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나눈 창조성의 비밀 10단계
자기 계발에 집착했던 때가 있었다. 그 집착은 꽤 오랜 시간 이어졌고, 민감도가 높은 나에게는 그것이 고문과도 같은 짓이었다는 것을 오랜 기간을 바쳐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이 스스로 견딜 수 없으며, 시간을 조금이라도 헛되이 보냈다고 판단한 순간에는 죄책감으로 자신을 벌하곤 했다.
그리고 이후에 접한 '마음 챙김'조차 고문과 같이 행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즐거움으로 시작한 모든 것들이 스스로를 옥죄었으며, 즐거움은 또 다른 죄책감을 심었다. 어디서부터 온 것들일까. 이 감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마음 챙김이라는 것도 하나같이 별 볼 일 없는 듯 보였으며, 그것이 다시 스스로를 묶었다.
우리는 이러한 모순을 관리하기 위해 모든 마음의 패턴을 이해하는 행위를 필요로 한다. 스콧베리 카우프만은 마음 챙김과 방랑하는 마음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통적 마음 챙김은 머릿속을 비우는 명상에 가까웠다. 그러나 모든 것에 중독되어 있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생각을 비울 것을 노력하기보다 떠오르는 생각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마음속의 생각을 방랑하면서도 외부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는 떠오르는 생각에 휩쓸려가지 않고, 그 생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 바라보기 연습은 구름같이 떠있는 생각들을 버린다는 강박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마치 구름들을 한 개씩 맛보듯, 그 구름들의 형태와 색깔을 하나씩 뜯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생각을 바라보는 관찰력이 생길 뿐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용이해진다. 또한 그 생각에 옳고 그름이라는 판단의 꼬리표를 뜯어 버릴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법은 생각이 확장적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러한 행위는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는 데서 오는 고통을 줄이게 된다. 오히려 떠오르는 생각을 수용하는 데서 오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강박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나 스스로 죄책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실제로 인지심리학자 로렌자 콜자토는 이런 명상의 단련이 창의적 사고를 불러일으키며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등의 확산적 사고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훈련은 사고뿐만 아니라 감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볼 때에 감정의 널뛰기가 줄고, 모든 생각들은 나의 개인적인 시선이 아니라 '생'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이 된다.
마음의 떠돌아다님을 허용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허용하는 것과도 같다. 뿌리 깊은 자기 의심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모든 상상과 생각을 수용할 때 우리의 마음은 제자리를 찾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든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자기 이해는 마음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과 더불어, 칼 융이 말한 자기 자신(self)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도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