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 않는 관계는 소모다

설명하기 어려웠던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

by 유진




사람은 관계를 통해 소모되기도 하고, 관계를 통해 남겨지기도 한다.

어떤 관계는 내 안의 고요를 조금씩 갉아먹고, 또 어떤 관계는 아무 말 없이도 나를 다시 세운다.

이 차이는 늘 거창한 사건에서 생기지 않는다.

대개 아주 사소한 순간에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말의 결이 조금 달라지거나, 눈길이 예상보다 짧게 머물거나, 대화의 흐름이 어딘가 미세하게 어긋날 때.

이 감정을 언어로 구체화하기 시작한 순간은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던 어느 저녁이었다.

유난히 조용한 길이었다.

가로등 아래 내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있는데, 그 하루를 지나온 나는 내가 조금 사라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함께 있는 동안은 늘 괜찮았다.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분위기 자체는 문제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헤어지고 나면 마음이 조금 비어 있었다. 분명 별일은 없었는데 내 쪽에서만 에너지가 소모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상대가 자신의 힘듦을 내게 털어놓으면,

나는 어느새 그 감정의 무게를 함께 감당하고 있었고 돌아보면 그 과정에서 내가 내 자리를 조금씩 비워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감정도 있었다.

그날 있었던 대화 속에 아주 얇은 불편함이 스며 있었는데, 그걸 그 순간엔 인지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야 ‘왜 그 말이 계속 걸리지?’ 하고 묘하게 기분이 상하곤 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내가 기울인 에너지가 관계 안에서 전혀 순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마음으로는 함께 고민했지만, 그 시간은 결국 나에게만 남았고 상대는 다음에도 같은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그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받아내는 그릇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생각해 보면 관계는 결국 내 안에 무엇이 남는가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함께한 시간 뒤에 따뜻한 잔여를 남기고, 누군가는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도 묘하게 빠져나간 자리만 남긴다.

관계의 진짜 모습은 주고받은 말이 아니라 헤어진 후 내 안에 남은 자리에서 드러난다.

남지 않는 관계는 결국 소모다.

그렇다면 결국 무엇이 나를 소모하게 만들고, 무엇이 나를 확장하게 하는가. 돌이켜보면 소모되는 관계에는 늘 몇 가지 공통된 패턴이 있었다.

첫째, 감정의 흐름이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

상대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나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내는 쪽에 서 있었다.

무언가 특별히 부탁받은 것도 아닌데, 자꾸만 ‘받아주는 사람’의 자리에 머물게 되었다.

그 흐름이 반복될수록 대화는 둘의 것이 아니라,

점점 한 사람의 무게를 다른 사람이 떠안는 구조로 굳어졌다.

둘째, 그 반복 속에서 변화의 조짐은 거의 없었다.

나는 고민을 함께 짊어졌지만, 상대의 일상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나만 그 문제를 붙들고 있었다.

이런 비대칭은 관계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면서도 나에게는 설명하기 힘든 피로를 남겼다.

셋째, 함께 있을 때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웃기도 하고, 대화도 흘러갔다.

그러나 헤어지고 나면 늘 묘한 피로감이 따라붙었다.

당장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올라오는 기분 나쁨도 있었다. 그 말들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작은 타격이 있었다. 악의는 없었겠지만, 그 미세한 타격들이 겹치자 마음이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이 세 가지가 반복되면서 관계는 어느덧 ‘함께 있음’이 아니라 ‘내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과정’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관계의 본질은 순간의 즐거움이 아니라, 그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내 안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누군가와의 만남이 나를 확장시키면 우리는 그 관계에 계속 머무르고, 반대로 나를 축소시키면 몸은 남아 있어도 마음은 자리를 떠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관계를 말의 양이나 대화의 온기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 시간을 지나온 나는 더 견고해졌는가,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공허만 남았는가.

남겨지는 쪽이 없다면, 그 관계가 알려주는 방향은 분명하다. 더 깊어지라는 신호가 아니라 내 존재를 보호할 수 있는 자리로 옮기라는 조용한 권유.

사람은 결국 자신을 지워가는 관계보다 자신을 선명하게 만드는 관계 속에서 오래 머문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나를 흐릿하게 만드는 연결보다는 내 안의 잔여를 따뜻하게 지켜주는 연결을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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