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Neo Pop. Micro Pop

by 이정훈

Pop


쿵쾅거리는 망치소리가 얇은 벽을 타고 진동을 한다. 마치 머나먼 기억의 어느 곳으로 향하는 끝없는 두드림처럼, 잊을 듯, 잊혀 질 듯, 지워 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몸부림처럼......


Pont des Arts를 거닐면, 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눅눅한 나뭇결 속으로 파고들던 La Sene(1) 의 비릿한 물 내음과 검은 대륙을 뛰놀던 사람들의 심장소리와도 같은 Djembe(2)가 토해내던 나른한 오후의 환영이 서로 다른 빛깔의 피부와 서로 다른 언어들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돌과 쇠, 그리고 나무로 엮인 빈틈 사이로 얼핏얼핏 모습을 드러내는 하얀 물결, 마치 같은 시간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오브제들이 뻔뻔스럽게도 한 공간들을 차지하곤 그럭저럭 어우러져 녹아내리는 기괴한 하모니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새 나의 가슴 속에 오롯하게 자리하고 있는 Paris의 기억이다. 지금은 앙상한 생선가시처럼 메말라 버린 사회 속에서 한줌 살코기를 찾아 살아가는 인생이지만 잔인한 기억의 몽환 속에서 향유하던 삶의 달콤함은 아직도 나의 촉각 속에 각인되어 남아 있다.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하여본다. 혼자만의 사색, 혼자만의 기억, 혼자만의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절대적 창조의 완벽함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그리고 그가 오감으로 받아들였던 사람들과 사물들 혹은 그 어떤 것의 관계를 설정하여 가는 방식에 지나지 않다.


인종, 계급, 여성, 성적소수자(동성애), 이주노동자, 환경 등 어떤 것은 이미 심각한 사회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또 어떤 것은 간간히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이슈거리로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들은 나의 인식 저 너머에 있는 다른 세상의 일이다. 그러나 나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나와 사회의 관계,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한 번 쯤은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령 이주 노동자, 혹은 인종 문제를 살펴보면 1990년도에는 고작 4만9천507명에 불과하던 국내거주 외국인의 숫자는 2000년 49만1천324명으로 급증 하였고, 2008년 현재에 이르러서는 전체 인구의 2%대에 해당하는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국제결혼 이주자, 상사주제원등 다양한 계층의 외국인들이 나의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결코 나의 생활권 밖에 놓인 별 나라 사람들이 아니다.


국적도 요란하다. 조선족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 대만, 미국을 비롯하여 내가 알지 못하는 나라의 사람들도 그 속에는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다양한 피부와 다양한 언어 그리고 다양한 사연들 가령 국제결혼, 혼인 귀화자,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에 이르기 까지 그들이 한국이란 좁은 땅덩이에 살아야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국내거주 외국인의 23%를 차지하는 20만2천392명의 사람들이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족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의 안방에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사람들과 살을 맞대고 사는 마당에 ‘순혈주의’, ‘단일 민족주의’ 혹은 ‘단일 문화권’이니 하는 자긍심과 정체성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이미 현실로 다가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렇듯 세상은 어느 한 개인의 의지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마치 큰 물결이 흘러가듯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변화 혹은 주변 환경의 변혁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그리고 소위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은 그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문제점들의 본질은 ‘백인 남성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세상은 이미 국제화,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잠겨 있는 것 같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세계 사람들이 나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도 그 증거는 충분하다.


2010년을 코앞에 두고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패턴을 살펴보자. 자동차를 타고 커피를 마시며 아침마다 신문을 보거나 TV에서 세상의 소식을 듣는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친구와 채팅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가보지도 못한 나라의 주식을 사고팔기도 한다.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상업화된 서구세계의 매력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면은 ‘테크놀로지’와 ‘매스 미디어’의 소산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대중문화’ 혹은 미국이라는 세계경제 대국을 상징하는 ‘코카콜라’,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 마우스’, ‘맥도날드’로 번역되어 그것이 마치 나의 문화 나의 삶이었던 것처럼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향유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게 우리의 삶 속에 각인되어진 특정한 사물 혹은 사람의 이미지는 특정문화, 특히 선진 문화의 표상으로 우리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나 이러한 표상을 쫒는 젊은 세대들에게 ‘서구중심 백인중심주의적 질서를 따라가는 추세’는 어쩌면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접하여 알고 있던 ‘좋은 것’, 혹은 ‘우월한 것’으로 기억되어지고 동경의 대상으로 가슴 속에 자리하게 된다. 이렇게 각인된 기억들 혹은 길들여진 삶의 방식은 자신보다 우월하지 않은 존재 혹은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이라 불리는 나라 혹은 그곳의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엔디워홀의 마릴린먼로.jpg 엔디워홀-마릴린먼로

이러한 ‘특정 문화, 혹은 획일화된 문화에 길들여진 삶’ 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화적 독점상황을 조작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닌 듯하다. ‘문화적 독점 상황’을 초래하는 것은 스스로의 ‘문화적 권리’를 포기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며 그러한 문화를 향유하고자 한다면 경제적 대가를 주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마치 음모론처럼, 나의 삶은 세계경제의 ‘소비지역’으로 편입되어져 소비주체로 전락 되어 진 체 특정 문화와 미디어의 독점 현상 속에 갇히고 만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역으로 소수자들의 문화 표출을 억압하는 조건들이 형성되어져 가는 것이다. 특히 경제가 문화를 선별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문화생태계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서글픈 현실을 반영한다 할 것이다.


‘세잔’을 중심으로 한 ‘후기 인상주의’ 미술은 디자인이나 질감, 색과 질량에서 종래와는 전혀 다른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들의 화풍은 19세기 말엽에 미술계를 휩쓸던 ‘리얼리즘’ 화풍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러시아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추상화나 프랑스의 ‘조르주 브라크’ 혹은 ‘파블로 피카소’가 제안한 ‘큐비즘’ 등에 영향을 미치며 기존 화풍의 기본 원칙인 ‘원근법’을 해체시키고 2차원적 화폭의 그림에 새로운 해석을 내리는 시도로 이어졌다. 이들 ‘모더니즘’에 속하는 예술가들은 거의 19세기 말엽에 자라나 20세기 초엽에 성숙한 사람들로 육체적으로나 예술적으로도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체 세계 대전 사이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모더니즘적 변혁’ 보다도 더욱 급진적이고 과격하였다. 그들은 기존의 아름다움에 대한 원형의 파괴를 주장 하였고 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거부를 통해 ’모더니즘‘과의 단절을 선언 하거나 극복하여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선두에는 ‘플럭서스’(3)라는 전위적인 형태의 퍼포먼스가 동원되기도 하였다. ‘백남준’을 비롯한 ‘요셉보이스’ ‘안젤름키퍼’ ‘게오르게 브레히트’ ‘로베르 필라우’ ‘요코 오노’ ‘샬로트 무어맨’ 등은 기존에 사용 되었던 형식과 원형의 파괴를 시도 하면서 철학적 사고의 틀에서 벋어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추구하였다.


이렇듯 포스트모더니즘 적 사고의 체계와 세계경제의 자본주의적 성향 속에서 필연적으로 ‘팝 아트’ 작가들이 등장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관심 밖의 영역들로 여겨지던 작품의 소재와 주제, 내용들이 마치 기계가 찍어내는 일상적 소품처럼 예술로 받아들여지고 급기야는 현대미술의 한 특성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팝아트’는 태생적으로 진지함에 반기를 든 ‘가벼움’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삶과 유리된 미술에 대항했던 ‘네오 다다(Neo Dada)’의 정신이 ‘추상표현주의’ 와 ‘뒤샹’의 ‘레디메이드‘로 이어지면서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풍요로운 물질문명이 가져온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일상, 대량생산 및 소비풍조 속에 도시 문화의 특수한 풍조와 대중문화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사조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향락주의를 찬미하는 예술형태와 대중적 인기를 먹고 사는 속성이 결합하여 예술의 지위를 차지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요셉 보이스-죽은토끼.jpg

미술평론가 ‘클레먼트 그림버그(C. Greenberg)’는 새로움을 위한 전통과 싸우는 실험예술이 ‘아방가르드’라면, ‘키치’란 오직 시각적 자극이나 유희를 목표로 하는 상투적인 예술로 정의한다. 또한 혹자는 팝아트의 속성을 문화적 사보타주(Sabotage)(4)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현대 작가들의 연령은 점차 젊어지고 있으며 이들은 산업과 미술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에서 태어나 살아왔다. 이들에게 산업과 예술은 더 이상 분리된 세계가 아니고 일반 사람들 뿐 아니라 예술가들 역시 감각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철학적으로 고민하여 작품 활동을 하는 이들이 외면 받는 시대인 것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뚜렷하게 가시화 되고 있는 장르 간 경계의 해체, 미적 가치 규범의 변화,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적 개념의 해체 등은 디지털 혁명, 초국가적 문화자본의의 성장, 전문화되고 다양화된 수용자 그룹의 등장, 예술유통구조의 변화와 제작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결국 문화 전반에 걸친 ‘문화 향유방식의 변화’를 가져와 국내 뿐 아니라 외국 예술계의 지형도를 바꿔놓고 있다.


또한 예술이라는 개념자체, 예술작품의 존재방식, 창작과 감상에 이르는 소통의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는 실험적이고, 독립적이며, 다중적인 예술의 터전이 되고 있다. 때로는 기성예술 관습의 대안적 개념으로 장르예술의 상대적 개념(탈장르 예술, 복합장르 예술, 실험예술)으로, 그리고 새로운 예술을 의도적으로 촉진하려는 전략적 개념, 변화에 유연하고 다양한 현상을 포괄하려는 개방적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할 것이다.(5)


Neo Pop


서울에서 그들의 작품을 대한 것은 인사동 거리의 Art Shop에서 였다. 작고 앙증맞은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 일러스트 작업이 이런저런 상품에 인쇄되어 거리에 진열되어 있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마치 어느 광고의 문구처럼 접시 위에, 머그잔 위에, 그리고 나풀거리는 티셔츠위에서 개구쟁이 표정을 짓고 있는 꼬맹이들이 매장 하나 가득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2만원, 5만원의 제품으로 그의 작품들은 팔려나갔고, 예술을 향유할 줄 아는 계층의 사람들에게 조금은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하는 취향의 대상 정도로 여겨졌다. 이후 그의 이름은 나의 척박한 기억력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감추어 가고 있었고 그의 작업이 로댕 갤러리에서 전시 되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마유카 야마모토 (Mayuka Yamamoto, 1964~ )’의 전시 소식(gallery SP. 2008.12.4 ~ 2008.12.27. 인사동)을 접하면서 일본 작가들의 독특한 감수성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 하였다.


동물모양의 옷(Animal Suit)을 입은 아이들이 우울한 눈빛으로 화사한 화폭위에 외롭게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불안정하고 미완된 신비한 저 너머의 세상을 엿보게 했다. 마유카 야마모토의 섬세한 드로잉과 묘하게 헐렁해 보이는 동물의 가죽은 그녀의 말처럼 무언가 관객을 향해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첫눈에 보기에는 단지 귀여운 어린아이가 동물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전 관객들이 제 작품에서 무언가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원해요. 그래서 평범한 아이들의 초상화보다는 미묘한 두려움, 아련한 슬픔 등이 충돌하는 공간을 창조해내려고 노력해요.”(작가의 이야기)


‘나라 요시모토 (奈良美智(ならよしもと)Nara Yoshitomo)’는 50대의 장년기에 접어든 ‘59년생 일본 아오모리 현 히로사키시 출생의 작가이다. 그는 일본의 대중문화를 자신의 화폭에 담아내는 일본의 네오팝(Neo Pop) 아티스트로 혹은 ’무라카미 다카시‘(6)와 더불어 1세대 Japan Pop의 대표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화폭에서 찾을 수 있는 서정적이며 만화적인 요소들과 “어린왕자”를 연상케 하는 ''작은별 통신''이라는 삽화산문집은 왠지 무겁고 난해한 그래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은 예술의 세계를 마치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가벼운 담소로 풀어내는 일상의 편안함으로 안내 하는 듯하다.


다카시무라카미.jpg 다카시 무라카미

마치 일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과 한 개인의 잊혀진 기억 속에 가두어 두었던 일련의 비밀들이 어떻게 작품으로 옮겨지고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떠한 것인지, 관객의 궁금증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오픈되어지고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연필로 휘갈겨진 정리가 덜 된 듯한 일러스트들이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팝 아트’를 대중적이고, 소비적 성향이 강하며, 유행에 민감한 현대 사회의 상업적 마인드가 생산하여낸 예술의 장르로 이해한다. 즉 주변의 수없이 변화하는 시각적 사실들과 정보들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상품광고처럼 여과 없이 투영되어지는 상황 속에서 대중과 예술가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설정하고 수많은 정보에 식상한 현대인들에게 조금 더 감각적이며 파격적인 색채와 이미지로 각인 시키고자 하는 자본가(사업가)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예술을 어느 한 개인의 전유물 혹은 사유의 결과 내지는 부산물로 이해하기 보다는 누군가와 소통 하고 out side의 이방인 적인 태도에서 벋어나 in side의 한 개체로 당당히 사회적 이슈거리로 나서거나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알게 하고 계몽하는 차원의 선구자적 사고에 더 이상 작가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 내지는 변화의 바람은 비단 ‘팝아트’만의 뻔뻔한 변명 혹은 그에 속한 작가들의 궁핍한 변명만은 아닌 듯하다. ‘마르셀 뒤샹’은 변기 하나를 전시장에 진열하여 놓고는 “이것이 예술이다.”(7) 하였고, ‘요셉 보이스’는 죽은 토끼에게 예술의 의미를 설명하며 “의미를 가진 모든 것은 예술이다.” (8)라고 하였고, ‘앤디 워홀’은 수프 통조림 서른 두개를 세워놓고는 “그러니까 이것도 예술이지.” 하는 해프닝을 벌였다.(9) 급기야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로 사실상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종지부에 낙인을 찍기도 하였다.


이렇듯 노골적인 표현으로 관중을 우롱하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려던 일련의 사조들과 작가들에 비해 차라리 ‘팝아트’ 와 ‘아티스트’들은 기존 예술이 가지는 허울과 가죽을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대중 앞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선구자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사회적인 이슈거리와 세상의 이치(물질이 지배하는)를 너무도 통찰력 있게 받아들이고 해학적으로 풀어내었던 문화 코드의 또 다른 일면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팝아트의 대가라 일컫는 ‘엔디워홀’의 작업 방식은 상당히 시대와 영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픽적인 요소가 강하게 풍겨 나오는 그의 작업은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요소가 결합된 장르를 선보이면서 논란의 대상으로 부각 되었다. 그에게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직접 작품을 만들거나 제작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작업의 단계에서 단지 디렉팅을 하여 작품을 기획하고 공장에서 생산할 뿐이었다. 전통적인 예술의 생산방식인 장인의 손길보다는 작품을 마케팅하고 홍보하는 기업가적인 마인드로 접근을 하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무라카미 다카시’ 에게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주제로 하는 작품들과 드로잉, 조각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동시에 소화하는 그의 괴력은 문화 전반에 걸쳐 라디오 호스트, 칼럼리스트로도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루이비통’의 ‘마크 제이콥스’와 더불어 꼴라주 상품인 체리 블러섬, 모노그램 멀티 컬러, 아이 러브 모노그램 등과 같은 컬렉션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고, 특정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하여 ‘KaiKai Co. Ltd’라는 국제적인 기업 형 스튜디오를 운영하여 순수미술과 상업적 마인드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만끽하고 있다. 그는 예술의 상업주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본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방가르드 작품으로 인정받는 일본풍의 깜찍하고 천박한 망가 인형이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수십억 원에 팔려나가면서 소이 ‘일본의 신진 작가’(10)들을 수집가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으로 올려놓는 견인차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 요시모토 (Nara Yoshitomo)’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상업적인 영합이니, 자본이 어떻거니 하는 이야기 들은 사라지고 만다. 그냥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하고, 한바탕 눈싸움이라도 해야 시원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관중을 향해 잔뜩 치켜세운 눈초리로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아이는 입을 삐죽거리거나 앙 다물고 우두커니 서 있다. 작고 앙증맞은 표정과 2등신에 가까운 작은 몸뚱아리는 ‘당찬 꼬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면서 왜 저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지? 라는 순간의 당혹스러움과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동의 몸짓에서 묘한 매력이 발산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스크린샷 2025-09-04 오전 2.52.35.png 나라 요시모토

누가 그를 자본에 편입한 Pop 아티스트라 한단 말인가. 단순하면서도 정갈한 색채, 유치한 소품들,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를 사면 나누어 줄 것 같은 싸구려 동물 형상의 의상, 정 중앙에 혹은 전혀 구도를 생각지 않은 듯한, 삽화 혹은 만화와도 같은 이미지. 그의 그림에서는 심각하다거나 심오한, 뭔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회화의 난해함 혹은 작가의 고뇌, 화려하거나 능숙 능란한 색채의 오묘함 그 어떤 요소도 담아내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러한 일련의 재미있고 가벼운 특징들이 그를 진정한 팝 아티스트로 부르는 면이 아닌가 한다.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는 이들을 또다시 당혹스럽게 한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만화와 일러스트, 디자인과 회화는 누가 보아도 그 경계가 있고 누구나가 인정하듯, “서로 다른 어떤 것이다.” 라는 통념의 경계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하다. 마치 “그동안 누구나 인정하고 알고 있는 사실들이 과연 그러 한가?” 라는 뜻밖의 질문에 난처한 표정을 짓게 만드는 듯하다. ‘장 미쉘 바스키아 (Jean Michel Basquiat)’(11)의 낙서 같은 그림도 이처럼 당혹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 요시모토 (Nara Yoshitomo)’는 글에 대한 로망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진 작가다. 그는 이미 일본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12)의 저서 '하드 보일드 하드 럭'의 표지 일러스트로도 유명하며 그 자신 스스로가 마치 어린왕자의 이미지와 그러한 풍부한 상상력의 글을 대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서전적 산문을 내기도 하였다. 또한 그의 작품들의 제목을 살펴보아도 서정성 강한 그의 성향을 살펴볼 수 있다.


귀를 쫑긋 세운 갈색 새끼 고양이가 오리 모양의 간이 변기위에 올라앉은 모습을 그린 ''착한 새끼 고양이''나 스키를 타고 우주를 날고 있는 아이의 모습인 ''우주 스키어'',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우주선을 타고 가며 눈동자에서 노란 빛을 뿜어내는 아이를 그린 ''당신은 우주여행자'' 등은 감수성 예민한 소녀를 연상케 한다.


또한 록 음악을 좋아해 한때 뮤직바에서 DJ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도 하고, 뮤지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도 한다. 이러한 취향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의 제목인 ‘서서히 꺼져 가느니 확 타버리는 게 나아 -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he to fade away'도 너바나(Nirvana)(13)의 멤버 ’커트 코베인(Kurt Donald Cobain)‘이 1994년 자살 할 때 유서 말미에 인용한 말이라 한다.


“생활 자체가 불안정한 외국에 살면서 나의 그림은 큰 변화를 겪었다. 독일에서 온 뒤부터는 보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내게 소중하고 중요한 것만을 그렸다. 그 그림은 타인과 마주하기보다는 나 자신과 마주하여 태어난 것들이다. 다른 사람이 이런 이미지로 해주었으면 하고 바란 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태어난 그림이다“(작가의 작업일지 중)


그는 독일 유학시절에도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작업실 구석에서 그림만 그렸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단체행동이 서툴러 왕따를 당했던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슬픔이 그의 작품에는 배어 있다. 청소년기부터 일상의 행동으로 옮겨졌던 작은 저항과 자신이 속한 답답한 사회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하던 욕망, 음악의 열정과 서정적인 감성이 이끄는 우울함은 어찌 보면 ‘나라 요시모토 (Nara Yoshitomo)’라는 한 개인의 모습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가 이야기 하는 작은 캔버스 위의 특유한 악동의 모습에서 그만의 고독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네오팝 아트를 대하는 일반인들의 반응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열광하거나 그들 삶의 방식 혹은 작품 속 설정에 대해 의아해 하는 것이 그것이다. 마치 현실의 저편에서 사는 듯한 허구에 가까운 설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점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에서도 잘 나타난다. 잔인한 인간의 모습과 섬뜩한 칼날의 리얼한 표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카타르시스와 너무나 만화적이어서 현실감이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너무나 리얼하다. 아니 리얼하다기 보다는 너무나 현실적이란 말이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바로 나 자신의 주변을 가득 매우고 있는 문화의 한 단면을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 속에서 혹은 나의 눈앞에 펼쳐지는 도시의 생활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현재 일본의 작가들은 ‘만화적 감수성’을 통해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을 탐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인간다움을 관절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다양한 동작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을 닮은 인형에게서, 혹은 개인의 애정을 담아 낼 수 있는 동물 형상의 모형 장난감(피규어)을 통해 찾고자 하는 몸무림 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문화를 이야기 하는 또 다른 하나의 키워드가 오타쿠(おたく)이다. 일종의 매니아를 지칭하는 말이다. 특정 분야나 취미에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그것에 빠져드는 사람들, 식음을 전폐하고, 자신의 육체가 죽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만화나 미소녀 캐릭터, 혹은 인형을 수집하는 오늘날 일본 소비시장의 주체로 살아가는 ‘오타쿠 문화’의 장본인 들, 어쩌면 이들이 진정한 일본의 ‘서브 컬쳐(대중문화)’를 고급예술로 둔갑시키고 예술사의 새로운 지평을 팝 아티스들은 아닐까?


Micro pop


세계의 미술시장이 아시아를 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네오팝 아티스트들 혹은 신진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의 배경에는 서너 가지 요인이 작용하는 듯하다. 그중 하나는 일본의 B급 대중문화 코드와 연관되어 있다.


만화, 섹스, 복제 그것도 B급의 키치적 복제에 해당하는, 또 다른 하나는 그와 같은 문화적 코드와 연계되어 있는 산업들의 급성장이다. 애니매이션, 게임 산업을 비롯한 여성과 연계되어 있는 패션산업과 섹스시장 그리고 감성적이고 반짝이며, 항상 새로운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감각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대중문화를 성공적으로 포용하면서도 전통적인 감성을 잃지 않는 일본 현대 미술에 초점이 맞혀지고 있는 것이다. ‘엔디워홀’의 통조림과 같은 ‘일상성의 예술’이라는 지극히 계몽적인 화두가 ‘인용과 복제’라는 산업사회의 존재방식이 고스란히 예술에 반영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중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만화’(14)라는 문화 코드이다. 만화의 기원은 이집트의 상형문자로 부터 15세기의 유럽과 19세기의 미국 그리고 일본만화로 이어진다. 일본 만화는 미국과 교역을 하면서 서양을 따라 잡기위한 방편의 하나로 사용된 도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미 에도시대에 서민들의 그림이라 할 수 있는 민화가 있었다. 바로 ‘유키요에’(15)가 그것이다. 여기에 서양의 작법이 더해지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후 많은 출판사들의 급성장과 더불어 오늘날과 같은 형식의 만화가 그려졌다고 한다.


이미 1996년 현재 ‘만화’는 일본판매 서적의 22.0%, 잡지의 38.5%를 차지하며 여러 종류의 예술과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1946년과 1949년 사이에 태어났던 '베이비 붐' 시대의 일본인들은 1956년 설립된 애니메이션(16) 전문 업체 ‘토에이 동화’가 만들어 내는 만화 영화에 익숙해 있으며 1960년대 이후 만화의 독자층은 젊은이에서 30대와 40대 중장년까지 넓은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오늘날 일본의 만화는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만화’라는 장르는 그 자체로 세계 각지에서 친숙한 단어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하나의 문화코드로 예술로 인식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아시아의 대만이나 홍콩, 한국과 같은 곳에서는 이미 일본 출판업자들과의 독점 라이센스 계약이 이루어지고 최신 인기 만화들이 대량으로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다.


‘아키라’(오토모 카츠히로 作),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미야자키 하야오 作), ‘드래곤 볼’(토리야마 아키라 作) 등의 만화는 이미 전 세계의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 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문화 아이콘으로 작용하고 있다. 1997년에 나온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원령공주"는 디즈니사의 배급망을 타고 수출이 되어 세계시장에서 메이저급으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나라 요시모토 (Nara Yoshitomo)’도 ‘철근콘크리트’를 그린 만화가 ‘마쓰모토 다이요’의 팬이었다고 한다. 이는 비단 그에게만 해당하는 취향은 아닌 듯하다. 전반적으로 현재 일본에서 활동 하고 있는 4~50대 혹은 그보다 젊은 세대의 ‘네오팝 세대’작가까지도 위에서 잠시 살펴본 바와 같이 망가 혹은 애니매이션이라는 독특한 양식을 너무도 친숙한 문화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세대들인 것이다. 급성장하는 경제 성장 속에서 한 개인 이라기보다는 전체의 하나로 읽혀져야 했던 그들의 삶과 정서는 세련된 도시의 문화 그 중에서도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분출되어 나오는 것이다.


여기 2007년 일본에서 가장 화제를 모았던 전시 중 ‘마이크로 팝의 시대; 여름을 향한 문’을 소개 하려 한다. 이바라기현(茨城県) 미토시(水戸市)에 위치한 ‘미토 예술관 현대미술갤러리(2월3일-5월6일)’에서 열렸던 이 전시는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 태어난 일본의 작가13명이 참가를 하였다. 이 전시는 미술평론가 ‘마쓰이 미도리(松井みどり)’에 의해 주도적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최근 10년간 일본 미술의 최전선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경향을 분석하여 소위 ‘마이크로 팝 선언’ 과 ‘마이크로 팝의 방법론’을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마이크로 팝이란 제도적인 윤리와 주요한 이데올로기에 기대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모은 단편을 통합하여 독자적 삶의 방식의 양식과 미학을 만들어 내는 자세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또한 5가지 방법론에서는 ‘도시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삼아 기능에 의해 분단된 도시에 유동성을 부여하며 거기에 유희적으로 개입하기’, ‘성별, 국적, 연령 등 인간을 규정하는 기존의 경계에서 일탈하여 어린 아이나 미성년과 같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사물의 상식적인 틀을 넘어 단편을 통해 복잡한 문맥을 상기시키는 환유의 효과를 사용하는 연상적인 과정을 재현하기’, ‘이성으로 이해 불가능한 일,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이해 불가능한 부분을 표현하고, 그것을 관객에 추체험시켜 표현하기, 또는 그러한 상황을 구축하기’, ‘일상의 제품과 미디어를 전략적으로 재사용하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작은 정치적 실천(micro political)이라는 전략을 통해 “제도화된 문화의 틀과 글로벌화 되어있는 자본주의의 정보망에 의한 물신숭배에 저항하고, ‘지금 여기’의 실질적인 조건과 요구에 부응하면서 독자의 지각과 창조의 장을 발견”(마쓰이 미도리, 「마이크로 팝 선언」)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필자도 그들의 주장에 동감하는 부분이다. 거대한 조직의 하나로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의 삶은 도시라는 배경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극되어지는 욕망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분주하다. 또한 누군가 처 놓은 빈틈없는 그물망에 꼼짝없이 갇힌 것 같은 답답함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하루의 해를 보내고 있는지 혹은 진정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래디 메이드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맥도날드의 온갖 고기가 구겨진 햄버거를 코카콜라와 곁들여 들이키는 삶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이 생긴다. 조금은, 모두에서 언급한 ‘백인 남성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여름을 향한 문 앞에서 그들이 가장 인간적인, 혹은 가벼운, 그러나 사람의 심장소리와 톤이 비슷할 것 같은 ‘드로잉’의 섬세한 삶을 기대하는 것이다. 섬약한 선을 통해 드러나는 개인이 가진 기억의 단편적인 흔적을 찾아 어린아이의 유희, 손장난과도 같은 ‘작은 창조’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마이크로’ 말 그대로 작고 내밀하며 개인적인 현대인들의 감정 상태와 일상을 담아내고 싶은 것이다.




1).유키 구라모토의 'REFINEMENT'라는 앨범의 2번째 곡 'A SCENE OF LA SENE'(세느강의 전경)

2).젬베(Djembe)'는 타악기의 일종으로, 멤브라폰(Membranophones)에 속한다. 공명 통에 팽팽히 조여진 막이나 가죽을 떨리게 하여 소리를 내는 악기로 몸체는 나무로 만들었다. 모래시계모양을 하고 있으며 윗부분은 동물의 가죽을 씌워 만들었다. 그 기원은 14세기에서 16세기 서아프리카를 지배한 고대 말리 제국에서 유래한다.

3).플럭서스(Fluxus)는 1960년대의 전위적인 미술의 한 방향이었다. 그 시초는 리투아니아계 미국 미술가 George Maciunas가 사용한 플럭서스에서 유래한다. 그 흐름의 주요 참여자로는 백남준, 요셉 보이스, 존 케이지 등이 활약하였다. 독일에서 시작되어 뉴욕과 북구의 수도인 여러 도시로 확산되었으며 일본과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도 비슷한 활동이 독자적으로 펼쳐졌다. 이 운동은 대중문화에 의존하지 않고 아방가르드 미술가와 음악가와 시인들이 창조해 나갈 새로운 문화를 추구했으며 게릴라 극장과 거리 공연, 전자음악 연주회 같은 초기의 플럭서스 이벤트는 1960년대와 연결 지어 생각되는 성적 충동과 무정부주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4).사보타주란 노동자들이 기업주등의 자본가에게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계나 시설 등을 고의적으로 훼손시키며 파업, 투쟁하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어의 사보(sabot:나막신)에서 나온 말로, 중세 유럽 농민들이 영주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여 수확물을 사보로 짓밟은 데서 연유한다. 대표적으로 산업화혁명 이후 19세기 초 영국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극심한 빈부격차와 실업난의 이유가 기계 때문이라고 보고 기계를 때려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이 유행하기도 하였으며, 근래에 와서는 때로는 적국을 교란시키기 위하여 상대국에 사보타주 운동을 몰래 계획하는 경우도 있었다.

5).장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예술 활동(탈장르 예술, 복합장르예술, 실험예술) 다양한 예술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 활동(문화다원주의, 예술 활동의 공공성) 비상업적, 비 주류적 예술 활동(독립예술, 대안예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보고서, p46

6).무라카미 다카시는 1962년생으로 도쿄에서 출생한 아티스트이다. 도쿄예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94년에는 록펠러 재단의 ACC그랜드를 받고 P.S.1의 아트 프로젝트에 참가 하였다. 이후, 뉴욕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1996년부터 히로폰 팩토리라는 집단 창작시스템을 주재하고 있다. (히로폰이라는 이름은 오타쿠 문화가 LSD 등의 마약과 같다는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7).1917년 뉴욕, 참가비 6달러만 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인 ‘앙데팡당 전’에 출품된 작품이 그랜드 센트럴 갤러리에서 철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전시회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었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익명으로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이 붙은 남자 소변기를 조각 작품으로 출품한 것이다. 유약 처리가 된 도기제품인 남자 소변기에 뉴욕의 화장실용품 전문 제조업자 ‘리처드 머트’의 이름에서 따온 ‘R. MUTT’란 서명이 있었다.

8).그는 '순환'과 '흐름을 근본적인 에너지의 순환, 즉, 고체 액체, 기체와 같은 순환으로 열에 의해 형태가 바뀌며 형태 변화보다도 변화과정 자체를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따라서 그의 재료는 주로 꿀, 밀랍, 지방, 버터, 마가린등과 같은 열에 의한 용해 가능한 자연물이었다. 벌이 꿀을 자신의 몸속에서 밀랍으로 바꾸어 집을 짓는 과정이 인간의 신진대사나 사회구조와 비슷하다고 보았다. 특히 토끼는 그가 자신과 동일시했던 것으로 예로부터 여러 문명에서 신성시 된 동물로 보이스에게는 토양과 생식과 육화(肉化)를 상징 한다.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 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ere?>에서 그는 토끼를 안고 3시간 동안이나 그림을 설명하고 '사람들보다도 죽은 토끼가 더 큰 직관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 하였다

9).미국의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1928~87)은 현대미술을 얘기하며 빼놓을 수 없다. 미술은 물론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잡다한 일상사물과 대중문화를 미술에 끌어들여 순수·대중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팝아트의 진수를 보여준다. 워홀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실크스크린을 미술기법으로 도입했다. ‘브릴로 상자’ ‘캠벨수프 통조림’ ‘코카콜라병’ 등 사물, ‘마릴린 먼로’ ‘재키’ ‘마오쩌둥’ 등 대중스타, 정치인들을 소재로 삼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찍어내곤 했다.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고 외친 그는 작업실을 “팩토리(공장)”라 불렀고, 작품을 ‘찍어’냈다. 숭고한 작품을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상품’으로 전락시킨 것으로 작가의 독창성이나 작품의 고유성 등 기존 미술 관념을 뒤집었다. ‘마릴린 먼로’ 초상화는 잘 들여다보면 개성·감정 등을 철저히 없앴고, 슈퍼마켓 진열대처럼 반복 구성함으로써 아예 생명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로 인식되도록 했다. 사람이 죽어가는 섬뜩한 자동차사고 현장 사진을 활용한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업은 대량생산·대량소비사회, 인간도 무심한 기계가 되는 현실, 인간의 감정까지도 상품화되고, 매스미디어가 쏟아내는 무한정의 이미지들 속에서 무감각해지는 현대인들을 담아냈다.

10).‘히로유키 마츠라.’ ‘히로토 키타가와,’ ‘타카푸미 하라,’ ‘마유카 야마모토’, ‘모토히코 오다니,’ ‘아키노 콘도,’ 그리고 ‘토모코 코노이케’등이 그 첨단에서 작가 각자의 뚜렷한 특징을 회화, 사진, 영상,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로 표출하고 있다.

11). Jean Michel Basquiat는 1960년 뉴욕, 브룩클린에서 출생했으며, 1988년 뉴욕에서 사망했다. 1980년대 뉴욕 예술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던 바스키아는 아이티인 아버지와 푸에토리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의 어린 시절 내내 공공보호기관에 수용되어 있었다. 그는 브룩클린의 중류층에서 성장했다. 스페인어와 영어 모두 가능했으며 지독한 책벌레였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7살에 집을 나왔다. 1997년부터 1979년까지 길거리나 버려진 건물에서 지냈으며, 간혹 그의 친구들과 함께 보내기도 했다. 친구인 AI Diaz의 도움을 받아 낙서(grafitti texts)시리즈에 힘을 쏟기 시작했고, 곧 grafitti artist, 낙서화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12).요시모토 바나나 : 요시모토 바나나(일본어: よしもと ばなな, 1964년 7월 24일)는 일본의 현대 소설가이다. 본명은 '요시모토 마호코'(吉本真秀子)이다. 사상가이자 문필가인 요시모토 타카아키(吉本隆明)의 차녀이며, 만화가 하루노 요이코(ハルノ宵子)의 동생이다. 일본 대학교 예술학부 문예학과를 졸업하고 대학 졸업 작품으로 쓴 《달빛 그림자》로 학부장상을 받는다. 작가 데뷔작인 《키친》으로 카이엔 문학상, 이즈미 쿄카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후, 바나나현상을 일으키며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하여 큰 인기를 얻는다. 대표작으로는 《키친》외에 《N.P》, 《도마뱀》,《암리타》 등이 있다. 《키친(1990)》,《티티새(1990)》,《아르헨티나 할머니(2007)》는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13).너바나(Nirvana)는 미국의 애버딘에서 결성된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밴드이다. 《Nevermind》의 〈Smells Like Teen Spirit〉이 히트를 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50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커트 코베인이 1994년에 사망하여 해체하게 되었다. 데이브 그롤은 너바나 해체 후 자신의 밴드인 푸 파이터즈를 결성했다.

14).캐리커처(caricature) : 사람이나 동물의 특징을 과장해서 그린 것

카툰(cartoon) : 어떤 사건 또는 정치적·사회적인 풍조를 풍자하여 그린 1장짜리 그림

만화(comic strip : comic book도 포함) : 줄거리가 있는 것

15).중세 전기의 전국시대, 계속되는 전란으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던 서민들이 불교의 염세사상에 따라 현세를 덧없는 세상 즉 '우키요(憂き世)'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중세 말기에 이르러 신흥무가로 지배권이 옮겨가 현세는 순간일 뿐이라는 사고가 팽배해지고 향락을 추구하는 풍조가 널리 퍼지면서 '우키요(憂き世)'는 어느새 '우키요(浮世)' 즉 속세, 현실이라는 의미로 바뀌게 되었고, 당시 유행하던 그림 형태에 우키요에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 서민들에 의해 발생한 민화이다. 에도시대 초기부터 막부시대 말까지 교토를 중심으로 한 서민의 풍속 및 생활, 자연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말한다. 교토 서민생활을 중심으로 한 그림에서 시작되었으며, 대중화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퍼진 것은 18세기 에도시대가 되고나서 부터이다. 단색판화에서 시작한 목판화의 기술이 다색판화로 향상되면서 가부키배우, 도회의 여성, 서민들의 풍속 등 생활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가 그려졌고, 때마침 책 등의 읽을거리가 유행하자 우키요에가 그 옆에 그려지면서 더욱 대중화되었다.

16).애니메이션(animation)이란 용어는 ‘영혼’이라는 뜻의 라틴어 Anima에서 유래한다. 즉, 애니메이션은 생명이 없는 물체에 움직임을 주어 살아 움직이게 하는 영상물의 총칭이다. 애니메이션은 만화를 영화화한 만화영화, 인형을 가지고 영상을 만드는 퍼펫 애니메이션, 찰흙을 변형시켜 만든 클레이메이션, 종이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기법과 형태로 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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