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면서도 짧은 나의 아침 시간 이야기
오전 7시에 눈을 뜨자마자 커피머신에 캡슐을 끼워놓고 기지개를 편다. 베란다에 온몸이 쏘옥 담기는 캠핑의자에 몸을 맡기고 다 내려진 에스프레소 한잔을 들고 오늘의 첫 담배를 입에 문다.
핸드폰을 들어 오늘의 캘린더 내 할일을 쭈욱 본다. 오늘도 뭔가 개선해야할 페이지들이 있다. 지난주부터 계속 미뤄진 일들이다. 금방 끝날 일들이 자꾸 미뤄지는 건 그날 그날 새로 생기는 일들 때문인 것 같다. 매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끝나지 않는 마라톤을 뛰는 것 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두번째 담배를 입에 문다. 커피도 한모금 더 마신다. 슬쩍 오늘의 운세를 본다. 오늘은 뭔가 새로운 날이 될거라고 한다. 어제의 운세는 힘들고 어려운 날이 될 거라고 했다. 사실, 어제도 오늘도 지난 주도 힘들고 어려웠으면서도 매일 새로운 날이었다. 즐겁게 일 하지 않으면 더 힘들다. 운세는 늘 맞으면서도 틀린다.
빈 커피잔을 들고 싱크대로 가서 컵을 씻는다. 선식 한 스푼을 뜨고 물을 부어 휘휘 저어 마신다. 그렇게 아침을 먹은 걸로. 까먹고 있던 한약을 급하게 꺼내 귀퉁이를 잘라 한숨에 들이킨다. 쓰다. 맛이 없다. 그래도 참고 먹는다. 빈혈에 좋다고 했다. 몇년 째 악성빈혈에 시달려왔기에 이번에는 꼭 제대로 한약을 먹고 낫고 싶다. 작년쯤에도 반쯤은 먹다남은 한약들을 다 찢어 변기통에 버린 적이 있다. 사실 그렇게 금방 지겨워하고 싫으면 버리는 성격이다. 이번에는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 두달째 한약을 먹고 있는데.. 세달까지 먹으면 좀 더 나아질까 고민스럽다. 술과 담배도 끊으면 더 좋다고 하는데, 도무지 담배는 못 끊겠다. 아침에 나의 흡연타임이라야말로 내 하루의 가장 큰 즐거움이자 그나마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인데, 이걸 끊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괜히 요가매트 위에 올라서서 스쿼트를 시작해본다. 힘들다. 매번 할 때마다 힘들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점점 단단해질거라 생각하며 또 다시 하나를 더 한다. 시계를 한번 보고 열개만 더 하자고 다짐한다. 까치머리를 하고 목 늘어난 잠옷을 입고 아침부터 요가매트에 서서 스쿼트를 하는 내 모습이 참 우스꽝스럽다. 애써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피하기로 한다.
언뜻 시계를 보니 벌써 아홉시다. 이젠 씻어야 한다. 보일러를 온수로 돌려놓고 대략 3분정도 기다린다. 또 핸드폰을 켜고 보기 시작한다. 오늘의 날씨가 어쩌려나 싶은 마음에 항상 씻기전엔 날씨를 검색해본다. 맑고 어제보다 덥다. 어제는 그렇게 비바람이 치더니 그새 하늘을 맑고 파란 하늘이 보인다. 제주의 날씨는 그렇다. 하루 앞,아니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맑다가도 안개가 자욱히 끼고, 뜬금없이 비가 오고, 그러다 갠다. 말버릇처럼 제주 날씨를 보며 이런 날씨야 말로 우리네 인생이지라는 괜한 늙은이같은 소리를 한다.
출근준비를 끝내면 통상 이시간이 된다. 시간을 한번 확인 해보면 늘 같은 시간이다. 어제 퇴근할 때 가져온 가방은 거실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여져 있다. 어짜피 또 그대로 들고 나갈 가방이다. 혹시 몰라 가방안에 물건들을 한번 더 살펴보고 다시 베란다로 나간다. 다시 담배를 문다. 오늘의 몇번째 담배인지는 모르겠다.
차에 시동을 켠다. 작년 겨울쯤 산 이차는 아직도 뭔가 조심스럽다. 예열을 안하고 바로 출발하면 전투기 날아가는 소리가 난다. 디젤도 아닌데 원래 그렇다고 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차 안이 따듯하다. 운전석 바로 뒤에 엔진이 있어서인지 여름에는 많이 더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뭐 출퇴근 시간이 워낙 짧으니 나름 안심이 된다.
벅스를 켜서 오늘은 뭘 들으면서 출근을 할까 스크롤을 쭉 내려본다. 재생리스트엔 늘 같은 음악이긴 하다. 스크롤만 죽 내려볼 뿐 결국엔 그냥 같은 음악을 또 플레이 한다. 무중력. 언젠가부터 계속 첫 음악이다. 회사에 도착하기까지는 대략 5,6곡 정도를 들을 수 있다. 가까워서 좋은데, 운전하면서 들을 리스트 선곡 하기에는 참 짧은 시간이다. 눈이 부셔서 뒤적뒤적 선글라스도 찾아 낀다.
오늘도 힘들고 어렵겠지만 새롭고 신나는 일이 있을 거라는 운세를 한 번 더 믿어본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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