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성채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한 국민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하다. 특히 상식적인 '국민 법감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최근 사법부의 잇따른 판결들은 단순한 해석의 차이를 넘어, 국가 지도 체계를 형성하는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결함을 적나라하게 방증한다.
사법·외무·행정·기술고시라는 좁은 문을 통과한 소수의 '시험 천재'들이 국정을 독점하는 구조, 그리고 그 폐쇄적 회랑 속에서 비대해진 선민의식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
고시 합격은 개인의 성실함과 지적 역량을 증명하는 지표일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활자 속에 스스로를 유폐시킨 시간은 역설적으로 '현실감각의 퇴화'를 초래한다. 정제된 법전의 문구와 무미건조한 경제 지표는 생존의 벼랑 끝에 선 시민들의 비명을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사법부의 오만은 심각한 수준이다. 가해자의 서사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피해자의 피눈물과 사회적 공분에는 법적, 정치적 중립이라는 방패 뒤로 숨는다. 이는 법리가 현실 위에 군림하려 들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인지 부조화다. 그들에게 대중의 상식은 '통제되지 않은 감정'일뿐이며, 자신들의 고립된 논리만이 '신성한 전문성'으로 치장된다.
대한민국 엘리트 사회의 비극은 청년기에 치른 단 한 번의 시험 성적이 평생의 계급과 권위를 결정하는 '고시 만능주의'에 있다. 합격률 2~6%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함과 동시에 이들은 5급 공무원 (5급 공무원은 조직 내에서 실무를 총괄하고 정책을 기획하는 핵심 보직으로 일반 행정사무관, 법원사무관, 검찰사무관, 3등 서기관(외교관) 등이 이에 해당한다.)이라는 직위를 부여받고, 스스로를 선택받은 집단이라 믿는 강력한 선민의식에 침잠한다.
우리는 최근 지귀연 부장판사의 내란 법정에서 그 폐해의 정점을 목도했다. 내란죄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이 "검사 생활 25년"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의 법 지식이 타인의 가치를 압도한다고 강변하는 모습은, 그 화려한 이면에 현실감각과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회적 부적응자가 숨어 있음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불법 계엄이라는 헌정 파괴 행위조차 "국민을 위한 결단"으로 미화하는 오만함은, 상위 0.01%라는 허상에 갇힌 이가 자신이 왜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비극적 무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폐쇄적 엘리트주의는 '끼리끼리' 문화를 공고히 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국민의 목소리는 '귀찮은 민원'으로 전락하고, 내부의 의전과 기수 문화가 국정의 본질을 압도한다. 현장과 유리된 탁상공론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국가적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시험 성적순으로 국가의 운영을 맡기는 방식은 이제 유효기한이 다했다. 이미 AI가 실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어 와 버린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지도자의 자질은 단순한 암기력이나 수리 능력이 아니다. 갈등을 조율하는 공감 능력,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 그리고 현장의 맥락을 짚어내는 통찰력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인간됨'이다.
그러나 현 시스템은 여전히 '정답 맞히는 기계'들을 권력의 핵심부로 실어 나른다. 이렇게 선발된 이들은 자신들만의 논리 구조 안에서는 완벽할지 모르나, 예측 불가능한 사회적 변수나 시민들의 절박한 요구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그 무능의 대가는 국가 정책의 표류와 사법 신뢰의 추락으로 이어지며, 모든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전가된다.
시민의 감정을 외면하는 판결과 현실을 무시한 정책은 우연한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오만한 엘리트주의가 잉태한 필연적 결과물이다. '고시'라는 성벽을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을 계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오만한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도 체계가 생명력을 회복하려면 시험 성적이 아닌 '경험의 가치'와 '공감의 깊이'가 평가받는 시스템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스스로를 특별한 귀족이라 믿는 이들이 키를 잡고 있는 한, 사회적 부작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 낡은 고시 신화를 타파하고, 진정으로 현실의 대지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는 인간다운 새로운 지도층을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2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