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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김밥 권하는 사회

by 유진Jang

서교동 사거리 길모퉁이에는 몇 해 전 문을 연 개방형 동물원이 있었다. 갈기가 거의 다 빠지고,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수사자가 갈기에 달린 눈물방울을 앞발로 쳐내며 연어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H는 사자의 눈치를 보며 동물원 앞 GS25로 들어갔다. 검정 마스크를 쓴 아줌마가 부르르 떨며 말했다. "제가 손님한테 한 마디만 할게요. 저 사자를 절대로 쳐다보지 마세요. 눈이 마주치면 목을 물어뜯을 거예요. 어제도 어떤 여자가 순식간에 당했지요. 저 사자는 말도 하는데 사투리 억양을 보니 그쪽 동네 같아요. 어쩌면 사자의 탈을 쓴 악마일 수도 있어요." H는 카운터에 삼각김밥과 콜라를 놓으며 알았다고 했다.


가게를 나온 후, H는 어떤 알 수 없는 느낌에 사로잡혀 결국 사자를 곁눈질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사자 역시 곁눈질로 H를 보고 있었다. 전기뱀장어회를 먹은 듯 H의 머리털이 곤두섰다. H는 사자에게 살려달라며, 난 사자가 아니라 산 자로 있고 싶다고 애걸했다. 사자는 당황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오햅니다. 난 결코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내 꼴을 좀 보세요. 영양실조에다가 역류성 식도염으로 속 쓰림 증세마저 있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전 사자도 아닙니다. 원래는 물개였답니다. 눈 코 입 귀는 물론 전신 성형을 했습니다. 갈기도 모발이식한 거예요. 이 도시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지금은 후회하지만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어요. 나는 없지만 있는 그림자들한테 매일 매도당하고, 매일 난도질당하고, 매일 잡도리당하고 있어요. 누가 집무실에 앉아 있어도 이건 변하지 않았어요. 얼마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잡지에서도 서울을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도시로 뽑았다지요. 2위가 카라카스였지요." 사자는 말했다. 그로부터 피어오르는 비릿한 냄새, 그 냄새를 맡자 H는 그가 진실을 말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H는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삼각김밥을 건넸다. 그는 애통한 미소를 흘리며 고맙다고 했다. 그러고는 미안하지만 약국에서 파모티딘을 좀 사다 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H는 알았다고 하고 약국 쪽으로 발을 내딛는데 구두 밑창에서 아사삭 소리가 났다. 짓밟혀 뭉개져 버린 존재의 존엄성. 그때 어디로부터 멧비둘기가 날아왔다. 산산조각 난 감자칩 한 점을 물은 새는, 물개와 H를 곁눈질로 보고는 진홍빛 노을이 내려앉은 창천교회 방향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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