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책임, 그리고 성숙함에 관한 짧은 기록>

by 유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어릴 때는 더 그렇다.

경험이 적고 세계가 좁을수록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의 선을 배워간다.

어떤 실수는 당황스럽고, 어떤 실수는 부끄럽고, 또 어떤 실수는 시간이 지나면 웃으며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인간에게 실수는 일정 부분 허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건 성장 과정의 자연스러운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실수가 같은 무게는 아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그 사실을 더 또렷하게 인식하게 된다. 특히 인격적 문제와 연결되는 실수, 예컨대 술에 취한 채 저지르는 행동이나 타인에게 반복적으로 상처를 주는 행동은 더 이상 “어려서”라는 말로 변명하기 어렵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어떤 실수는 20대에는 이해할 수 있었는데 30대가 넘어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울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성숙함의 기준이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성숙함이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으로 얻어지는 특성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고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잘못을 모르는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잘못을 알면서도 계속 반복하는 사람이다.

그 반복에는 책임도, 수치심도, 변화의 의지도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을 볼 때 종종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왜 나이를 이만큼 먹고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이걸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왜 수치도, 창피함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

나는 이런 부분에 예민한 사람이다.

예민함은 나쁘지 않다.

예민함은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지키려는 감각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타인을 신뢰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선 같은 것이다.

성숙함이란 대단한 철학이 아니라 “내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결과를 주는지 아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에 가깝다.

어릴 땐 그럴 수 있다고 웃으며 넘길 수 있었던 실수도 이 나이가 되면 더 이상 같은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

그 기준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최소한의 책임과 존중의 문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실수 그 자체보다 실수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성숙함을 본다.

나이를 먹는다고 성숙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실수 앞에서 멈춰 서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은 시간과 함께 진짜 어른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과 더 오래 머무르고 싶다.

서로의 실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사람들.

실수를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지키는 사람들.

그 기준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멀어지는 이유도 이제는 조금 이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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