을만한 글이 나올 수 있을까?
애초에 나는 글을 왜 쓰려고 했을까? 성공하려고? 내 이름 세 글자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물론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건 좀 달랐다. 내가 날 드러내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세상과 연결되고 싶기 때문이었다. 내 안에 무언가를 내밀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고 싶었다.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싶었고 누군가의 대변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난 나 자신도 내 글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기계적인 작업으로 나 자신의 마음도 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두려워 그만두지 못했다.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그나마 가지고 있던 희망마저 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두려워 망설였던 결심을... 지금에야 해보려 한다. 글쓰기와의 이별. 10여 년의 시간과의 이별. 미련과 집착의 종결!
자꾸 눈물이 난다. 영원한 이별도 아니고... 글이란 게 언제든 쓸 수 있는 걸 알면서도.
전업작가로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이제 생활인으로 돌아간다는 것뿐인데도...
이별의 순간에야 깨닫는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네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수많은 브런치 북들이 이별의 시간을 담고 있다. 이 매거진도 마찬가지로 이별의 시간을 담고자 한다.
다만 사람과의 이별이 아닌 나의 꿈이자 삶이었던 일과의 이별이다.
이건 결국 이별에 도달하기 위해, 혹은 다시 재회하기 위해 쓰지 않을 수 없는 기록이다.
정답이란 없다. 지나온 시간을 보았을 때 이별과 재회 중 어떤 것이 더 낫다 건 내가 예측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매거진을 거치며 현재 나에게 적용되는 정답을 찾게 되길. 그것이 부디 때늦은 후회가 아닌 비로소 '나'만의 확신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