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산다는 것-데이비드 호크니
최근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스스로가 현재에 좀 더 머무를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있다. 우리 주변에서는 매일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것은 사회적인 일과 개인적인 일, 더불어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끝없는 재잘거림도 포함한다. 언젠가 한 스님이 이렇게 얘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의 일생을 통틀어 실제로 삶을 사는 시간은 고작 몇 년이 안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 말의 의미가 훨씬 명확해진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현재를 살지 못한다. 그리고 문제에 싸여 그 문제를 해결하고, 매번 또 다른 문제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얼마나 큰 문제들을 삶으로 끌어왔으며 그것을 얼마나 기기 막히게 처리했는지에 관하여 스스로 자부하기도 한다.
어쩌면 끊임없이 예술을 해야 한다고 느꼈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끄적임이라는 작은 행위 속에서는 자아가 사라진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모순을 보았다. 인간은 어린이에게 자아를 만들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그 어린이는 성인이 되어 커진 자아 때문에 괴로워하고, 마침내 자아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워지기 위한 몸부림을 친다. 우리의 삶이 다시 역순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왜 '자기'에 얽매여 '지금'에 살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쓴 문장을 보고 나름대로의 힌트를 얻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지난 60년간 매일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그냥 그림을 보면서 자주 작업실에 앉아 있다. 나는 여기 있는 것이 좋다.~예술가들 대부분은 잊힐 것이다. 그게 그들의 숙명이다. 나의 숙명일 수도 있다. 나도 모른다. 아직은 잊히지 않았다. 잊힌다 해도 좋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가 쓴 이 글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두 문장을 찾아냈다. '지난 60년간 매일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했다.'와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모르겠다.'였다. 호크니는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에고가 아닌 자신의 영혼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그 목소리를 들었다. 더불어 그 외의 것들이 자신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현재에 산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이며, 그것은 또한 거창하고 힘든 일도 아니다. 현재에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많은 것들을 찾아 헤맸지만 그것은 정작 거기에 늘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시끄럽게 울려대는 외부와 내부의 소음을 잠시 껐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소리는 들려왔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또 행동하게 되면 지금 여기가 생생해진다.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지고, 자신 또한 사라지게 되며 현재만 남게 되는 것이다.
호크니와의 대화들을 살펴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명확히 보인다. 그의 작품과 그의 사상에는 생을 가볍게 바라보는 태도가 담겨있다. 거창한 미사여구도 없고, 복잡해 보이는 묘사도 별로 없다. 그 안에는 일상이 담겨있다. '현재'의 포착인 셈이다. 그 현재들이 쌓여 그의 인생이
된 것 같았다.
한 없는 가벼움과 농담은 반대로, 존재를 상기시킨다. 한 존재의 삶은 '인생'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침의 커튼을 열어젖히는 것과 같은 가벼움 속에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커튼을 젖히고 일상 속에 젖어들어가면서 매일을 살게 된다. 그렇게 순간에 얼마나 녹아들 수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스님이 말했던,'실제의 삶'이 늘어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