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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작가 Aug 19. 2023

가출, 혹은 여행기

광주에서 여수까지, 즐거움과 고통이 교차하는 가족여행기(3)

언제부터였을까?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던 삶이 갑자기 여유로워졌다.

금전적 여유가 생긴게 아니라 바쁘게 움직일 일이 별로 없어진 것이다.

13년 전 결혼을 하고, 12년 전 아이를 낳고... 눈뜨고 있는 시간은 한 순간도 바쁘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이가 어릴 때는 먹이고 입히고 재우느라, 아이가 좀 커서는 따라다니며 챙기고 잔소리하고 놀아주느라.

그런데 한 1-2년 전부터 갑작스럽게 아이가 손을 떠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면 여자 아이돌 음악을 튼다. 그럼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식탁에 아침을 차려놓으면 알아서 밥을 먹고 가방을 챙겨 학교로 간다. 일을 하는 동안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들렀다 알아서 귀가한다.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아이는 이미 친구들과 게임 중이다. 저녁을 차릴 동안 게임을 하고 밥을 함께 먹고 아이는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핸드폰을 뒤적이며 뒹굴거리다 10시 반이 되면 씻고 이부자리에 눕는다. 아이의 "엄마 불 꺼줘." 하루가 마감된다. 아침 기상과 밥, 잠자리 불만 꺼주면 엄마로서의 임무는 끝인 것이다. 아, 숙제... 아이는 숙제를 학교나 학원에서 하고 오기 때문에 그 역시도 챙길 것이 없다.

얼마전까지 주말이나 연휴가 생기면 어디를 데리고 가야하나, 무엇을 하고 놀아주어야나 고민했는데. 이젠 우리와 노는 것도 재미없어 한다. 주말이 전부터 이미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다. 아이가 우리  가장 바쁘다.


드디어 육아로부터 해방인가?그토록 바라던 여유로운 삶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즐겁기만 할 것 같던 이 자유가 허전하고 심심하기만 하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결혼 전의 삶을 되찾았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아이가 나의 손을 떠나서 알게 되었다. 아이를 위해 체력을 갈아넣으며  하루하루 버텨온 시간이젠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었음을. 아아와 함께하는 동안은 내 눈에도 필터가 끼워졌었다. 아이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필터.


요즘은 우린 노부부가 된 기분이 든다. 아이 필터를 벗고 나니 세상 참 새로울 것도 신나는 것도 없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이제 남은 삶은 어떤 것으로 채워야 하는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남편과 둘만의 여행 둘째날도 별 문제 없이 잔잔하게 흘러갔다.

오전 느즈막히 일어나 근처 계곡을 갔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온 주변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우린 조용히 물에 발을 담갔다. 가끔 "어 시원하다"를 돌림노래처럼 주고 받으며 가끔 손을 들어 서로에게 붙은 모기를 쫒아 주며 시간을 보냈다. 계곡은 맑고 시원했지만... 정말 심심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이와 함께 왔더라면 해가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일어섰을 것이다.


내일은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 오늘 저녁 둘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분위기 좋은 식당을 알아놓았다. 그리로 예정보다 조금 일찍 가보기로 했다.  


광주 동명동에 있는 캐주얼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적당한 메뉴를 시키고 카페 이곳 저곳을 둘러봤다. 분위기가 괜찮았다. 사진을 몇장 남기고 서로 품평을 하는 사이 메뉴가 나왔다. 우리는 또 다시 "음 여기 괜찮네"를 돌림노래처럼 주고 받으며 음식을 먹었다.

남편은 이제 어느정도 여행에 익숙해졌는지 별다른 불만을 얘기하지 않았고 나 역시 긴장이 풀려 편안했다.




알고 보니 광주 동명동은 예쁜 카페나 식당으로 유명한 동네였다. 대학가 근처 작은 구도로 주변에 옛 집들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카페와 레트로풍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젊은 남녀들이 데이트를 하거나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또 동명동 중앙에는  '트레블러 하우스 Zip'이라는 여행센터가 있었는데, 광주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여행 굿즈를 살 수 있었으며 피크닉 도구를 빌려주기도 했다.


천천히 골목길을 돌았다. 데이트하는 젊은 남녀들을 보니 그 시절 우리가 떠올랐다.


"우린 데이트 때 어디 다녔더라?"

"삼청동 가지 않았나? 우리 첫 데이트."


맞다. 우리의 첫 데이트는 삼청동이었다. 그 때도 장소는 내가 정했지. 남편은 강남 토박이로 삼청동은 처음 이라고 했다. 참 그런 사람을... 홍대니 대학로니 많이도 끌고 다녔다.


아련한 눈빛으로 젊은 이들을 바라보는 노부부의 모습을 하고 동네를 한바퀴 휙 돌아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이런 생활에 적응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40대, 아직은 젊은 나이지만 아이를 하나만 둔 탓에 은퇴한 노부부같은 삶을 남들보다 일찍 맞이하였다. 이제 아이는점점 더 멀리 떠나갈 일만 남았으니 이젠 각자의 삶을 다시 되찾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었다. 아버지가 베트남 여행을 계획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아버지랑 둘이 여행 가실거냐 물었더니 엄마가 딱 잘라 한마디 한다.


"둘이 무슨 재미로. 니들이랑 같이 가면 모를까."


친구가 중요한 아이는 아이대로, 여행을 싫어하는 남편은 남편대로 두고, 이젠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해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이십대 초반에 일찌감치 독립했던 나의 삶에서 아이의 무게가 점점 줄어드는 허전함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했더니, 어쩌면 다시 나의 부모로 채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 이렇게 돌고 도는게 인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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