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서 배우다 -에곤실레
매 시기 이맘때, 가을이면 계절에 대한 생각을 유난히도 많이 한다. 한국에서의 사계절은 늘 함께 있었는데도 유독 가을이 되면 계절이란 것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우리에게 있어 가을은, 또 한 시절이 끝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언제나 가을을 떠올리면 저물어간다는 느낌보다는 시작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특이한 지점인지도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가을만 되면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반대로 봄이 되면 잠을 자고 싶어진다.) 더위에 찌들어있다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왠지 나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불쾌지수가 낮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감정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을 자체가 주는 인상은 복합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곤실레의 작품은 가을과 닮아있다. 색감뿐 아니라 예술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시도하고 탐색했던 작가의 모습은 가을의 그것과 통하는 데가 있다.
아무래도 자화상을 많이 그린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가을이 되면 그의 풍경화에 좀 더 시선이 많이 머무른다. 갈색을 주조색으로 하는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쓸쓸함과 동시에 생명력을 느낀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쓸쓸함 안에 약동하는 미세한 잠재력과 같다.
그의 그림 속 무너져가는 느낌에서 역설적으로 상승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가을은 기존의 것을 서서히 허물고 또다시 시작을 준비한다.
가을은 작은 변화라고 할지라도 이제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차곡차곡 담아 상자에 보관한다. 가을은 곡식과 과일이 풍성해지는 '계절'이면서도 모든 수확을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 모든 정리와 함께 얻어지는 것은 상자에 담을만한, 상자만큼의 경험치가 된다.
계절은 우리를 통해 계속 흐른다. 삶에서 수십의 계절을 흘려보내고 얻은 것은 나 자신이 언제나 그 모습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가을에 깃든 것이 쓸쓸함이든, 시작이든, 생명력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계속 변화한다. 그러니 과거의 잔상을 붙잡거나 그 마음을 그대로 품고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
계절이 변화하는 것처럼, 가을이 매 계절을 정리해 내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을 변화 속에 그대로 흘릴 필요가 있다. 자신이 삶의 통로가 되어 모든 것들을 흘려보내다 보면, 언젠가 붙잡으려 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자신만의 상자에 오롯이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