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기술을 파는 비즈니스

무너진 변호사의 직업윤리

by 유진

비극적인 뉴스 한 줄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턱 막히는 날이었습니다.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차마 끝까지 읽기 힘든 기사였는데요, 정작 저를 더 무너지게 한 건 기사 아래 붙은 '광고'였습니다.

"미성년자 성매매, 이렇게 하면 혐의 없음" "성착취물 700개에서 10개로 줄인 사례"

단정하게 슈트를 입은 변호사들의 얼굴 옆으로 승전보처럼 걸린 문구들이 달려있었습니다.


여고생을 모텔로 유인해 엽기적인 범죄의 내용이 상세히 묘사된 기사였고, 내용은 보니 10년도 더 된 사건이 광고용으로 재가공된 것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아이를 잃은 부모의 피눈물이 섞인 기사 바로 밑에,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는 광고가 버젓이 걸려 있었습니다. 법률 전문플랫폼이란 곳에서 하는 광고의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 정치나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걸 본 순간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이 광고는 단순히 타기팅 알고리즘의 실수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잔인합니다. 법률 서비스 플랫폼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법치주의'라는 이름 아래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어 졌습니다.

변호사에게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것이 '성공 사례'라는 타이틀을 달고, 끔찍한 범죄 기사 옆에서 홍보 수단으로 쓰이는 순간, 그것은 변호(辯護)가 아니라 '범죄의 기술'을 파는 비즈니스가 됩니다.


누구를 향한 '부끄러움'인가

기사 속 피해 학생의 부모님이 만약 이 광고를 보았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내 아이의 죽음을 다룬 기사 바로 옆에서 누군가는 법망을 피해 가는 법을 광고하고 있는 이 풍경을요. 우리는 흔히 '기술에는 죄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기술을 활용해 광고를 집행하는 플랫폼과, 그 속에 자신의 얼굴을 건 법률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정의'와 '승소'의 가치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연민은 포함되어 있느냐고 말입니다.


돈이면 무엇이든 홍보할 수 있고, 법조차 쇼핑몰의 상품처럼 전시되는 오늘이 부끄러운 날입니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감정을 계산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계산할 수 있습니다. 법이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망정, 그 눈물 위에서 춤을 추는 일은 멈춰야 합니다. 오늘 제가 느낀 이 불쾌함이 저 혼자만의 유난히 아니기를, 그리고 이 광고를 내건 이들이 한 번쯤은 기사의 맥락을 살피는 '부끄러움'을 알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