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작가 Aug 17. 2023

가출, 혹은 여행기

광주에서 여수까지, 즐거움과 고통이 교차하는 가족여행기(2)


역사가 살아 숨쉬는 광주극장에서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를 보다.


아이들을 보내고 남편과 나는 예정대로 광주극장을 찾았다.

광주극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에 조선인에 의해 설립된 민족극장이다.

10년 뒤에 100세를 맞이하는, 한 세기 동안 광주를 지켜온 광주극장.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다.   


난 극장이 좋다.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뿐만이 아니라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다. 극장에 들어서면 영화를 보지 않아도 기분이 좋고 흥분된다.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 기억 속 첫 극장은 사촌들과 함께 당시 엄청난 화제작이었던 "영구와 땡칠이"를 보러 갔던 극장이다.

추운 날씨에 두꺼운 잠바를 입은 채 사촌오빠를 따라 극장까지 걸어서 갔던 기억이 난다. 대전의 어느 작은 극장이었는데, 우린 영화가 시작한 후에 입장했던 것 같다. 어두운 상영관을 더듬더듬 걸어가 자리에 앉았고, 우리 말고는 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극장은 동시상영관인지도 모르겠다. 당시 지방에서는 서울에서 개봉한 영화의 필름을 받아서 개봉한 지 꽤 지난 후에 트는 극장이 많았다고 한다.


아무튼 심형래 배우가 나오는 "영구와 땡칠이"(몇 편인지는 모르겠다)는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다. 밖으로 나가면 또다시 추운 길거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도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쯤 몸을 최대한 의자 밑으로 숨기고 반복해서 영화를 보았다. 좌석이 지정되어 있지 않았을 때라 마음만 먹으면 하루종일 같은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때였다. 우리는 우리만의 공간인 극장에 낮시간을 꼬박 보냈다.   거리가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에야 "영구 없당~~"를 돌림노래처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왔었다.


광주극장은 내 추억 속 극장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좋은 곳이었다. 단관극장 특유의 커다란 스크린, 오페라 극장처럼 일층과 이층을 가득 운 빨간 좌석들.... 광주극장의 첫인상은 고급스러웠다.

특히 광주극장은 여타 오래된 극장들과 다르게 리모델링을 많이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예전에 광주극장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진 인천 애관극장을 가 본 적이 있는데, 그곳 역시 지어진 당시의 단관극장의 위용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애관극장은 멀티플렉스에 대항하기 위해 상용관도 늘리고 구조도 바뀌었으며 인테리어도 많이 손봤다. 어쩌면 그 당시 큰돈을 들여 현대화한 것인데, 지금 보면 광주극장만큼의 자연스럽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광주극장이 옛것을 보존한 방식은 오히려 현명한 판단이 틀림없다. 광주극장만의 세월의 흔적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되었으니까.  




우리가 도착했을 때 광주극장에서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었다. 먼저 티켓을 끊고 극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극장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빨간색 문으로 된 상영관 입구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오른쪽으로는 광주극장 관련 굿즈와 포스터들이 전시된 진열대, 그 왼쪽으로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화장실이 있다. 먼저 화장실에 들렸다. 그 후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2층으로 향했다. 별것 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였다. 2층에는 영화 상영 전에 대기할 수 있는 자리들이 있었다. 꼭 오래된 시대극이 펼쳐질 것 같은 고풍스러운 응접실처럼 꾸며진 그곳에는 앤티크 한 나무 탁자와 소파, 그리고 은은한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 곳이 아니라 칸칸이 독립된 응접실이 펼쳐져 있고 그 맞은편에는 매점이 있었는데, 지금은 운영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위스키를 하는 바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리엔탈 특급열차 속 식당칸 같기도 하고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회의를 하는 응접실 같기도 한 아주 특별한 분위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포스터를 직접 그린 간판 그림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 영화 티켓과 필름 상영기까지. 이곳은 영화관이자 박물관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넋이 나가 2층을 돌아보다 문득 남편 생각이 났다. 화장실 앞에서 헤어졌는데 구경을 하는 내내 보이지 않는다. 어디 있는 것일까?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남편은 없었다. 혹시.... 하며 화장실 앞으로 갔는데, 그 자리에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쩐지 짠한 뒷모습, 바로 내 남편이었다.


"어? 아직 여기 있었어?"


뒤늦게 나를 돌아본 남편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가면 간다고 얘길 해야지. 기다렸잖아."


당황스럽다. '아니 왜 지금까지 기다려?'라는 말이 나오려는 걸 다급히 막았다. 그래, 기다릴 수도 있지.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지만 기다릴 수 있다.


"(미안한 표정) 아... 기다릴지 몰랐지. 2층 못 봤지? 얼른 보고 와. 영화 시작하기 전에."


이 사람은 섬세하다. 아직도 결혼 전 데이트 할 때처럼 부인을 화장실 앞에서 기다려준다. 내가 화장실 앞에서 납치라도 될까 봐 그러는 것일까?


남편은 2층을 아주 빠르게 보고 내려오더니 상영관으로 나를 끌었다. 표정이 굳어있는 남편 앞에서 나는 아무 말 없이 끌려갈 수밖에.


"휴... 덥네."


상영관이 큰 만큼 에어컨 바람은 멀리만 느껴졌다. 나는 또 조마조마하다.


"좀 있으면 시원해지겠지."


갑자기 문득 가슴이 답답하다. 내가 이 인간을 왜 끌고 왔지? 갑자기 후회가 밀려든다. 게다가 이번 다큐는 장장 2시간 30분짜리다!

그나마 다행히 남편은 이 다큐를 이미 알고 있었고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다큐가 2시간 반이라는 것은 몰랐겠지. 아...왠지 다큐가 끝날 때까지 불편할 것만 같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꼬네라는 작곡가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엔리오 모리꼬네는  <황야의 무법자>, <미션>, <시네마 천국>을 비롯해 500편이 넘는,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음악을 작곡한 거장이다. 그런 그가 지난 2020년 별세했다니 이 다큐는 그의 마지막 목소리를 담은 기록물이 되었다.


다큐는 차분하고 느리게 그의 일생을 담아낸다. 어릴 적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며 그를 음악학교에 다니게 했고 자신과 똑같이 트럼펫 연주자의 길을 걷게 했다. 그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생계를 위해 공연장에서 연주를 해야 했다. 그러다 연주자의 삶이 자신의 음악적 갈망을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그는 작곡을 하며 드디어 음악가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렇게 작곡이라는 세계에 발을 디디고 운명처럼 영화음악을 작곡하게 되면서 엔니오 모리꼬네는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된다. 정말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는 열정으로 수많은 음악을 작곡했다. 게다가 영화음악을 하는 틈틈이 정통 클래식 음악도 작곡했으며 기존의 틀을 깨는 실험적인 작품도 많이 작곡했다.


그가 영화음악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유명한 영화의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영화음악이라는 장르 자체를 바꾼 인물이다. 엔니오 이전의 영화 음악은 스토리의 흐름과 연출 분위기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에 불과했지만 엔리오 모리꼬네는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작품에 독특한 색을 입히는데 음악을 활용했다. 즉 영화 내용에 맞춰 튀지 않고 자연스러운 배경음을 덧붙이는 수준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영화 장면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 장면의 성격이나 캐릭터의 심리상태까지 분석해 자신만의 색깔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영화음악의 거장이라는 타이틀에 충분히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남편은 조금 졸긴 했지만 영화에는 만족해했다. 다행히 우리는 웃으며 극장을 나설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나니 괜히 마음을 졸였던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내가 예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그냥 불편함을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내가 그 불편함을 야기한 사람인 양 책임감을 느꼈던 것일지도. 진짜 예민한 사람은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다고, 극장이 덥다고 투덜거린 남편이 아니라 그런 그가 불편한 나일지도 모른다.


반면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기에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연애 때 남편은 자신의 예민함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애인 앞에서 남자답게 보이고 싶었겠지. 하지만 부부가 되고, 이제 13년 차 함께 살다 보니 그런 포장 따위는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둘 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심리적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너무 밀착된 상태로 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불편함을 털어놓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마치 자기 자신에게 혼잣말하듯), 나는 그의 불편함에 휘둘린다(없었던 걱정까지 기어이 생기고야 만다).


어떤 사이든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부부가 이런 대화를 해볼 수 있을까?

너무나 가까운 사이라 오히려 진솔한 대화가 어렵다.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 힘든 것일지도.


부부란 참 복잡 미묘한 관계다.

너무 가까워도 멀어도 안 되는 관계. 또 그 선이 각자 조금씩 달라서 이해와 조율이 필요하다.


13년 만에 처음, 아이 없는 둘만의 여행. 이 즐겁고도 긴장되는 여행길이 이제 겨우 하루 지났다.        


 

작가의 이전글 가출, 혹은 여행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