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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가 일하는 주유소는 시카고 애비뉴와 링컨 애비뉴가 만나는 사거리에 위치했고, 앤디는 아침 여섯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일하는 첫 번째 시프트였다. 그가 주유소 밖에 놓인 신문 뭉치를 들고 안으로 들어와 부수를 세었더니 시카고 트리뷴이 40부, 선 타임스가 35부였다. 그런 다음 그는 다용도실에서 대걸레와 바퀴가 달린 버킷을 꺼낸 뒤 버킷에 청소 세제를 넣고 더운물을 부었다. 앤디는 Caution Wet Floor,라고 쓰인 노란색 접이식 안내판을 바닥에 놓은 후 대걸레질을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플로어 청소를 끝낸 앤디는 중간 사이즈 컵에 원두커피를 따랐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거인의 입김과도 같은 아침 안개가 도시 위로 흩뿌려져 있었다. 동이 틀 무렵의 이 시간대와 해가 질 무렵의 그 시간대가 닮아 있는 이유는 수미상관과 상관있는 것일까. 오, 자연 그 자체가 시적 존재들의 총합이구나. 스티로폼 컵에서 피어오르는 헤이즐넛 커피 향을 맡으며 그는 이렇게 사유를 했다. 이십 대 후반인 앤디는 주유소 점원으로 밥벌이를 하면서도 동시에 인디 록 밴드 "윈디시티 파리들"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다. 파리는 비록 보잘것없는 미물일지라도 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 밴드명은 기타리스트인 경훈이 고안해 낸 것이었다. 윈디시티 파리들은 드럼, 베이스, 기타, 그리고 보컬로 구성된 4인조 그룹이었다 (모두 동갑내기들이었다). 드럼은 일본 사람인 하타미가 연주했고, 나머지 파트는 모두 한국인이었다. 하타미는 경훈의 소개로 밴드에 합류했다(두 사람은 아시안 테니스 클럽에서 알게 된 사이였다). 하타미는 고가의 리코딩 장비를 소유했고 또한 유창한 영어실력을 자랑했다. 미국에서 음악 활동을 하려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멤버가 그룹에 적어도 한 명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했다. 윈디시티 파리들은 일주일에 하루 날을 잡아서 하타미 집에서 모여 연습했다. 그들의 목표는 클라크 길에 있는 록 뮤지션들의 메카인 'METRO'에서 이년 후인 2008년에 대망의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꾸준히 실력을 연마하면 언젠가는 메인 스트림에서 인정받을 날이 올 거야. 앤디가 중얼거리며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하타미에게 전화했다. 하타미, 우리 오늘 몇 시에 만나기로 했지?,라며 앤디가 어제 들어온 포테이토칩을 선반에 올려놓으며 하타미에게 물었다. 그러자 하타미는 일곱 시, 경훈이 여섯 시까지 일하잖아,라고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대답했다. 뭐 하고 있었어?,라고 앤디가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뭐 하긴, 너 전화받고 일어났다, 너무 이른 시간이잖아,라고 하타미가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앤디는 미안했던지 그럼 좀 더 자, 내가 이따가 오후쯤에 전화할 게,라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타미는 알았다고 말하고 그들은 통화를 마쳤다. 흰색 렉서스가 2번 펌프로 들어섰다. 배가 엄청 나온 사십 대 백인 남자가 차에서 내려 주유소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라지 사이즈 커피를 들고 계산대로 걸어왔다. 앤디가 $2.45,라고 말하자 그가 삼 불을 건네며 잔돈은 필요 없다고 했다. 남자가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며 주유소를 나갔다. 백인 남자는 차 앞 유리를 닦으며 주유건을 뽑아 들었고, 남자의 렉서스는 오십 불어치의 기름을 꿀꺽거리며 삼켰다. 앤디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손가락을 이마에 갖다 대고 인사를 했고, 앤디 역시 남자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주유소 자동문이 스르르 열리며 단골손님인 제시카가 들어왔는데, 그녀는 언제나 트리뷴지와 라지 사이즈 커피 그리고 스니커즈를 구입했다. 그녀는 하이 앤디,라고 미소 지으며 인사했고 앤디도 그녀에게 굿모닝 제시카,라고 인사했다.
제시카는 미시간 애비뉴에 있는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였는데, 주유소에 들를 때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며 앤디에게 명함을 건네곤 했다. 그녀는 역시나 오늘도 여지없이 앤디에게 명함을 주었고 앤디는 그녀가 주유소를 나갈 때까지 명함을 손에 들고 있다가 그녀가 차에 올라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다음 서른 번째 받은 그녀의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오전 내내 주유소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다가 출근시간대가 지나자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겼다. 앤디가 커피 필터를 새것으로 교체한 다음 커피를 다시 내렸다. 검은색 뷰익 한 대가 3번 펌프에 멈추어 섰다. 건장한 NFL 라인배커같이 생긴 흑인 남자가 차에서 내려 후불 버튼을 눌렀다. 앤디는 펌프를 가동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남자를 쳐다봤다. 흑인 남자는 이십 불어치의 가스를 넣은 후 노즐을 주유기에 도로 꽂았다. 흑인 남자가 두꺼운 입술로 뭐라고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강하고 쿨한 향수냄새가 그로부터 났다. "What's up man." 남자는 건들거리며 인사한 후 냉장고에서 토마토 주스를 꺼냈다. "Tomato Juice?" 앤디가 주스를 스캔하며 남자에게 말했다. 그러자 흑인 남자는 지난주에 타임지를 읽었는데 흡연자에게 좋은 음식 열 가지 중 토마토가 있었다고 말했다. 앤디는 피식 웃으며 가능하면 금연을 하라고 조언하자, 남자는 웃으며 매번 시도를 하지만 매번 실패를 한다고 말했다. 앤디는 담배 박스 정리를 끝낸 뒤 이번에는 리드 보컬인 종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성은 긴 헤어스타일부터 노래 부를 때 포즈까지 레드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를 흉내 내었다. 그는 영어 이름도 로버트라고 지었고, 그를 아는 모든 이에게 자신의 성이 마 씨이니, 로버트 마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로버트 마의 외모와 가창력은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고 해도, 그에겐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영어 발음이었다. 노래를 부를 때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영어 가사 전달이 되지 않았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하타미에게 영어 발음 레슨을 받고 있는데도 개선의 조짐이 보이질 않았다. 종성은 오늘은 기름 넣고 튀는 녀석 없었느냐고 킬킬거리며 물었다. 앤디가 없었다고 대답하자 그는 그래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앤디에게 일 끝나고 까치 당구장에서 당구나 한 게임 치자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자신이 한국식 당구와 미국식 포켓볼의 다른 경기 방식을 통해 한국인과 미국인의 상이한 사고 체계까지 추론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6번 펌프에 버건디색 시빅이 들어오는 걸 보며 앤디는 종성에게 설명을 해보라고 말했다. 잘 생각해 봐. 우선 미국식 포켓볼은 여러 개의 당구공을 그저 순서대로 구멍에 넣기만 하면 되잖아. 간단하고 합리적이고 슈퍼피셜 하지. 반면에 한국식 당구는 어떠냐. 구멍이 없잖아. 공도 네 개 또는 쿠션을 치면 세 개밖에 없고. 뭔가 애매하고 모호한 슈퍼내추럴한 느낌이 확 들지 않아? 사고방식도 이와 같아. 미국 사람은 합리적이지만 피상적인 사고체계인 것이고, 한국 사람은 애매모호하면서 초자연적인 정서가 강한 거야. 그래서 동양인과 서양인은 수박 겉핥기식으로는 소통할 수 있어도 서로 깊이 이해하는 게 힘든 거야,라고 종성은 자신의 분석을 자랑스럽게 털어놓았다. 앤디는 그런데 한국사람이 많이 치는 캐롬 당구도 원래 서양에서 온 것 아닌가,라고 했다. 종성은 적잖이 당황한 듯 헛기침을 서너 번 했다. 아무튼 종성아, 자세한 얘기는 이따가 당구장에서 만나서 하자, 세 시에,라고 한 다음 앤디는 휴대폰을 닫았다. 그는 카운터 선반 위에 전화기를 두고 6번 펌프를 무심코 바라봤다. 시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펌프 레지스터의 노란 불빛이 깜빡거렸다. $23.58
당했다. 짧고 깊은 탄식이 앤디의 치아 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왔다. 종성이 녀석이 쓸데없는 헛소리만 안 했어도. 이거 또 주급에서 털리게 생겼구먼.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앤디가 일하는 BP 주유소 주인은 이런 일이 발생할 때면 직원에게 책임을 물어 그 액수만큼 월급에서 삭감하는 룰을 적용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계획적으로 기름을 넣고 도망치는 자를 막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악법도 법이라고 앤디는 사장이 정한 규정을 따라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