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어 진짜 잘하고 싶어.
지난 화요일 J언니를 만났다. J언니는 현재 드라마 단역 배우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뮤지컬에 빠져 배우의 꿈을 꾸게 되었고 연기를 전공하고는 바로 대학로의 유명 극단에 들어갔다. 막 연극을 시작한 시절, 연기가 너무나 재미있었고 열정이 넘쳐서 잠시도 쉬지 않고 공연을 했다고 한다. 공연을 하면서도 이후 공연 스케줄을 미리 잡고 다닐 정도여서 주변에서 도대체 언제 쉬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단다. 그렇게 10여 년을 연기에 미쳐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나와 언니가 만난 건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이제 막 두 번째 작품을 준비하던(사실 헤매고 있던) 시기였고 언니는 연기를 잠시 중단하고 대학원을 다니던 시기였다. 우리는 연기자들이 주로 하는 모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만났다. 우리의 화제는 늘 드라마, 영화, 연기, 시나리오... 였다. 또 늘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상황들과 예전에는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클라스가 달라진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숨이었다. 그래도 늘 만남의 끝에는 다시 의지를 다잡았었다. 우리 잘해보자! 좋은 날이 오겠지!!
이번만남도 비슷했다. 언니는 드라마 단역을 하면서 연기 20년 차에야 조금씩 방송연기를 알아가고 있다고, 누구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늘 맨땅에 헤딩이라는 하소연 했다. 나는 여전히 글쓰기에 확신이 없으며 이제 더 이상 불러주는 곳도 없다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늘 내가 언니를 위로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에는 언니가 나를 위로하기 바빴다. 지쳐서 그런 거야. 누구나 슬럼프는 있어. 하지만 나의 마음은 크게 위로받지 못했다. 나는 언니가 힘들면 그만둬,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주길 바란 것 같다.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한 내가 물었다. "언닌 다시 태어나도 연기할 거야?"
언니는 연극을 하다가 겪은 일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 연기를 그만뒀었다. 심리상담을 받을 정도로 심하게 우울했었다. 사실 나와 만난 시기, 그래서 대학원을 갔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회복기를 거쳐 방송연기에 새로 도전하면서도 많은 사건을 겪었다. 그중 몇몇은 자존감이 짓밟히는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대답은 "다시 태어나도 또 할거 같아"였다. 진짜? 내가 재차 묻자 이렇게 덧붙였다. "기억이 사라진다면... 나라면 분명히 또 이 길을 선택할 거고... 기억이 있다면... 예전의 시행착오 없이 더 잘할 수 있을테니까!" 이런! 연기를 안 한다는 선택지가 없다니... 역시 연기에 진심이다. 언니는 늘 이렇게 말한다. "잘하고 싶어. 나 진짜 잘하고 싶어."
나도 그런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니다. 나는 이제 정말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아직도 길이나 버스에서 '이런 이야기 어떨까?' 구상을 하고, 좀 특이한 사람을 만나면 '오! 캐릭터 재미있어, 한번 친해져 봐야겠다'라고 생각하곤 한다. 내가 완전히 다른 일을 하더라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냥 일만 하는 건 아깝지! 어쨌거나 이 직업을 소재로 대본은 한편 써야~!!'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마음은 매 순간 바뀐다. '너 정말 정말 증오해!' 하다가도 '어쩔 수 없어. 운명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일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일이 나인지, 내가 일인지 모르게 되는 것. 그 일을 그만둔다는 건 나의 일부분과 이별하는 것이기에 완전히 이별하기란 힘들다. 어쩌면 일과의 이별은 나의 일부분을 조금씩 줄여가는 것, 그럼으로써 예전의 나를 버리고 또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