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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랑제 Aug 04. 2022

질 클레망,『정원으로 가는 길』03

발리, 그리고 동양의 수직정원

이곳에서 정원은 꽃 한 송이와 연蓮으로 요약된다


연못을 가득 채운 연꽃 (출처: http://cwfoodtravel.blogspot.com)


인도네시아에 대한 인상은 찌는 듯한 더위와 언제 풀릴지 모르는 교통체증이었다. 그런 나와는 달리 클레망은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무언가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땅을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더 많은 힘을 갖게 되는 서양식 면적 개념과는 대립되는 정신적, 수직적 정원이 그것이다.


두 개의 설주가 모여 문을 이룬다 (출처: Kharl Anthony Paica on Unsplash)


또한 그는 선과 악처럼 두 개의 설주가 모여 문을 이룬다는 점에 주목한다. 우주의 구성요소들을 수직으로 읽거나 대립되는 가르침들에서 통일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동양의 사유에 접근하는 길이라 생각다.


이 세계관은 중국 사상의 유산인 선禪 정원과 일본 교토의 료안지로 옲겨간다. 바람이 옮긴 모래를 다시 갈퀴로 긁어 정돈하는 행위에서 세계를 다시 만들려고 애쓰는 만다라를 발견하기도 한다.


료안지의 고산수 정원 (출처: https://kinukake.com)


정원사 없이는 정원이 존재할 수 없듯 명상가가 없다면 중국 쑤저우의 왕스위안網師園의 명상공간은 소멸될 것이라 말하는 그. 이어서 일본 정원을 다룬 『사쿠테이키』의 일부 내용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정원이란 인간이 커다란 깨달음에 이르는 데 필요한, 즉 꿈 저 너머에 있는 실재를 인식하는 데 필요한 수단들 중 하나다


그가 칭찬해마지 않았던 베르사유의 공간 고작 '외관의 예술'로 치부해버린다.


같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문명은 정신적 여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인간에게서 끌어내기로 한 반면 이미지에 매혹된 또 다른 문명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복잡한 외형에 만족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 보여주는 매개자가 정원의 역할이라면, 이때 정원사는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


정원사는 중재자인가, 신비로운 자연언어를 번역하는 자인가, 당근 재배자인가, 아니면 요기 yogi인가?


이런 질문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 나로서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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