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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것, 남이 하는 것을 보는 것

사유의 시간을 통해..

요즘 글을 쓰는 일에 조금씩 빠지고 있다.

책을 읽는데 빠져들었던 시절에는 재미있는 책만 골라서 읽고 싶은데 선별 능력이 안되니 일단은 전부 읽고 보자는 식이었다.

그 사이 시간이 흘렀고 책을 읽어 재끼는 일은 그만두었다. 대신 이제는 선호하는 책이 분명해져서 읽고 난 후에는 '생각'이 늘어나게 되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말을 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많은 사람 앞에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려면 말하는 스킬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글을 써보기로 한다. 적어도 떨리는 목소리로 두서없이 얘기하다 망신당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공연을 보고 나서,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 조금씩 생각을 글로 옮겨 보기로 한다.

물론 이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 빨개지고, 목소리가 갈라지고, 눈앞이 하얘지는 경험을 하는 것보다는 낫다.

글을 쓰고 나서 한번 쭈욱 읽어본다.

처음에는 써놓은 글을 끝까지 차마 읽지 못하고 노트를 찢어버렸다.

사람들 앞에 서 있지 않는데도 창피하고 못마땅했다. 그러나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이 정도면 뭐...'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왔다. 다 쓴 글을 공책에 고이 모셔두다가 인정욕구를 견디지 못하고 남편에게 보여준다.

'오.. 재미있는데.. 블로그에 올려봐.'

용기백배해서는 한 오 년 후쯤에는 파워블로거가 돼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글을 올린다.

 글을 올리고 5분 간격으로 새로고침을 한다.' 몇 명이나 읽어봤으려나?'

그 흔한 '좋아요' 한개 없이 일주일이 지나도 하루에 세명이상 읽어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그간의 블로그 관리를 안 한 자책을 하다가 다시 한번 희망을 품고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린다.

이런 반복적인 일상을 몇 년 전에 잠깐 경험하다가 작심삼일식으로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브런치가 생기면서 글 쓰는 욕심에 작가신청을 하게 되었고 그나마도 쓰느둥 마는 둥 지금까지 이러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글을 써서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고 나면 여전히 새로고침의 무한대 세계에 빠져 있기는 매 한 가지다. 브런치에는 작가들도 많고 글 잘 쓰는  사람이 한국에 이렇게 많은가 싶기도 하다.   


독주회를 열 때에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 같은 경우에는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데만도 한 달 여가 걸린다.

내가 좋아하는 곡과 관객이 듣고 함께 즐길만한 곡, 아카데믹한 곡을 테마에 맞게 적절히 짜는 일이 쉽지가 않다.  그래도 몇 개월에 걸쳐 구슬땀을 흘려가며 연주회 준비를 한다.  인쇄물도 예쁘고 고급지게 만들고 연주회 때 입을 스드메에도 엄청 신경을 쓴다. 연주에 집중하기 위해 보약도 한 재 달여먹고...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멋진 연주를 하기 위에 애를 쓴다.

그러나 오르간은 악기 특성상 종교 제한적인 이미지라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클래식 음악 바닥에서도 마이너로 취급당한다. 반면에 음악은 어찌나 장대하고 스케일이 큰지 처음 들은 관객들이 감동받기보다는 당황해하며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는 관객수도 적고 지인들의 꾸벅꾸벅 졸며 객석에 앉아있는 가운데 나 혼자 만족하며 음악회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은 비단 오르간 연주회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고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런 모든 일들이 실망스러운 이유는 무엇인가?

글을 올려도 읽는 사람이 없고, 연주회를 열어도 듣는 사람이 없다.

그냥  쓰고 연주하면서 스스로 만족하며 자기 수양을 하는 일로 괜찮을 수는 없는 걸까?

처음에는 나의 욕심 일까도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연주를 하는 이유가 그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기 때문인 걸까?


그럼에도 신기한 일이 있다. 클래식 음악이 우리나라에서는 향유하는 계층이 많지 않고 익숙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고 그중에 오르간은 더더욱 대중에게 낯설기만 한 악기로 알려져 있는데 오르간을 칠 줄 안다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아주 많다. 물론 교회나 성당에서 반주자하는 사람이 필요해서 그렇다고는 해도 피아노 치듯 오르간을 치는 게 아니라 오르간 연주자가 실제로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르간 연주자뿐만 아니라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한국에 상당히 많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그러나 재미있는 일은 그 많은 연주자들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회에 오거나 음반을 사서 듣는 사람은 그런 연주자들이 아니라는 것.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계층이라는 것.

오랫동안 나는 이런 일들이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라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한 다섯 해 전쯤에 쓰다 말고 발행하지 못한 내용이다.

왜 발행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솔직한 나, 참혹한 나를 차마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오 년 전의 나를 바라본다.

얼마나 가식적이고 교만한 나였던가!

뭘 그렇게 많이 알아서 잘난 것을 드러내고 싶었던가.

아주 교묘하게 지적이면서 겸손의 코스프레를 하면서 말이다.


지금의 내가 5년 전에 나에게 부끄럽지만 말을 건넨다.

“오 년 전 나야, 이 글을 발행하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구나

아주 최소한의 나를 지켜주었구나 “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지만

돌아보며 한 번씩 나를 꾸짖기 위해

가감 없이 과감하게 포스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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