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그래서 갑자기 휴직을 한 이유는

6년 차 브랜드 디자이너가 휴직하고 마주한 다능인의 삶

by 일상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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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고 조금은 어수선했던 2월, 회사에서 제공하는 1년 휴직계를 냈다. 주변인들은 모두 갑자기? 왜?라고 물어봤지만 변화는 갑작스럽게 온 것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 중이었고 내 안의 변화를 밖으로 꺼내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휴직하면 뭐할 건데? 일 안 하면 뭐할 건데? 의 질문에 그럴싸하게 어디에 무슨 공간을 만들 거야-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디자이너들은 힙하게 쇼룸 + 작업실 + 카페 공간을 만드는 로망이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소박하게 말했다. "브런치를 열으려고 해."


성수동에 숲세권, 빨간 벽돌 건물에 2층은 창이 크고 빛이 잘 들어오고 1층의 통창으로 시즌마다 어울리는 그래픽으로 꾸미는 공간을 만들 수는 없지만 이 작은 1920*1080 세상에 오픈한 나만의 '브런치 공간'은 '나'를 마주해 찾아낸 디자이너로서의 삶과 또 다른 꿈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1. 나는 왜 그런 걸까?


최초 기억이라 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려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우와 멋지다 나도 그려줘"가 내게 준 기쁨, 살아있는 듯한 감각은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평생 하고 살아도 될 일이라고 알려주었다. 당연하게 일찍부터 그림을 배웠고 미술, 디자인의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갑자기 내가 가장 잘하고 좋아한다고 믿는 이 모든 일들을 다 뒤엎고 완전히 다른 길도 가고 싶은 강한 의지가 주기적으로 끓어오르곤 했다.

"이렇게 평생 미술만 해야 하나?"가 나를 진학했던 예술 중학교에서 일반 중학교로 전학가게 만들었고

"난 전문적인 디자이너가 될 수 없을 거야"가 나를 심리학과를 복수 전공하게 만들었다.

"왜 우리는 직업을 하나밖에 가질 수 없었을까?"가 휴직을 하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2. 모든 것을 하고 싶으면 안 될까?


디자인과 미술 어려서부터 평생 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데

자꾸 다른 일들에 눈길을 돌리는 내가 가끔은 싫었고 일련의 죄책감까지 느꼈다. 심지어 하고 싶은 그 일들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려웠으며, 여러 종류 중 하나만 선택과 집중을 하는 사이 다른 옵션들을 놓치게 될까 봐 결론적으로는 아무 변화도 주지 않는 상황에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곤 했다.


우연히 넷플릭스로 보게 된 드라마 <더 볼드 타입>은 잡지사를 배경으로 스타일리스트(아트디렉터), 기자, 소셜 디렉터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보자마자 알았다. 나는 세 명의 직업을 모두 가지고 싶었다. 모두가 보편적으로 겪는 경험도 다른 Angle(관점)로 글을 쓰는 제인과, 가장 현시대에 적절하고 크리에이티브한 방식으로 소셜에서 목소리를 내는 캣과, 머릿속에 머물러 있는 이미지를 사진과 스타일링으로 세상 밖에 꺼내는 서튼이 각자의 언어와 방식으로 빛나 보였다. 그리고 그 빛나는 재능이 모여 '잡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MAGAZINE, 잡지 그 단어만으로도 이유 없는 두근거림을 느끼는 나에겐 오랜 시간 동안 산발적으로 하고 싶었던 모든 일들이 사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형태가 글이든, 이미지든, 출력된 책이든, 디지털 콘텐츠이든 가능한 창조적이며,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3. 내게 온 모든 점들은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


그래서 결국 내가 휴직을 한 이유는,

1. 멈춰 있었던 단조로운 삶에 최대한 많은 변주를 더하기

2. 도전하고 싶었던 다양성을 충분히 실험하고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보기

3. 내가 경험하고 실험하는 모든 것을 미숙할지라도 콘텐츠로 제작해 외부에 공유하기

를 하기 위해서 이다.

즉, 나 스스로 정의내린 잡지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방식도, 흩뿌리든 기웃거린 다양한 관심사들도 모두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한번쯤 시간을 가지고 서로를 연결 지어보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보내기 위한 일 년을 보내기 위해 새 작업실에 첫 페인트 붓칠을 얹듯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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