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나눈 창조성의 비밀 1단계
[아티스트 웨이]를 집필한 줄리아 카메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집필한 엘리자베스 길버트,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을 집필한 오스틴 클레온,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을 집필한 릭루빈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아티스트들은 창조성과 만난 자신의 경험을 저명한 저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한다.
나는 그들의 개별적 이야기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창조성을 따라가는 미술치료사이자 아티스트로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의 영혼에 얼마나 많은 빛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보았다. 나는 앞으로의 작은 여정을 통해 창조성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여정의 서두를 장식할만한 이야기는 단연 '두려움'이다. 아티스트들은 한결같이 창조성과 두려움에 관한 그들만의 고유한 관점을 우리에게 전한다. 대부분의 '창조성'을 말하는 아티스트들은 창작과 두려움이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각자의 두려움을 다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 또한 자신의 두려움을 게으름으로 포장하고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했던 시절이 있었다. 더불어 정말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는 아티스트들을 통해 스스로가 게으름으로 여겼던 순간들이 실은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암실 속에 갇혀있었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 같은 고군분투 속에서 창조성과 두려움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꾸물거림이나 회피, 움츠러듦은 두려움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게으름인 줄 알았던 행동 패턴은 잘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형태의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줄리아카메론은 창조성이 막힌 사람들에게 게으름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두려움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잘 대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으로 우리가 가진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고 전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결국 그 두려움의 실체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두려움의 형태가 터무니없어 보이더라도 개의치 않아야 한다. 각 개인은 온전히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권리가 있다. 두려움은 불확실한 결과를 싫어한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안전하지 않음' 또한 거부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려움이 맞서 싸울 대상이 아니라 한없이 여린 존재임을 알아주어야 한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말했다. '나는 두려움을 죽여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향한 전쟁을 선포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에 나는 두려움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그는 그를 위한 두려움의 자리를 마련하고 예의를 갖춰서 두려움을 초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온화하고도 작은 행동은 우리의 여린 두려움을 달래기에 최적화된 행동이다.
우리는 두려움이 호기심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놓아주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놓아주는 과정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바로 그 일을 할 때 이루어진다. 거기에서 우리는 잠깐 동안의 두려움을 넘어서 그 속에서 느끼게 되는 경이로움으로 향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수면 위에서 물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다가도 막상 수면 아래를 경험하고 나면 찰나 이상의 행복을 거머쥐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두려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매우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다. 창조적인 삶을 향한 욕구와 딸려오는 두려움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마치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는 것과도 같다. 운전대를 난생처음 잡을 때는 그 일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그 행위에 익숙해질 때면, 운전을 함으로 인해 얻게 되는 행복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창조성을 향한 두려움을 맞잡으면 결과적으로 삶이 새롭게 태어난다. 두려움이 없는 인간은 없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정신적 질병에 가까울 것이다. 아티스트들은 두려움이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두려움을 말끔히 제거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한 자들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