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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Jang Nov 07. 2024

시카고 모놀로그 (2/3)

2.

일요일이 되면 세 사람은 미주 최대 장로교단이자 진보적인 신학 노선을 가진 PCUSA에 속한 로렌스 한인 장로교회에 참석했다. 용칠은 시민권 있는 여자를 기필코 만나겠다는 목적으로, 준식은 점심을 공짜로 먹는다는 이유로, 상구는 용칠과 준식이 교회에 나가는데 혼자 집에 있기가 심심해서,라는 명확한 동기가 있었다. 보통 그들은 11시 30분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뒤 세 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주일 설교는 로마서에 있는 내용으로 이신칭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성화의 과정 속에서 겪는 신자의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내적 갈등을 다룬 강설이었는데, 세 사람은 무슨 설교를 듣던 교회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절반쯤을 잊어버렸고, 그나마 머릿속에 남아있는 나머지 절반의 내용은 그들이 차를 타고 집에 오는 도중에 대기 속으로 모두 흩어져버리고 마는 형이었다. 구약이든지 신약이든지 성서 말씀이 날마다 새롭다고 하는 까닭은 어쩌면 서를 읽거나 교를 들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몇 시간이 채 안 잊버리 때문 새롭게 느껴지는 것인가, 하고 상구는 사유했다. 웬일로 교회에서 장어덮밥이 다 나오냐?라고 용칠이 거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헌금이 많이 걷혔나 보지 뭐,라고 준식이 말했고, 그의 말에 상구는 피식하고 웃었다. 용칠은 오늘 청년부에 새로 등록한 여자에 대해 얘기를 했다. 눈에 색기가 좔좔 흐르는 게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하지만 시민권자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여유로움을 그녀로부터 느낄 수 없어서 그녀 자신과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 일부러 거리를 두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만약 자신의 허벅지툭툭 건드린다면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목적을 충족시켜 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준식은 거울이 발명된 유일한 이유는 용칠 같은 사람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에 있다며 코웃음을 쳤다.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는 소리 발끈한 용칠은 준식의 진짜 정체를 미숙에게 낱낱이 밝히겠다며 그를 협박했다. 준식은 어디서 얕은수를 쓰냐며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밝혀보라고 같잖다는 듯 대응했다. 용칠이 준식을 보며 씩 웃더니 비장의 무기인 미숙의 휴대폰 번호를 또박또박 읊었다. 그러자 준식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용칠을 노려보며 도대체 어떻게 미숙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이냐며 그를 추궁했다. “지난주 일요일에 너 낮잠 자빠져 잘 때 네 휴대폰이 울리더라. 쓱 보니까 Daling이라고 쓰여 있어서 그게 미숙이라는 확신이 들었지. 야 그런데 시카고 대학에서 MBA 한다는 녀석이 다이얼링도 아니고 Daling이 뭐냐. r이 빠졌잖아! 이건 나도 알겠다 인마!” 용칠이 킥킥대며 말했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상구 역시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죽상을 쓰고 있던 준식도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던지 실실 웃기 시작했다. 준식은 달링의 스펠링을 몰랐던 게 아니라 단순한 실수였다고 변명하며 킬킬거렸다. 이들의 웃음소리가 좁은 아파트 안에 가득히 퍼져나갔다.


차이나타운을 몇 블록 통과한 뒤, 해피 엔터프라이즈 주차장에 도착한 세 사람은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미시즈 히긴스를 찾았지만 무슨 일인지 몰라도 그녀가 도통 보이질 않았다. 항상 제일 먼저 도착해 검은색 보온 도시락 통을 들고 가게 출입문 앞에 서 있던 그녀였다. 오전 10시가 지나서야 상구는 정 사장으로부터 그녀의 입원 소식을 들었다. 어디가 아픈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다만 매우 위독한 상태라는 것은 분명했다. 정 사장은 포도나무 한인교회 목회자와 통화를 한 뒤, 심각한 얼굴로 오전 내내 줄담배를 피워댔다. 준식과 용칠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비보에 웃음기 잃은 얼굴로 오늘 아침 일찍 댈러스에서 들어온 가발을 정리했다. 해피 엔터프라이즈 근처에 위치한 Wang's Express에서 점심을 시켜 먹으면서도 그들은 침묵 가운데 침통한 분위기로 밥을 먹었다. 대충 점심 식사를 마친 상구는 화장실로 들어가서 토일렛에 앉아 두 손을 모았다. 왠지 미시즈 히긴스를 위해 신에게 기도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가 어렵게 입술을 떼었다. “사람이 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은 당신의 손에 달려있다고 교회에서 배웠습니다. 히긴스 아줌마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잘 모르지만,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제발 아줌마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당신은 병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니까 부디 그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병을 고쳐주십시오. 히긴스 아줌마는 가족도 없이 남편도 없이 홀로 외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마저 그녀에게 등을 돌리시면 안 됩니다. 어떤 이가 겨자씨만 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이 산더러 들리어 저 바다에 빠지라고 명령해도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자비와 은혜가 넘치시는 하나님께서 불쌍한 아줌마를 고쳐주시고 살려주실 거라고 믿고 또 믿습니다.”

기도를 마친 다음에도 상구는 한동안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있었다. 상구의 긴 속눈썹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눈물방울이 그의 시야를 흐리게 했다. 상구의 간절한 기도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시즈 히긴스는 입원한 지 보름 만에 병원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사인은 관상동맥의 혈류 차단으로 인한 심근경색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작은 관에 갇힌 왜소하고 비쩍 마른 미시즈 히긴스를 보며 상구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체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용칠도 한국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났던지 꺼억꺼억 소리 내어 울었다. 준식 연신 콧물이 흘러나오는지 손수건으로 코를 풀어댔고, 정 사장 한쪽 구석에서 고개 푹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녀가 다니던 포도나무 한인교회 교인들이 모든 장례식 절차와 순서를 책임졌고 장례식 비용도 지불했다. 그들은 생전에 미시즈 히긴스가 좋아하던 찬송가 150장인 "갈보리산 위"를 불렀다. 담임목사는 살아있을 때 미시즈 히긴스가 보였던 그녀의 성실함과 따뜻함을 전하며 그녀는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들어갔다고 짧게 설교를 했다. 상구는 장례식장 밖으로 나왔다. 그는 비통함 사이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이 정말로 살아계시고 당신의 나라가 진정으로 존재한다면 히긴스 아줌마의 영혼이 당신의 나라에서 평안함을 누릴 수 있도록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제발 이 간청만큼은 들어주십시오. 기도를 마친 상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른 하늘을 캔버스 삼아 비행기 한 대가 새하얀 일직선을 그리며 서쪽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장례식이 끝나자 용칠과 상구는 집으로 향했고, 준식은 미숙의 집으로 출발했다. 미숙을 차에 태운 준식은 그녀 함께 그들의 단골 바인 풀라스키 에 위치한 종이비행기로 갔다. 평일 밤임에도 실내는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대화소리로 가득했다. 머리를 바싹 깎고 커다란 뿔테안경을 쓴 웨이터가 은은한 은빛 조명이 떨어지는 자리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주문하시겠어요?” 웨이터가 곧바로 물었다.

미숙이 버드와이저 두 병과 마른안주를 시켰다. 주문한 맥주가 나오기가 무섭게 그녀가 병을 들고 치어스,라고 외쳤다. 사귄 뒤 처음으로 목격하는 미숙의 적극성에 준식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맥주병을 부딪혔다. 미숙이 땅콩을 몇 개 집어먹은 다음 병에 입을 대고 술을 길게 들이켰다. 준식도 그녀의 눈치를 보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어느새 테이블 위에 놓인 빈 맥주병이 네 병으로 늘어났다. 그중 세 병은 미숙이 마신 것이다. 웨이터가 와서 빈 병을 치워갔다. 돌아가는 웨이터의 뒤통수에 대고 두 병 더요,라고 미숙이 외쳤다.

“무슨 일 있어? 이렇게 많이 마셔도 되는 거야? 난 운전을 해야 되니까 더 마시면 안 돼.” 준식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내 돈 내고 내가 마시겠다는 데 누가 뭐라고 그래? 그리고 내가 두 병 다 마실 거니까 걱정하지 마.”

미숙이 말했고,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조지 마이클의 "One More Try"의 전주가 나오기 시작했다. 몇 초간 뜸을 들이다가 미숙이 말했다. "나 곧 서울로 돌아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하기로 했어.”

그녀와 조지 마이클의 목소리가 반반 뒤섞인 채 들려왔다. 준식의 눈 밑으로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언젠가는 그녀가 서울로 돌아가리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날이 이렇게나 빨리 올 줄은 몰랐고, 그 소식을 미시즈 히긴스의 장례식이 있었던 오늘 듣게 될 줄은 더욱 몰랐다, 미숙은 준식에게 옆으로 오라고 했고, 그는 그녀의 요구대로 그녀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비누향으로 인해 그의 뇌파는 좀 더 빠른 파장의 유형으로 전환되었다. 숙이 준식의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우리 집으로 가자. 너랑 하고 싶어.” 그 말을 들은 준식의 마음은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을 인지하며 요동쳤다. 성적인 흥분도 느꼈지만 동시에 그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비애와 같은 감정 느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디어본 스트리트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미숙은 그의 옷을 벗겼고, 준식은 그녀의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미숙과 섹스를 마친 준식은 그녀의 집을 나와 고속도로를 달렸다. 준식의 영혼은 적막으로 고요했고, 그는 무표정으로 운전하며 그의 심리 상태를 밖으로 내비쳤다. 도로를 질주하는 시빅 지붕으로 그의 감정만큼이나 다채로운 네온 불빛들이 쏟아져 내렸다. 식의 오른쪽으로 존 행콕 센터가 우뚝 솟아 있었고, 그는 근접한 고층건물들의 위협을 뚫고 레익 쇼어 드라이브를 달렸다. 준식이 차 윈도를 활짝 열었다. 호수로부터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강한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천둥소리를 내는 폭풍에 대고 그가 외쳤다. “널 속여서 정말로 미안해! 난 시카고대 학생도 아니고 부잣집 아들도 아니고, 아무런 꿈도 없고 미래도 없는, 그냥 거지처럼 자랐고, 지금도 거지 같이 사는 그런 인생에 불과해!" 준식의 앞머리가 바람에 날렸고,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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