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1할에 관한 기록
지켜내야 하는 숫자 7·2·1
일과 투자 7할,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간 2할, 그리고 나머지 1할. 이 1할의 시간은 생산성으로 환산되지 않고, 성과표에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간이 무너지면 나머지 9할이 흔들릴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오늘은 그 1할의 시간을 썼다. 2005년에 입사해서 5년을 함께 일했던 회사 동료다. 나이가 훨씬 어린 동료였지만 그녀는 때로 언니처럼 나를 헤아려 주기도 했다. 우리가 각자의 커리어와 내일의 이야기를 넘어, 서로의 아이들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딸 셋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고, 나는 18살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어느새 서로 알고 지낸 지 21년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왔다.
우리는 1년에 두세 번 정도 만난다.
정기적인 만남이라고 부르기에는 간격이 길고, 그렇다고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꾸준하다. 작년에도 세 번을 만났고, 그중 한 번은 지리산 근처 ‘천개의 향나무숲’이라는 곳에서 1박 2일을 보냈다. 특별한 일정은 없었다. 걷고, 밥을 먹고, 잠들기 전까지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도, 조언할 의무도 없었다. 우리는 그냥 서로의 편이다. 작년 9월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오늘, 그녀는 큰 딸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기뻤고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그녀가 정말 ‘잘 해냈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말은 딸에게가 아니라, 그녀에게 하고 싶었다. 오랜 시간 세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삶을 버리지 않으려고 애썼을 소중한 내 친구에게 말이다. 우리는 서로의 좋은 소식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사이다. 그게 이 관계의 전부다. 정보 교환도 아니고, 인맥 관리도 아니다. 필요할 때 찾는 관계도 아니다. 각자의 삶이 바쁠수록 더 소중해지는, 이상하게도 오래 유지되는 연결이다.
나는 이런 만남이 1년 365일 중 최소 36.5일 이상은 있어야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꼭 여행일 필요는 없다. 꼭 긴 대화일 필요도 없다. 아무 목적 없이, 성과 없이, 결과 없이 함께 시간을 쓰는 날들. 서로에게 따뜻한 응원과 경청, 그리고 축하를 건네는 관계 말이다. 투자를 하며 느낀 건, 사람도 포트폴리오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수익을 내는 자산도 필요하고, 안정성을 주는 자산도 필요하다. 그리고 수치로 환산되지 않지만 전체를 지탱해 주는 자산이 있다. 나에게 이 만남들은 그런 자산이다. 시장이 흔들릴 때, 판단이 흐려질 때, 이 관계들은 나를 다시 일상으로 데려온다.
예전에는 이런 시간을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미뤘다. 돈이 좀 더 안정되면, 일이 정리되면, 전업 투자자가 되면. 하지만 그때는 오지 않았다. 대신 깨달았다. 이런 시간이 먼저 지켜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삶의 1할을 먼저 떼어두기로 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아무 목적 없이 시간을 쓰기 위해, 축하하고 응원하기 위해 남겨두는 시간. 이 1할이 지켜질 때, 나머지 9할도 과속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헤어지며 다음 만남을 정확히 정하지 않았다. 대신 “또 보자”라는 말을 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충분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 정도면 충분한 관계다.
나는 여전히 밤에 물고기를 잡는 투자자다.
낮에는 시장을 보고, 숫자를 계산하고, 판단을 점검한다. 하지만 이 1할의 시간에서는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을 보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판단한다. 아마도 내가 지키고 싶은 삶은 이런 모양일 것이다. 성과를 향해 달려가되, 관계를 잃지 않는 삶. 미래를 준비하되, 현재를 비워두지 않는 삶. 그 중심에 있는 이 1할의 시간이, 나를 다시 사람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