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딸이라면 부상중인 17살 아이를 위험한 경기에 나가게 하겠는가
스노보드 신동 최가온 선수가 17세의 나이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눈 위에서 하는 경기에서는 대한민국 최초라고 한다. 장하고 대견한 일이다. 하지만 대중의 환호 뒤편에는 외면하기 힘든 사실이 있다. 이 어린 선수는 이미 수차례의 부상을 겪었고, 급기야 이번 동계올림픽에서는 다리에 철심을 박은 채 경기에 임했다. 1차와 2차 시기에서 심하게 넘어져 자칫 잘못하면 선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3차 시기에 도전해 극적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금메달이란 것이 한 인간의 온전한 신체, 그리고 남은 평생의 건강한 삶과 맞바꿀 만큼 진정 가치 있는 것인가. 나라를 지키려 싸우다 당한 부상이라면 차라리 명분이라도 있지. 하기야, 국가 간의 스포츠 대항전(올림픽)이라는 게 전쟁을 대신하여 만들어진 시스템이란 말도 있긴 하지만.
스포츠계에서 부상 투혼은 흔히 ‘아름다운 극복’으로 미화된다. 한계를 뛰어넘는 정신력은 분명 경이롭다. 그러나 그 주체가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10대 청소년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약관(弱冠)’이라 불리는 찬란한 시절, 몸에 새겨진 깊은 흉터와 철심은 승리의 훈장이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어린 재능을 얼마나 가혹하게 소모시키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서글픈 흔적이다.
선수 본인이 선택한 행복의 방법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위선양과 메달 지상주의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정작 선수 개인의 '지속 가능한 삶'은 너무나 쉽게 뒷전으로 밀려난다. 시상대 위의 영광은 한순간이지만, 무너진 관절과 근육이 내뱉는 비명은 평생을 따라다닐 것이다. 선수는 건강을 맞바꾼 대가로 명예와 연금, 대중의 인기 등을 보상으로 돌려받겠지만 과연 어떤 메달이 한 인간의 건강한 미래보다 무거울 수 있을까.
올림픽 금메달은 분명 대단한 성과이다. 최가온 선수의 노력이나 열정, 그 성취에 대해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만일 최가온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번 올림픽에서 무리한 시도로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었다면, 과연 부상당한 17세 소녀를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한 얼음 절벽 끝으로 떠민데 대한 얼마나 많은 비난들이 쏟아졌을까?
미국이나 서구의 선진국들은,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한,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은 미성년자 선수라면 절대 출전시키지 않는다. 실패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도덕적인 책임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고, 선수들의 건강한 인생은 금메달만큼 중요하게 인지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메달의 색깔이 아니다. 부상을 안고도 사지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 그리고 다리에 철심을 박아서라도 성적을 내야만 보상받는 비정한 시스템에 균열을 내야 한다. 어린 선수들이 건강한 육체와 웃음을 지키며 운동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 어떤 승리도 '위대한 기록'이라 칭송받을 자격이 없다. 금메달은 대단할지언정, 결코 한 인간의 삶보다 대단할 수는 없다.
-26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