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Aug 22. 2022

디자인하기 전, 반드시 하는 것

디자이너가 작성하는 PRD, 프롤로그


강박과 불안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해지는 짤


나는 강박과 불안이 좀 높은 사람이다. 20살 때 심리 상담을 위해 2시간가량의 심리 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평균치보다 조금 더 높은 점수를 받아 불안 및 강박 장애를 진단받은 적이 있다. 그 후 약 6개월 정도 상담 치료를 통해 스스로 강박과 불안을 조절하고 해소할 수 있도록 단련하는 훈련을 했다. 최근 그때 상담받았던 선생님한테 또 받아보고 싶어 찾아봤는데 병원이랑 담당 의사 선생님 성함이 기억이 안나서 슬프다. 비보험으로 진료받았던 터라, 기록이 없다.


지금은 생활에 지장을 겪을 만큼 심하진 않지만, 애초에 성향 자체가 그래서인지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 것 같다. 그냥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 생각하고, 그런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 했다. 안 그러려고도 노력해 봤는데 오히려 그게 더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냥 생긴 대로 살자, 버릴 수 없다면 생산성이라도 높이자 싶어 불안과 강박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 원동력으로 삼아 사용하고 있다. 웃긴 건 이런 나를 보는 주변인들이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음. 정작 나는 이게 디폴트라 그런가 그저 그런데 간혹 좀 무리했다 싶으면 몸 어딘가가 아플 때가 있다. 그제서야 '아, 나 지금 과속하고 있구나! 정지하자!' 싶어 조금 멈춰서 쉬다가 다시 또 달리곤 한다. 







그런 사람이

대학생 때 한 짓


그런 성향 때문인지 대학생 때 내가 자주 하던 버릇(루틴) 중 하나가 강의 자료 정리였다. 교수마다 강의 스타일은 천차만별이다. 그중 가장 많이 접한 스타일은 '전공책이나 특정 책을 바탕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스타일', '본인이 준비한 강의 자료로 강의를 진행하는 스타일'이었다. 책은 이미 프린트되어 있는 것이기에 내가 어찌할 바가 없고, 어차피 별도로 필기를 정리하기 때문에 상관이 없었다. 근데 파일로 받는 강의 자료가 문제였다. 라떼는 태블릿 디바이스가 대중적이지 않았고, 주로 종이로 프린트해 강의 내용만큼 파일에 넣어 들고 다니거나 한번에 프린트해서 책처럼 제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학기 초마다 프린트 가게에서 줄 서서 프린트해 본 13학번들 r u 데얼..? 


학기 시간표가 최종 확정되면 강의 회차별 내용과 양을 훑어보면서 예습 겸 학기 전체 일정을 짜곤 했다. (진짜 지금보다 더 지독한 J였음 정말) 이때 강의 자료의 디자인이 지나치게 촌스럽거나, 내용 이해를 방해할 만큼 불필요한 디테일이 많거나, 페이지 낭비가 심하거나, 내용이 너무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경우 도저히 이걸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우영우가 삐뚤어진 김밥을 절대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국 내가 매번 강의 때마다 이 자료를 보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런 요소에 거슬려 스트레스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리고 불필요한 페이지나 면적당 내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은 경우, 쓸데없이 많은 양의 종이를 프린트해 낭비하기 때문에 프린트 할 때 쉴새 없이 나오는 종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A4 사이즈를 반으로 나눠 2개 페이지를 넣고, 양면 인쇄랑 흑백 인쇄함.. 어차피 컬러는 내용 이해와 아무 관계도 없고, 만약 색상이 중요하다면 PC에서 확인했음. 그냥 태블릿 살걸. 뭔가 그때는 태블릿이나 노트북 들고 다니면 좀 유난 떠는 대학생처럼 보이는 느낌이었다. (왜 인지는 모름..)


당최 잠을 잘 수가 없어


그래서 굳이 사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내가 보기 편하게 정리를 하곤 했다. 누구한테 보여주거나 자랑할 것도 없고 그냥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고 뿌듯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디자인이었던 셈이다. (그때부터 디자인에 재미를 느꼈구나, 나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스스로 재밌고 예습하면서 성적도 올릴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역시 뭐든 간에 일단 재미가 있고 봐야 하는 것..! 이런 나를 보고 주변 친구들은 매번 사서 고생한다며 신기해했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된 

지금도 하고 있는 짓


감안안둔다 다 정리해벌인다


세 살 버릇 여든 살까지 간다고 디자이너로 일하는 지금도 똑같다. 그 대상만 달라졌을 뿐. 사실 지금껏 이런 부분에 대해 스스로 자각하고 있지 못했는데, 이번에 브런치에 PRD 관련 글을 작성하면서 갑자기 급 깨달았다. 'PO, PM, 기획자가 넘겨주는 정리된 PRD가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나는 내 워크스페이스에다가 한번 더 정리하고 있는 게 대학생 때 교수님 강의 자료를 정리하던 것과 똑같잖아..!' 그렇담 이렇게 정리한 PRD로 브런치에 시리즈를 작성하면 개꿀! 그래서 이렇게 프롤로그를 작성하고 있다. 후후. (과연 개꿀일지..)


원래도 별걸 다 기록하네 병이 있긴 한데, 이건 업무적으로 무척 도움이 되는 버릇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이런 행위로 인해 얻는 장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방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3개 정도 되는 것 같다.

직접 작성하기 때문에 내가 이해하는 부분과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파악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내용을 정리하면서 해당 구조대로 머리에 저장할 수 있다.

포트폴리오나 브런치에 글을 쓸 때 그대로 가져다 살만 붙여 글로 작성할 수 있다.


아무튼, 그래서, 결론은! 작든 크든 업무를 하면서 내가 정리한 PRD를 브런치 글로 작성해 보려고 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이 문장 하나를 글 하나로 발행하기 위해 길게 늘여 구구절절 작성하려다 시작한 글이다. 사실 요근래 갑자기 급 구독자분들이 늘어서 뭐라도 얼른 써야 된다는 압박감에 부랴부랴 뭐라도 써보자 싶어 이렇게 써보는 건데, 모르겠다 일단 해보자! 하다 보면 방향이 잡히것지. 많관부!






매거진의 이전글 GNB, SNB로 문제 해결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