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 걸어드립니다

프롤로그

by 송곳독서

함께보다는 혼자가 편하지 않나요?

점심을 먹지 않고 산책을 한다. 지하철에서는 생활 소음을 차단하고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빵빵한 헤드폰을 사용한다. 회식도 가능하면 피해 다니고, 3개월씩 레슨을 받았던 다양한 운동도 거의 다 그만두었다(그만두었다기보다는,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만 해도 3개,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 1개, 플래너 쓰는 모임 그리고 미라클모닝을 함께하는 모임도 있다. 단톡방은 많아서 굳이 세지 않기로 한다. 여기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느냐고? 물론 선택적으로 시간을 잘 안배해서 활용하고 있다. 이런 말하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원씽'과 '삶의 우선순위'를 잘 지켜나가는 중이다. 이 이야기는 차차 앞으로 풀어갈 예정이니 이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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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은 MBTI 검사 결과를 묻는다. 10년도 전에 딱 한 번 해 본 기억은 있다. ISTJ 또는 ISFJ 가 나오지 않았을까. 사실 완전 E(외향)에 가깝다던가, 태어날 때부터 I(내향)라는 말을 들을 때면 오히려 의문이 든다. 약간만 생각을 바꾸어도 결과는 크게 바뀔 수 있는 게 아닌가. 완벽히 외향형 인간도 그렇다고 원래부터 내향형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환경과 스스로의 선택이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MBTI 결과를 물으면, 자연스럽게 해 본 적이 없다고 슬쩍 얼버무리며 넘어간다.


중, 고등학생 시절 내향적인 학생에 가까웠다.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는 것보다는 조용한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는 것을 선호했다. 적당한 소음이 있는 카페보다는 소음이 완벽히 통제된 조용한 곳이 좋았다.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린 시절엔 조금 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태어나 처음으로 반장을 해봤다. '타의 모범이 되고, 성실하게 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라고 추측했겠지만, 사실은 너무 장난이 심해서 반장을 시켜주면 더 잘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랬다고 한다. 뭐 그랬던 거 같다.


인간을 바꾸는 세 가지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_오마에 겐이치

짧은 내 인생을 돌이켜보니, 오마에 겐이치의 말이 정확하게 맞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는다. 부모님은 중학교 1학년 때 맹모삼천지교를 생각하셨다. 직접 물어보진 않아서 사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마음이셨을 것 같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공부를 안 하던 아들이 걱정이 되셨는지, 원래 사는 곳과 정반대에 있는 동네로 이사를 결심하셨다. 남자 학군이 나름 좋다는 곳이었고, 남자 중학교와 남자 고등학교가 많은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아파트가 아닌 주택으로 이사를 하셨다. 인생 14년 차에 처음으로 주택에 살게 되었다.


부모님은 맹모삼천지교만이 아니라 오마에 겐이치의 말로 직감으로 알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이사를 하면서 사는 곳이 바뀌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고, 정말 시간을 달리 쓰게 되었다. 그게 외향적인 어린 시절을 내향적으로 바꾸어준 계기가 아닐까 싶다. 나중에 우리 아들도 아빠를 닮아서 장난이 심하다면, 부모님이 하셨던 그 선택을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글을 쓰면서 하게 된다. 다행히도 7살 아들은 엄마를 닮아서 차분하다.


결국 이야기의 시작은 이곳이다. 공군사관학교.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단 한 번도 사관학교를 가겠다는 꿈을 꾸어본 적은 없다. 내향적인 성격으로 바뀐 덕에 운동은 싫어했고, 앉아서 공부하는 게 더 좋았다. 사관학교를 다니던 선배들이 모교에 홍보를 올 때는 별로 관심을 주지도 않았다. 내가 갈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가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뭐 지나고 보니 인생이 그렇긴 하지만 말이다.


재수생활을 하다가 수능시험 전 테스트를 위해 사관학교 시험을 보기로 했다. 재수생들의 장점이라면, 현역들보다 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 같이 재수하던 친구들과 떼로(?) 몰려서 사관학교 1차 시험을 보러 갔다. 시험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고, 그 경험으로 충분했다. 여기까지로 끝났다면 아름다운 경험이었을까? 재수생의 여유는 2차 면접까지 이어졌다. 1차 시험에 붙고 청주에 있는 사관학교에 바람도 쐴 겸 2차 면접과 신체검사 그리고 체력검정을 하러 갔다. 체력검정이 걱정돼서 집 앞 공원을 몇 번 뛰고 갔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렇게 선택의 우연들을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결국엔 공군사관학교에 가게 되었다. 균형 잡힌 생활, 튼튼한 체력,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던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어린 나이에 비행기를 탄다는 환상만을 가지고 그런 결정을 내렸던 건 아닐까 다시 생각해본다. 이건 마치 우리 아들이 청진기를 가지고 놀면서 "아빠, 나는 의사 선생님이 될 거야."라고 말한 후 선택한 것과 비슷하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내렸다는 말이다.


사전 정보도 없이 그렇게 학교 가는 것처럼 사관학교에 갔다. 군대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가방 하나 매고 친구와 둘이 버스를 타고 사관학교를 찾아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순진하고 무지했지만, 몰랐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완전하게 바꾸었지만, 지나고 보면 결국 인생의 과정 중에 하나일 뿐이다. 사관학교를 졸업 후 10년간의 장교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했을 때, 역시나 비슷한 생각을 했다. 결국에는 내 선택이 삶을 변화로 이끌었다.


당신과 함께 걸어드립니다.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지금에서야 깨달아 가는 것이 있다. 이게 정답이 아닐지도 모르니 '깨달음'이라는 표현보다는 그 과정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테다. 또 지금은 이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한 10년쯤 지난 후에는 내 생각이 아쉬울 수도 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는 것보다는 선택해서 행동으로 옮긴 후에 후회하는 것이 결과는 항상 더 좋았다.


그 깨달음이라는 것은,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하더니 겨우 이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이건 이미 많은 책에서 한 식상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서 여기에 하나 더 덧붙여보려고 한다. 그건 바로 그저 함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이미 걸어본 사람이나,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과 함께.
(피드백을 받으면서) 그 과정을 온전히 함께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관학교 시절이 가장 가슴이 뛰고 행복감을 느꼈던 시기도 3, 4학년 때 후배들의 성장을 도와주는 경험을 하던 때이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내가 아닌 다른 분들이 리더가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도, 플래너를 쓰면서 그 사람들이 목표를 이루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리고 습관 모임을 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도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이다.


지금부터 내가 쓸 이야기는 함께 걸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적어볼 계획이다. 처음에는 스스로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그 사람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