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위력

현재를 산다는 것-데이비드 호크니

by 바다별다락방


최근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스스로가 현재에 좀 더 머무를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있다. 우리 주변에서는 매일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것은 사회적인 일과 개인적인 일, 더불어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끝없는 재잘거림도 포함한다. 언젠가 한 스님이 이렇게 얘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의 일생을 통틀어 실제로 삶을 사는 시간은 고작 몇 년이 안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 말의 의미가 훨씬 명확해진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현재를 살지 못한다. 그리고 문제에 싸여 그 문제를 해결하고, 매번 또 다른 문제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얼마나 큰 문제들을 삶으로 끌어왔으며 그것을 얼마나 기기 막히게 처리했는지에 관하여 스스로 자부하기도 한다.


어쩌면 끊임없이 예술을 해야 한다고 느꼈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끄적임이라는 작은 행위 속에서는 자아가 사라진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모순을 보았다. 인간은 어린이에게 자아를 만들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그 어린이는 성인이 되어 커진 자아 때문에 괴로워하고, 마침내 자아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워지기 위한 몸부림을 친다. 우리의 삶이 다시 역순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왜 '자기'에 얽매여 '지금'에 살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쓴 문장을 보고 나름대로의 힌트를 얻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호텔 우물의 경관 Ⅲ’, 1984~85, 석판화 어디션 80. [ⓒDavid Hockney/Tyler Graphics Ltd.]

"나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지난 60년간 매일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그냥 그림을 보면서 자주 작업실에 앉아 있다. 나는 여기 있는 것이 좋다.~예술가들 대부분은 잊힐 것이다. 그게 그들의 숙명이다. 나의 숙명일 수도 있다. 나도 모른다. 아직은 잊히지 않았다. 잊힌다 해도 좋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가 쓴 이 글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두 문장을 찾아냈다. '지난 60년간 매일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했다.'와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모르겠다.'였다. 호크니는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에고가 아닌 자신의 영혼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그 목소리를 들었다. 더불어 그 외의 것들이 자신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1967, 캔버스에 아크릴.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2019]

현재에 산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이며, 그것은 또한 거창하고 힘든 일도 아니다. 현재에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많은 것들을 찾아 헤맸지만 그것은 정작 거기에 늘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시끄럽게 울려대는 외부와 내부의 소음을 잠시 껐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소리는 들려왔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또 행동하게 되면 지금 여기가 생생해진다.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지고, 자신 또한 사라지게 되며 현재만 남게 되는 것이다.



호크니와의 대화들을 살펴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명확히 보인다. 그의 작품과 그의 사상에는 생을 가볍게 바라보는 태도가 담겨있다. 거창한 미사여구도 없고, 복잡해 보이는 묘사도 별로 없다. 그 안에는 일상이 담겨있다. '현재'의 포착인 셈이다. 그 현재들이 쌓여 그의 인생이

된 것 같았다.


한 없는 가벼움과 농담은 반대로, 존재를 상기시킨다. 한 존재의 삶은 '인생'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침의 커튼을 열어젖히는 것과 같은 가벼움 속에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커튼을 젖히고 일상 속에 젖어들어가면서 매일을 살게 된다. 그렇게 순간에 얼마나 녹아들 수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스님이 말했던,'실제의 삶'이 늘어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