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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톱달방랑자 Nov 05. 2021

동백꽃의 꽃말.

하루를 버티는 중입니다. 

동백꽃을 새겼습니다.




한 달을 주기로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내 인생이 차고 기우는 주기가 있었으면 차라리 버티기 쉬울 것 같았다. 2021년 10월, 나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시일을 채우지 못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을 결심했다. 말이 좋아 건강상의 이유지, 내 몸은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이 망가져 있었다. 괜찮다고 버티고 버텼던 게 탈이 났는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야금야금 몸이 삭기 시작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정신건강 역시 그랬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망가진 몸에 제대로 된 정신이 자리잡기는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정식적인 병명은 공황장애, 그리고 조울증이었다. 


나는 내가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괜찮아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억지로 끌어당겼는지도 모른다. 병원보다 고작해야 몇 주 먼저 찾은 심리상담의 첫 만남에서 나는, 동의서를 읽어내리는 것만으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쏟아야 했다. 아직도 나는 그때 해주신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 왜 울어요? 어떤 기분에서 눈물이 나나요? 그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애써 모른 척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두 번이면 되겠지 생각한 상담은 횟수를 거듭하고, 먹는 약의 종류도 다양해졌을 무렵 나는 무사히 회사를 뒤로 하고 나올 수 있었다. 일주일만 늦었어도, 나 스스로 어떤 결정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우습게도 내가 회사를 떠나 제일 먼저 한 것은 타투였다. 오른쪽 손목 아래에 동백꽃을 새겼다. 매번 살을 빼고 나서 해야지 하고 미루던 것을 단번에 결정하고 하게 만든 것은, 삶에 대한 의지였다. 


내가 정신과를 다니고, 심리상담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던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랬다. 너는 그래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야. 죽지만 않으면 돼. 나는 속으로 조금 웃었다. 그들의 말처럼, 나는 그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이 맞았다. 죽는다는 게 두려워서 그것만 아니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살아왔다. 죽는 것보다 나쁜 일은 없다고, 죽는 것만은 너무 무섭다고.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어느 순간에도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는커녕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그래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던 공황발작은 내게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보험이 마음에 걸려서 한 달만 지나고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안 되겠느냐 말하는 엄마에게 나는 난생처음 내 두려움을 털어놓았다. 


엄마, 나 죽을 것 같아. 무서워. 내가 진짜 죽을 것 같아서 병원에 가는 거야.
엄살 피우는 거 아니야.

전화 너머의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즈음 나는, 그토록 살고 싶어 하는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까 겁이 났다. 오늘은 어떻게든 버텼는데, 내일이 되면 그게 종이조각이 되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게 두려웠다.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고, 눈앞이 아득하고, 주저앉아 울고만 싶어졌다. 막연히 미래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죽음이 내 코 앞에 앉아 같이 가자, 나를 꼬드기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나는, 그들의 말처럼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장 잘 보이는 곳, 내가 언제든 볼 수 있는 곳, 만에 하나 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순간에도 볼 수밖에 없는 곳에 동백꽃을 새기기로 했다. 왜 하필 동백꽃이었냐면, 아주 단순하게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서 나는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동백꽃은 떨어질 때 목이 똑, 떨어져 꺾인다. 잎이 하나하나 분철되지 않고, 오롯한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고고한 모습으로. 또 하나, 붉은 동백꽃의 꽃말 때문이다. 


나는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타투를 내 몸에 새겨주던 작가님이 물으셨다. 왜 하필 동백꽃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살고 싶어서요. 다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살라고. 지금의 내가, 스스로 보기엔 형편없어 생을 끝마치고 싶더라도. 다른 누가 봐도 무너지기 직전의 인생일지라도, 나 하나만큼은 나를 좀 사랑해주고 싶었다. 


오늘부터 써 내려갈 이 이야기들은 다소 어이없고, 다소 우울하고, 다소 황당하고, 다소 우습더라도,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생존기가 될 것이다. 


나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다. 더불어 조울증도. 세상에 이 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이들 중에, 나 같은 사람도 있겠지. 나는 우리 같이 살아보아요, 힘내요, 따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아주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그들에게,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뿐이다. 남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얼마나 힘들게 버텨내야 하는 날들인지, 그저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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