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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선생으로 산다는 것

나는 모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오르간을 가르치고 있다.

오르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학업을 마치고 직업적으로 이 길에 뛰어든 지도 어느새 20년 가까이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 오르간이라고 말하는 파이프오르간이라는 악기는  , 특히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서양 역사와 종교와 관련이 깊기 때문에 다소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오르간을 가르치고 있다.


요즘에는 미디어가 발달한 탓인지 아니면 직업군이 다양해져서 인지(.. 글쎄..) 가끔 파이프오르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는 사람도 종종 있다.

내가 오르간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국민학교 출신들만 안다는 소위 ’ 달리기 풍금‘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내가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을 때 그런 풍금을 전공까지 해서 배울 필요가 있느냐는 주위의 만류가 거셌었다. 아무래도 파이프오르간이라는 악기는 한국에서 꽤 귀하고 그나마도 교회 안에서 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일반인이 찾기는 어려운 것이라 생각된다. 최근에 모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전공한 사람들이 출연자로 종종 등장하면서 그 위상을 조금씩 떨치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오르간을 배우는 사람들도 조금씩 그 계층과 목적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첫 시간에 왜 오르간을 배우려고 하시느냐를 꼭 질문한다. 배우려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야 할지가 정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래도 대부분이 교회나 성당에서 반주를 하기 위해서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순수한 취미로 오르간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오르간은 피아노와는 매우 다른 악기다.

그렇지만 건반의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냥 피아노 건반이 몇 층으로 되어있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소리가 나는 원리도 피아노와는 다르다.

피아노는 현들을 건반에 연결해서 건반을 누르면 현이 튕겨지는 원리이지만, 오르간은 온갖 다른 음색을 가진 피리들이 바람통에 꽂혀있다가 건반을 누르면 그 바람통 구멍에 바람이 들어가면서 소리가 나는 원리이다. 한마디로 피아노는 현악기고, 오르간은 관악기다. 그렇지만 파이프오르간은 건축한다고 표현할 정도로 큰 규모이기 때문에 개인이 소유하기에는 공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버겁다. 그래서 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고육책으로 요즘 흔하디 흔한 전자오르간이 파이프오르간의 연주대만을 흉내 내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오르간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첫 시간에 하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솔직히 90%의 학습자들이 그런 내용에는 무관심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단 치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인데 다른 게 귀에 들어올 리가 없지 않은가? ’ 이렇게 치세요 ‘ 말고는 아무 관심이 없다. 심지어 자세가 중요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 학습자가 태반이다.


그렇다면 가르치는 사람은 어떨까?

나처럼 소수의 파이프오르간 전공자들이 살아남으려면 일단 학생을 가르쳐야만 한다.

솔직히 말해서 클래식음악은 주류 문화도 아니거니와 그나마 월클 연주자라고 해도 한국에서만은 듣보잡 인생이다. 거기에다 클래식 음악계의 마이너리티 중 마이너가 바로 오르간 아니던가. 그러니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만도 상당히 운이 좋은 일이다.


나는 음악대학에서 오르간강사로 운 좋게 12년가량 가르쳤었다.

아직도 나는 감사하게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

그래서 그 지나온 20여 년간을 뒤돌아보자면…

 아주 그냥 엉망이었다.

한 15년은 불평을 달고 살아왔던 것 같다.


다른 개인적 에피소드들은 다 접어두고 일단 내가 어떻게 가르쳐왔었는지 보자.

첫 7-8년은 내가 배운 대로, 아주 그대로, 나의 선생님을 따라 했다. 굉장히 자상하고 철저하고 꼼꼼하게 수강생들을 뜯어고치려고 했다. 몇 년 지나고 나니 아주 기계적으로 가르치는 게 익숙해졌다. 그때는 앞서 말했듯 대부분 반주하려고 배우러 오는 학습자들이었기 때문에 난 내가 배운 그대~로 전달해 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졌다.

매번 소위 바이엘 상권 1번에 나오는 ’ 도레도레‘ 수준의 초보자만 계속 가르쳐야 하고 조금 그 단계를 넘아가나 싶을 때면 다들 배움을 그만둔다.

오르간은 연주주법 자체가 피아노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주법을 고쳐서 익히는 일이 쉽지가 않다. 게다가 발에도 건반이 있기 때문에 페달 연주법을 배워서 양손과 함께 연주해야 하는데, 혹자가 보면 ‘저게 사람이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할 모습이다. 그러니 한 이 삼 년 열심히 배운다고 해도 늘 그 턱인 것 같고 발로 연주까지 하려니 뇌는 바보가 된 느낌이고 사지가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 같아서 자괴감이 든다.

게다가 뭐든 연습을 많이 한 만큼 결과가 나오기 마련인데 이 악기는 쉽게 연습할 곳을 찾는 것부터가 고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학습자들 탓이 아니라 악기가 배우기에 높은 진입 장벽을 지닌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꾸준히 배우도록 독려하고 싶어도 현실적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선생님들이 학습자들이 중도포기하는 것을 원치 않아서 학습자들에게 쉽게 만족감을 주는 방식으로 가르치게 된다.

대부분의 학습자 계층이 중년의 여성들인데, 손과 발이 생각대로 함께 움직이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것이 내가 12년 정도 레스너의 생활을 하다가 매너리즘에 빠진 이유다.

그다음부터는 꽤 오랫동안 불평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코로나 19 사태가 터졌다.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이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나는 그 공백의 시기에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오르간연주를 할 수 없게 되고 나서야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내가 가르칠 수 없게 되고 나서야 나에게 배우는 사람들에게 오르간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실제로 지금 나에게 오르간을 배우는 분들 중에 코로나 시작 전부터 아직까지 배우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은 반주를 하기 위해서 배우신 게 아니라 그저 오르간이 좋아서 아직까지 배우고 계신다.

나에게 오르간이라는 악기가 내 삶의 전부인 것처럼 그분들에게도 오르간이 그런 존재다.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배움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주셨기 때문에 나는 마스크를 쓰고, 한겨울 추위에도 창문을 활짝 열고, 코로나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중단되었던 수업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향했다.  

내가 하는 연주는 귀하고 어렵게 여기면서도 초보자들의 연주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그 흑역사 시절의 내가 부끄럽다.


전공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음악은 원하는 모두에게 배울 기회를 주고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누구에게나 다가간다. 반주하는 연주는 음악이 아니고 심혈을 기울여서 음악회에서 하는 프로페셔널한 연주만 음악일리 없다.

내가 가르치면서 받게 된 선물 중에 하나는 모든 배우는 사람들의 각 단계에, 그것이 초보 과정이든 상급 과정이든 간에, 어떤 순간에도 눈물 나게 아름다운 음악의 찰나가 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연주하는 사람과 가르치는 나만이 아는 선물이다.

그런 순간에는 연주자로서의 내 자리가 아닌 선생으로서의 내 자리가 정말 귀하고 감사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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