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끝에 깨달은 마감의 소중함
3주에서 한 달 간격으로 돌아오는 마감과 동시에 다음 콘텐츠의 기획을 병행하는 삶, 휴직 전 내가 일했던 방식이다. 최소 세 달의 시간을 두고 프로젝트성으로 작업을 하던 학생 시절이나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시기와만 비교해봐도 일반적으로 콘텐츠 업계의 호흡은 빠르다. 빠르기 때문에 빨리 시도하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어서 좋았지만 항상 마감의 끝에 이게 최선이었을까? 더 좋은 것은 없었을까? 꼬리처럼 질문에 시달렸다.
휴직을 하고 설렌 마음으로 한 해 계획을 세웠던 2월, 1년이나 시간이 있으니 하고 싶은 프로젝트 모두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믿음에 휩싸였다. 유튜브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 참에 책이라도 낼 수 있을 것 같고 수업도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고 모든 것이 희망적이었다.
상상 속 계획과 실제 실행은 늘 다르다고, 기대했던 어마어마한 아웃풋을 내는 한 해를 만들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원인은 1. 지나친 완벽주의 2. 기한이 없다는 이유로 계속 미뤄짐 3. 타인의 감시가 없어 미뤄짐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도달할 필요 없는 디테일에 혼자 집중하며 마침표를 찍지 못한 많은 작업들의 더미 속에 쌓이는 것보다 부족해도 마침표를 찍고 세상밖으로 꺼낸 작업들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뭘 그렇게 창작이라는 업에 대해서 거창하게 생각했을까. 10번의 습작보다 1번의 미숙한 완성작이 더 가치 있었다.
"저는 돌아오려고 여행을 가요."
한 지인이 얼마 전 다녀온 뉴욕여행을 회고하며 말했다. 일부러 멀리멀리 여행을 가서 한국에 돌아와 자신의 집에서 늘 먹는 불닭을 시켜 먹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반복재생하기 위해서 떠난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행복은 지금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여기밖에 있다고 떠나는 사람인데,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말이 이상할 만큼 이번 휴직을 더 잘 설명해 준다고 느꼈다.
항상 부족하지만 끝내는 마감을 쌓아 올려 나의 한해를 만들었던 직장으로, 자리로 돌아간다. 한 번의 마감마다 아쉬움은 덜어낼 수 없겠지만 그 아쉬움마저 다음에는 더 잘해야지 같은 배움으로 돌아온다. 긴 시간을 들여 큰 기대로 마친 작품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나에게 크게 실망하지만 수많은 작은 베팅인 빠른 마감은 아쉬워도 빨리 무릎을 털고 일어날 수 있다. 다음 마감에 잘하면 되니까.
휴직의 끝에 거창한 결론, 거창한 작업, 거창한 성과 같은 것은 없지만 원래 내가 있던 자리의 소중함을 알고 돌아갈 수 있어서 마음이 제법 가볍다. 1년 동안 쓰고 내놓지 못한 글들이 많지만 시간순에 상관없이 이 글을 내보내는 것도 같은 마음에서다. 이번 마감을 끝내고, 아쉬우면 다음에 잘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