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하얀 사람 혹은 한 푼 없는 처지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거나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하는 일이 없으니 당연히 직업이란 것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까닭에 손이 거칠지 않고 하얀 사람도 있다.
이 역시 백수다.
이런 백수들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눈은 그리 곱지 않다.
백수 그 자체가 흉인 까닭이다.
흉은 덮어야 한다.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게 꼭꼭 감추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그러하듯 백수가 되고 싶어 백수로 사는 것은 아닐게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선 공부를 많이하면 백수가 될 확률이 높다.
돈이 많으면 자발적 백수가 되는 경우도 많다.
하얀 손은 돈도 많아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하여야 한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사회다.
때문에 아마도...
현대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몇 안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바로 하얀 손의 백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이런 백수를 혐오하지만 부러워하는 것 같다.
어찌 되었건 백수의 범주에 속하려면 일단은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빈둥거려야 하고 여기에 백수건달(白手乾達)이 되려면 거들먹거려야 한다.
하는 일이 없이 빈둥거리고 거들먹 거릴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백수건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백수건달(白手乾達)
백수와 건달이란 단어는 참으로 재미있다.
어른들의 장수를 기원하는 말 중에 '백수를 누리세요.'라는 표현이 있다.
한자의 '百' 자에서 '一'을 빼면 '白' 자가 되는 데 이를 사용하여
아흔아홉 살까지 살라는 말이다.
숫자의 의미보다는 오래도록 살라는 의미를 지녔다.
물론 이때 사용하는 백수의 수는 목숨수, 혹은 장수수(壽) 자를 사용한다.
'건달'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 말이 불교의 '건달파(乾闥婆)'에서 온 말이라는 견해가 가장 일반적이다.
그러나 "특별히 하는 일 없이 행패와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의미와
불교에서 음악(音樂)의 신(神)을 나타내던 '건달파(乾闥婆)'에서 찾는 것은
왠지 부자연스럽다.
이보다는 '건들바람', '건들거리다'의 '건들'이나
'조선 시대, 사복시에서 말을 맡아 거두던 하인'을 의미하는
'거들먹거리며 걷는 하인'을 뜻하던 '거덜'과 관련시키는 해석이 좀 더 타당할 듯하다
그럼에도 달리 생각하면
건달은 백 년이란 세월을 살면서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산다는 의미다.
참 대단한 의미를 지녔다.
이리저리 억지로 끼워 맞추니 참 고급지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백수란 단어는 그리 좋게 들리지 않는다.
2009년 350만 명이 백수로 살았다.
2025년도 350만이 백수로 살고 있다.
실제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숫자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
아마도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이어갈 것이 뻔하다.
그래도 2025년 현재까지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소이 백수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 직장이란 곳을 가야 하고 학교를 가야 한다.
자신이 잠들었던 이부자리를 벗어나 어딘가로 옮겨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며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어야 한다.
마치 비빔밥의 콩나물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가벼운 존재감 일지언정ᅠ
어젯밤 잠들었던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침이란 단어가 시들해지기 전에 이동을 하여야 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대인들의 삶이 언제부터 이렇게 규칙적인 것이 되었는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아침밥을 챙겨 먹고,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곤혹스러운 버스나 지하철에 매달려 소이 회사라는 곳으로 출근을 한다.
그리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업무라는 것을 본다.
사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거리는 한 두 해 지나가면 지겨울 정도로 익숙해지고ᅠ
넌더리가 날 정도로 숙련이 되어버린다.
그리게 되면 점점 백수의 범주에서도 멀어져 간다.
사회인으로 탄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